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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불이 꺼질까 잠 못 이루는 새벽

하얀빛만 따라가

by 흔들리는촛불

생면부지 없는 사람들이 오고 가고 다 같이 울고만 있는 장례식장은 상주들에게 있어 정말 정신이 없는 하루다. 아침 내내 내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이 오고 아빠의 지인 / 엄마의 지인 / 동생의 지인들이 모두 오는데 계속 절을 하고 또 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말들을 건네다 보면 어느새 조용하고 고요한 새벽이 찾아온다. 조문객들이 모두 가고 혼자 오롯이 오묘한 미소와 함께 꽃다발들 속에 파묻혀 있는 아빠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고 평소와 같이 속으로 아빠와 수다를 떨게 되었다.


‘아빠 예전에 말해줬던 그 친구분들이 왔어. 누구는 엄청 우시던데 아빠랑 많이 친했었나 봐. 아빠 오늘 내 친구들 누구도 왔었어. 아빠 엄마랑 동생은 지금 자고 있어 많이 피곤했나 봐. 아빠 밝은 빛만 따라가야 해 어차피 아빠는 천국 가겠지만 그래도 밝은 빛만 따라가. 아빠 거기 가서는 아프지 말고 나 꼭 지켜봐 줘. 아니다. 그냥 거기서 나 보지도 말고 아예 날 잊어. 아빠 성격에 하늘에서 나 보고 있으면 그리워만 하고 오히려 슬퍼하고 있을 것 같으니까 그냥 여기서의 기억들은 모두 잊고 거기서 새롭게 건강하게 살고 있어.


여기서 아빠는 아빠로서 너무 훌륭하게 그 역할을 다 했으니까 그냥 새롭게 살아도 돼. 그런데 아빠 엄마랑 할머니한테는 대역죄인인 거 알지?

엄마는 아마 나보다 더 오래오래 울 거야. 그리고 할머니는 장례식에 오지 않으셨어. 아빠 부고 소식은 전했는데 어떻게 자식을 먼저 여읜 어미가 무슨 낯으로 그 자리를 가냐면서 못 오시겠대. 그래서 더 아무 말 않고 알겠다고 했어. 아마 할머니는 지금쯤 아빠가 20대 때 본인 이름으로 산 첫 집이자 몇 년 동안 대출금을 갚았다는 그 집에서 혼자 가슴을 치며 울고 계실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내 꿈에 나오지 말고 가기 전에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드리고 가 ‘


새벽 아빠의 영정사진만 바라보면서 혼자 주저리주저리 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눈은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뻑뻑 히 메말랐고 서서히 졸음이 밀려왔다. 장례식 첫날 낮에 누군가 나에게 ‘향’을 잘 지키라고 했었다. ‘향’을 피우면 서서히 올라가는 그 향의 연기가 망자를 하늘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길이 된다고 해서 난 첫날 하루를 꼬박 밤새 향을 지키며 조금이라도 향이 짧아지면 다시 몇 번이고 향을 갈았다. 마치 누군가 기계에 명령 코드를 입력한 것처럼 난 향만 바라보다가 일정 길이만큼 짧아지면 바로 향을 갈아주고 있었다.


둘째 날 삼촌이 이제 그만 눈 좀 붙이라고 본인이 향을 봐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방에 들어가 잠깐 잠을 잤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벌떡 일어나 향을 보러 나왔다. 삼촌은 상주자리에서 자고 있었고, 향은 모두 꺼져 있었다. 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나는 그 향을 지키려고 어제 한숨도 안 잤는데 삼촌은 이게 중요하지도 않냐며 질책을 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멀리 미국에서 부랴부랴 온 삼촌이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채 상주 노릇을 하느라 바빴으리라는 것도 이해가 가서 혼자만 눈물과 분을 삼켰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상주자리에 누워 자는 삼촌이 너무 미웠다.

‘이거 계속 봐준다고 했으면서 우리 아빠 길 잃으면 어떡할라고. 봐준다고 해서 내가 잔 건대. 이럴 거면 내가 차라리 안 자고 있었을 텐데 왜 자라고 한 거야 대체. 난 이틀정도 안 자도 상관없는데 ‘ 등등 원망과 후회만 가득했었다. 그런 내 옆에서 삼촌은 코를 고며 자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삼촌은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형을 잃었는데, 그 당시의 나에겐 아빠에게 나 말고도 수많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 듯 오직 ‘나의 아빠’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사람은 이토록 자기중심적이고 우주의 중심은 ‘나’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나에게 아빠는 결국 누군가에게는 자식이며,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한 배우자이고,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골목을 함께 누볐던 초등학교 친구이며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절반을 사무실에서 같이 일해온 직장인이었다. 그 모든 관계들이 아빠의 희미한 미소가 서린 영정 사진 앞에서는 모두 흐릿해지고 감히 저들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나만큼 슬플까 하며 속으로 타인의 슬픔의 깊이를 함부로 재단하는 오만방자함까지 보였다.


애써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삼촌을 이해하며 다시금 향불만을 지켰다. 이제와 약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그때를 돌아보면, 난 향불을 지키는 행위가 내가 아버지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효’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보다 3살 어린 18살이었던 동생에게는 감히 부탁하기 어려운 책임이자어머니에게는 차마 고인이 된 배우자가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의 영정사진을 계속 보고 있으라 할 수가 없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향불의 연기끝자락이 아빠의 혼에 닿는 마지막 매개체인 듯 나는 집착적으로 멀어져 가는 아빠의 손을 잡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향불이 피어오르기 전에 이미 아빠는 밝은 빛을 따라 새로운 발걸음을 딛고 있었을 것이다. 그 한걸음마다 부디 현생의 우리와의 기억은 하나씩 잊혀가며 주님 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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