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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지 Oct 09. 2021

자살하는 말라위 사람들의 이야기

자살률 증가, 약한 남자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청소년 자살

출처: 페이스북 그룹 Suicide Survivors Malawi


말라위 뉴스를 보면 청소년의 자살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비단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 연령대에서도 자살 문제가 꽤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안타까운 자살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1. 물란제(Mulanje)에 사는 초등학교 7학년 여학생(12세)이 동갑내기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운 걸 알아차린 후 살충제를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21.9.13 출처: https://web.facebook.com/mwbreakingnewsgossip/posts/3177461592541040)

#2. 말라위 중앙은행 직원이 유산 분배 과정에서 배제돼 혈압약을 과다 복용하여 목숨을 끊었다(21.7.28 출처: https://web.facebook.com/mfanalenzo/posts/4125346994228859)

#3. 망고치(Mangochi)에 사는 15세 소년이 여자 아이를 임신시켰다는 혐의를 받자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었다(21.8.24 출처: https://web.facebook.com/mbctv.malawi/posts/3582405858528513)

#4. 남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하자 여자 친구는 목숨을 끊었고, 목숨을 끊은 여자 친구의 장례식 후 남자 친구 또한 목숨을 끊었다(21.1.19 출처: https://web.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895285580506099&id=468869019814456

#5. CCAP(The Church of Central Africa Presbyterian) 목사이자, 좀바 신학대학(Zomba Theological College)과 리빙스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Livingstonia)의 강사로 활동한 중년의 남성이 목숨을 끊은 지 수일 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21.8.31 출처: https://web.facebook.com/mbctv.malawi/posts/3550364498399316)

#6. 뎃자(Dedza)에 사는 23세 남성이 돼지를 팔려다 부인에게 저지 당하자 목숨을 끊었다. 그 돼지는 부인의 삼촌이 부인에게 준 것으로 부인이 가진 유일한 돼지였으나, 남성은 부인 모르게 돼지장수에게 돈을 받고 돼지를 내어줄 참이었다. 돼지장수가 돼지를 받으러 남성의 집을 찾았지만 부인 거부하여 돼지를 넘기지 못했고, 남편은 부인이 집을 비운 사이 살충제를 마셨다. (21.5.26 출처: https://web.facebook.com/times.mw/posts/3970720263013621)

#7. 치카와(Chikawa) 지역의 GVH(Group Village Headman)인 56세 남성이 의붓아들과의 말다툼을 한 후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었다.(21.6.9 출처: https://www.malawiguardian.com/pages/GVH-Launji-2-of-Chikwawa-commits-suicide.html?fbclid=IwAR2HIuDTpDf67d4t6eUjNAA8UP6uVvZj_W5d7aaDes8DubEvM9F9ppANqzE)

#8. 망고치(Mangochi)에 사는 41세 남성이 의붓딸을 성적으로 유린한 것이 부인에게 발각돼 현행범으로 체포되자, 망고나무에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었다(21.8.9 출처: https://web.facebook.com/mbctv.malawi/posts/3538580472911052


VOA(Voice of America 출처: https://www.voanews.com/a/africa_rise-malawi-suicide-cases-linked-covid-19/6197220.html)에 따르면 코로나 판데믹이 시작된 이래 말라위의 자살률은 57%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자살한 사람의 92%는 남성으로 여성보다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말라위 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활동하는 베차니 체레니(Betchani Tchereni)는 코로나 판데믹 이후 자살률 증가는 높은 실업률에 있다고 지적한다. 코로나가 창궐한 후 약 27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1개 직업 당 10명의 식구를 부양한다고 했을 때 2백7십만명이 실업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희망을 잃고 우울감에 빠져들다가 자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이른다고 한다.


여성에 비해 매우 높은 남성의 자살률에 대해 모세스 무오차(Moses Muotcha. 카무주 보건대학의 임상심리사) 박사는 "여성은 문제가 생기면 친구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지만, '남자는 울지 말아야 한다'는 말라위 문화의 특성 상 남성은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 남자가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 못하게 되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오차 박사의 지적대로 아프리카의 최빈국인 말라위는 정신건강 전문가나 기관이 부족하여, 공립 정신병원 또한 단 한 곳이라고 하니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운 환경임에 틀림없다.


PAMJ(Pan Africa Med Journal 출처: https://www.panafrican-med-journal.com/content/article/38/69/full/)은 말라위의 자살률은 물론 한국보다는 낮지만 이웃국가인 잠비아나 남아공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코로나 판데믹을 계기로 말라위의 고질적인 문제인 높은 실업률, 영세한 자영업, 지속적인 빈곤이 만연한 상황이 재부각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말라위 인구의 약 50%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20%는 극도의 빈곤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극심한 빈곤은 삶을 불안정하게 하고 자존감을 짓눌러 절망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자기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해로 발전할 수도 있다.


말라위에서 자살과 관련된 사회인구학적인 요인은 시골 지역 출신의 교육수준이 낮은 21~30세 사이의 남성들로 나타나는데, 시골 지역에서는 재정적인 문제로 인한 자살이 3대 외부 사망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PAMJ 또한 남성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으로 나약한 남성을 허용하지 않는 아프리카의 문화를 들며, "무투 우모지 수센자 뎅가(Mutu umodzi susenza denga, 혼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없다)"는 속담이 있어 공동체의 협력을 중시하면서도 남성에게는 강인함을 요구하는 문화가 남성의 자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자살률의 증가는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며 "정신 건강 없이는 건강도 없다"고 이야기 하는 PAMJ의 보고서는 남성 자살률 증가의 원인인 전통적인 성별 규범에 신중하게 접근하여 프로그램과 정책을 만들어 내야할 뿐만 아니라, 실업률 감소/의료 서비스 개선/언론의 자살 보도 행태 개선을 통해 자살률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으로 마무리된다.


자살률 높기로 유명한 나라에서 온 내가 말라위의 자살률을 이야기하는 게 어쩐지 어색하긴 하지만 한국과 달리 공동체와 개인 간의 관계가 활발하다고 여겨지는 말라위에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해결책을 찾지 못해 실망하고 목숨을 끊는 행위가 꽤 빈번하다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자살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뎃자(Dedza)에서는 200콰차를 훔친 아들을 어머니가 불태워 죽인 사건이 있었다. 그 200콰차는 어머니가 가진 유일한 돈이었다는 점에서 그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식을 죽이기 까지 한데에는, 정신 건강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던 상황도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학교에 가라고 강요하는 어머니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소년의 이야기, 부모의 이혼으로 절망하여 자살을 선택한 소년의 이야기, 유산으로 받은 땅을 팔라는 숙부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청년의 이야기 등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자살외에도 선택 가능한 선택지가 많아보이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많다.


무조건적인 인내보다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탄성을 지닌 회복탄력성이 중요시 되는 요즘, 말라위에서 접하는 자살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회복탄력성의 부재를 떠올리게 된다. 마음의 근력은 어떻게 키워질 수 있을까? "남자는 울면 안돼, 여자는 참아야 돼" 성 역할에 따른 규범이 아직도 사람들의 인식 아래 뿌리내린 말라위에서, 우는 남자와 저항하는 여자가 용인되지 못하는 점은 자살률 증가에 일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긍정하고 낙관하는 아프리카인 특유의 이미지는 환상이라고 해두어도 좋다. 이 곳에도 삶의 다양한 변주가 있고 절망 끝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의 원인이 된 누군가의 돼지 한마리는 한국에선 아파트 한채 일 수 있고, 살인의 원인이 된 누군가의 200콰차는 한국에선 200만원일 수도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우리가 꾸는 꿈에 불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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