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다지 Sep 30. 2021

말라위 원숭이로부터 배우다

지레짐작을 삼가라 

담장 위에 앉아 있는 원숭이의 모습

 말라위는 조금만 시골로 들어가도 원숭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건 우간다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일을 할 때는 쭉 살리마 셍가베이 호숫가 근처에서 살았던 터라 숙소에서도 원숭이를 보는 건 꽤 흔한 일이었다. 말라위가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부터 거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원래는 말라위 전체에 코끼리, 표범 같은 야생 동물이 엄청 많았고, 원숭이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라위인들이 상아, 가죽 등을 얻고자 밀림을 파괴한 이후 동물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유럽계 이민자 중 정말 3~4대를 거쳐 오랫동안 말라위에 사는 사람들은 뭐만 잘못됐다 하면 말라위인 탓을 하니, 실제로 누가 동물들의 씨를 말린 건진 잘 모르겠다. 나중에 자료를 좀 찾아보겠다.

마트에서 산 수박의 모습. 엄청 달아서 충격적이었다.

 나는 과일 중에서 수박을 좋아해서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 말라위에서 수박은 어디에서 샀느냐에 따라 당도의 편차가 심한 과일인데, 보통 마트 수박은 당도가 일정하여 실패할 확률이 적지만 리어카에서 파는 수박은 당도가 복불복이다. 마트 수박은 리어카 수박에 비해 3배 정도 비싸서 살 엄두가 안 날때가 많지만, 리어카 수박은 저렴한데다 운이 좋으면 맛있을 때도 있어서 리어카 수박을 종종 구입하곤 했다.


대부분의 업무가 살리마 내에서 진행되던 당시에는 한번 릴롱궤에 가면 살리마에서는 구할 수 없는 각종 식료품이나 생활용품을 급하게 구입하여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7월이 지날 즈음이면 내 쇼핑 목록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품목은 바로 수박이었다. 수박 몇 통을 씻고 해체하여 플라스틱 통에 가지런히 담은 후 냉장고에 넣어두면, 며칠 간 수박과 함께 시원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수박을 3통이나 사온 어느 날이었다. 한 통을 쪼갰더니 이게 수박인지 멜론인지 모를 정도로 과육이 연두색이었다. '수박장수에게 당했구나' 생각한 나는 다른 한 통도 쪼갰고, 역시나 그 수박 또한 실패였다. 수박장수들은 수박의 당도를 의심하는 고객들에게 "내가 잘라서 보여줄게"라며 칼을 들고 오지만, 쪼개서 빨간 색이면 그 수박을 사야할까 걱정스러웠던 나는 한번도 "그래 잘라봐"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두번 째 수박마저 실패하자 '수박장수더러 자르라고 말해볼 걸 그랬나' 후회도 들었다.


첫번 째, 두번 째 수박을 쓰레기장으로 가져가서 버리니 냄새를 맡은 원숭이들이 나타났다. 내 돈주고 원숭이 밥을 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것도 나름 친환경이라며 내 마음을 다독였다. 부엌으로 돌아오자 마지막 수박은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것도 보나마나 실패겠지 생각한 나는 쓰레기장으로 가져가 힘껏 던진 후 뒤도 안돌아보고 방으로 들어왔다. 2시간 정도 흘렀을까. 빨래를 걷으러 밖에 나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던진 그 수박을 원숭이들이 맛나게 파먹고 있었는데 그 색깔이 틀림없는 빨간 수박이었다. '한번 잘라보기라도 할 걸...' 지레짐작으로 멀쩡한 수박을 시원하게 패대기 쳐버렸던 나의 경솔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원숭이들은 수박을 양손 가득 움켜쥐고 신나게 먹어댔다. 원숭이들의 입가로 흐르는 수박 즙은 나의 눈물이었다. 이날 원숭이들은 나에게 "지레짐작하지 말자"는 교훈을 안겨주었다. 원숭이들의 식욕이 나의 경솔함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말라위에도 취업사기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