모든 것이 리셋된 지금
#끝
9월 말 모든 것이 리셋되었고
늘 꿈꿔왔던 해외에서의 삶 그리고 2년 가까이해오던 연애가 내 세상에서 사라졌다.
물론 내 결정도 있었지만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라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안 왔다.
해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불 꺼진 기내에서 조용히 숨죽이며 울었다.
힘들어서 도망친 직장,
대답 없는 대답으로 끝이 난 장거리 연애
모든 것을 정리하려 하니 마음이 힘들기도 하고
마치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아이 같았다.
왜 힘든 건 한꺼번에 오는 건지
그렇게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잃어버린 방향을 바로잡으며 살아가고 있다.
30대가 되어 나름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는 순간에 이리 길을 잃을 줄은 몰랐다.
가족의 걱정에도 다시 해외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간 것,
불투명한 미래를 알고도 연애를 시작한 것을 결코 후회하진 않는다.
그 과정이 있기에
내가 어떤 것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으니까
다만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결말이었기에
아주 가끔 파편 같은 후회들이 가슴을 파고들 때가 있을 뿐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후회로 지나가면 괜찮지만 문득 슬픔을 끌고 올 때면
그 순간은 참 힘이 들고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과거에 묶이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이 슬픔을 극복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미래를 위해서라도
아니 당장 지금을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했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명상, 스트레칭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오후에는 열심히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간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잠시나마 그 기분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두운 저녁이 되면 조용한 분위기에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돌아본다.
내 나름의 루틴을 지키는 중이다.
점차 이러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나 자신이 단단해지는 것 같다.
진짜가 아닌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 괜찮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기분 탓으로 쌓인 벽들이 어느 순간 약한 비바람에 와르르 무너지는 건 아닐는지
문득 겁이 나기도 한다.
한 달 전에도 내가 이리될 거라는 생각을 못 한 만큼
당장 내일도 내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고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나름 괜찮았던 하루였다.
내일 문득 슬픔과 무력감이 찾아오더라도 또 자연스레 지나갈걸 알기에
결코 그 기분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나의 사람들에게 참 감사하다.
해외로 나갈 때 힘들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해준 가족과 지인들.
힘든 일들로 인해 한 달 만에 돌아오긴 했지만
왜 왔냐고 서둘러 물어보지 않고 '잘했다'라는 말과 함께 반겨주었다.
어떻게 보면 늘 한결같은 자리에 있어준
그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잘 살아나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