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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지 Sep 28. 2021

말라위인들의 친척과 이웃의 범위는 광활하다

각 종교 별 장례 모습과 친척/이웃의 범위

출처: https://www.pri.org/stories/2011-05-09/healing-world-malawi 사진은 영유아의 장례식

 예전에 내가 일을 할 때, 출근 전 현지직원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나 문자의 90%는 장례식 또는 본인이 아프다는 내용이었다. 뭔가 중요하거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만 생기면 어김없이 누군가 죽거나 아프거나 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일단 사무실로 나와서 니가 할일을 전달만 하고 가라고도 해봤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너는 심장이 없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그들에게 일단 사무실로 나오라고 했던 건 망자와 해당 현지직원의 관계가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인데, 누군가의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례식에 참석한다며 만사를 제쳐두는 건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는 대부분의 직원이 장례식 참석 전 사무실에 들러 조의금을 받아가도록 하여 반강제적으로 업무 인수인계를 시켰다.


말라위의 장례식은 기독교인의 경우 2~3일 간 진행되며, 무슬림의 경우 가급적이면 사망 후 바로 다음 날 매장하기 때문에 장례식이 굉장히 짧은 편이다. 기독교인의 장례식을 가면 관이 놓여진 방안에서 사람들이 울면서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망자가 여성이면 여성들이 관 옆을 지키고 남성이면 남성들이 관 옆을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망자가 남성인 기독교인 장례식은 가 보지 못해서 단정 짓진 못하겠다. 무슬림의 장례식은 기독교인의 장례식과 달리 더 엄숙한 기분이 드는데 그건 아마 노래를 부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이나 말라위인의 장례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문상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문화다. 망자의 가족들은 장례식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문상객들을 망자의 관이 있는 장소로 안내하는 사람", "관 옆에서 망자 대신 문상객들의 인사를 받는 사람", "문상객들에게 대접할 식사를 요리하는 사람", "장례식 일정을 주관하고 총괄하는 사람" 등 크게 4가지로 구분하여 수행한다. 요즘 한국은 장례지도사가 장례식의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말라위는 아직도 가족이나 마을 내 원로의 경험이 각종 경조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예나 지금이나 급성 질환에 빠르게 대처하기 어려운 시골에서는 하룻 밤새 급사하여 아무런 준비없이 장례식을 치루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여하여 돕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장례식의 일손을 돕는 노동력 또는 옥수수 가루/야채/고기 등의 식재료를 제공하거나, 그릇이나 냄비 등 조리도구를 빌려줌으로써 장례식에 기여하는 것이 미덕이다. 망자와 관계가 없더라도 같은 마을에 사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장례식에 얼굴을 비치는 것이 필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죽었는데 장례식에 얼굴도 내비치지 않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은 물론 향후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마을 공동체로부터 외면 당하기 때문에 장례식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가족도 아닌데 장례식에 가야 한다며 출근을 못하겠다는 현지직원들을 보며 '일하기 싫어서 저러는 거 아니야'라는 의심도 해보았지만, 도시와 달리 마을 구성원들과 좋든 싫든 협력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골에서는 장례식 참석이 최소한의 사회활동에 해당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웃의 장례식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얼굴만 비추고 오는 방식으로 설득하며 나 또한 함께 참석하여 장례 문화에 대해 관찰할 수 있었다.


말라위 사람들이 생각하는 친인척의 범위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보다 훨씬 넓은데, 한국으로 치면 "문중 사람"이 이들이 말하는 친인척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아직도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국가이지만 가족 내에서는 모계를 중시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말라위인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자신이 태어난 지역 대신 "어머니가 태어난 지역"을 고향이라고 말한다. 부모를 잃은 고아를 보살피는 쪽 또한 대부분 어머니의 형제 쪽인데, 반대의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아 상황에 따라 양육자가 달라지는 것 같다. 흔히 누군가 돈을 벌면 주변에는 "빨대"를 꽂는 가족과 친인척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들은 대부분 어머니, 부인 쪽 사람들이라고 한다. 말라위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모두 남이 되고 딸을 낳으면 오히려 가족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딸보다는 아들을 낳길 선호하는 분위기를 보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이기도 하다.


길이나 도로를 달리다 보면 파릇파릇한 나뭇가지가 바닥에 놓여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나뭇가지가 놓쳐진 근방에 장례식이 있다는 표식으로써, 보행자나 운전자에게 "조용히 지나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라위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망자에 대한 어떤 비난이나 비방을 삼가하는 분위기고, 상을 당한 가족들이 장례식을 치룰 수 있도록 약간의 돈을 조의금으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의금 액수는 정해진 것 없이 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맞게 내면 되는데, 장례식이 발생하면 마을의 족장이 주변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집에도 방문해 조의금을 걷는다.


여담으로 내가 길가에서 야채를 사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지금 장례식에 가는 길인데 돈을 달라"고 말해 단박에 거절한 일이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다가와 장례식 가게 돈 좀 달라고 말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으며, 길가에 서 있는 말라위인에게는 말도 못하면서 만만한 외국인에게 뜬금없는 동정심을 요구하는 뻔뻔함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일단 찔러보고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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