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액자 속 은은한 미소 한줄
아빠가 항암을 하면서 잠시 몸이 회복된 기간이 있었다. 아빠는 전보다 체중만 8킬로 정도 빠진 상태에서 비록 머리는 하얗게 세었지만 체력은 더 좋아 보였다. 이전에 찍은 사진 날짜를 보니 2015년 8월 여름이었는데 췌장암 2기 진단을 아빠가 14년 8월에 받았으니 암투병한 지 딱 1년 차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때 우리는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떠났다. 정확하게 위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산 중턱에 위치해 있던 공원 같은 곳이어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었다. 공원 중간중간에 계단 형식의 산책로가 있고 포토스폿 같은 거대한 암벽사이의 암석의자와 테이블이 기억난다. 그땐 마치 아빠가 다 나을 것만 같았고 오랜만의 여행에 들떠있었다. 그땐 우리 가족 모두가 췌장암 완치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나는 나무 계단 위에 서있었고, 아빠는 저 아래 소나무들 사이에 위치한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빠는 본인 독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했고, 나는 기꺼이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여러 각도에서 아빠에게 포즈를 취해보라 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소나무들 앞에 한쪽 다리는 무릎 위에 걸치고 온몸에 힘을 뺸듯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은은한 미소를 보였다. 이후 아빠 옆에 엄마도 앉아서 또 한 장을 찍었었고 아빠는 그 자리에서 계단 위에 서있는 나를 또 찍어줬다.
2016년 3월 8일, 가족여행을 다녀온 지 7개월 뒤 아빠의 장례식장 영정사진에 그때 찍은 아빠 사진이 올라와있었다. 난 분명히 아빠의 전신을 찍었는데, 장례식장에서는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아빠의 가슴팍까지만 네모난 프레임 안에 갇혀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찍은 사진이 당당히 영정사진으로 올라가 있을 때, 들었던 첫 감정은 우습게도 기쁨이었다.
‘내가 찍은 사진이다!’ 하면서 웃었고 엄마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묻자 아빠가 엄마와 영정사진들을 고르기 위해 핸드폰 사진첩을 넘겨보면서 그 사진을 골라주었다 했다. 장례식장, 아빠의 부고라는 서글프고 엄숙한 상황에서 난 우선 ‘아빠가 내가 찍은 사진을 가장 좋아했다’라는 사실에 내심 기뻐했다. 장례식장에서도 난 여전히 아빠의 어린 딸이었다. 그저 아빠가 내가 찍어준 사진을 좋아했다는 말 한마디에 그 사진이 어느 장소, 어떤 상황에 쓰일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 당시 21살이었지만 여전히 아빠가 나의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좋았던 어린애였다.
곧이어 화도 나고 부끄러웠다. 세상에 51살밖에 되지 않은 아빠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딸이 어디 있나 싶었고 그냥 그 모든 상황이 화가 났다. 화려하고 한편으로는 조잡한 분홍색, 흰색 국화들 사이에 있는 아빠의 미소는 마치 모나리자 작품처럼 어떻게 보면 희미하게 웃고 있는 듯했고, 어떻게 보면 약간 근엄하게 날 꾸짖는 것만 같았다. 아빠의 입모양을 여러번이나 유심히 보았지만 앙다문 입술들은 그 끝이 올라갔는지, 일자로 유지되어 있는지 모를만큼 미묘한 선 한줄만을 그리고 있었다.
가족여행에 가서 행복하게 찍은 사진이 이렇게 확대가 되어 수많은 조문객들 앞에 공개될 줄 몰랐다. 아빠의 사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저들에게는 그저 서글픈 영정사진으로만 보이겠지, 저 미소도 슬퍼 보이기만 하겠지, 날 가엾게만 보겠지 라는 비뚤어진 마음들이 어렵게 자리해 주신 조문객들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아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내왔던 친구들에게 나의 살 빠진 아버지를 영정사진으로 처음 소개하게 되면서 부끄러웠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풍채가 좀 있고 반달 눈웃음을 가진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이었을 텐데, 지금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건 다이소 액자에 갇혀 미소 짓는 아버지가 전부였다.
이후 내심 내가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비록 장례식장이라는 자리는 아빠와 우리 가족에게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언하는 장소이고 하루종일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왠지 텍스트로 적혀있던 ‘부고’,‘사망’등의 단어가 실감 나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잠시 어딘가로 갔을 뿐 다시 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기분은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아빠가 사진관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렌즈를 바라보고 애써 미소 지었다면 왠지 난 그 사진을 무서워하고 더 서글퍼했을 것 같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애써 조문객과 가족들을 위한 미소 지으라는 말은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하지만 장례식장 속의 아빠는 항상 나에게 보여주던 그 미소 그대로였고, 조문객 모두가 사진이 참 편안해 보인다고 해주었다. ‘편안해 보인다’라는 그 말이 좋았고 내심 아빠와 조문객 / 가족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그래도 덜 안타깝게 만든듯해서 내심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