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속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아빠
아빠와의 1년 반 동안의 투병시간 속에서의 기억과 추억들은 많지만 그중 가장 선명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빠와 단둘이 있을 때의 시간이었다. 행여 엄마가 나중에 이 글을 보고 자신을 자책하거나 슬퍼하지는 않기만을 바라며 글을 적어보려 한다.
그날은 내 생일 바로 다음날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정확하게 일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생일날 아빠가 괜찮으셨던 만큼 엄마가 잠시 대구에 보험 관련 서류를 가지러 가셨다. 그렇게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수다시간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오래 누워있기 시작한 뒤로 항상 나에게 등뒤에 손을 대고 있는 상태에서 아무 이야기나 해달라고 했었다. 엄마가 똑같이 손을 대면 아프다고 했고, 동생은 공부를 방해하면 안 되서인지 잘 부르지 않았다. 어쩌면 공부를 하는 동생에게 아빠의 아픈 모습이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한 것 같다. 수족냉증을 달고 살았던 나는 아빠의 등에 손을 대기 전에 항상 손에 구수한 냄새가 올라올 때까지 파리 마냥 열심히 손을 비볐고 그 온기가 올라오자마자 아빠의 등에 손을 댔다. 마치 기운을 나누어 주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는데 아빠는 그게 편하고 따뜻하다고 했다.
손을 등에 대고 나면 아빠가 잠들 때까지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아빠는 자기 전이면 항상 나를 불러서 ‘00아 재밌는 이야기 좀 해봐라’ 라며 나의 수다를 자기 전 자장가처럼 들었다. 잠에 들지 않기 전에는 가끔은 나의 수다에 호응도 해주고 이후 아빠가 잠에 들면 조용히 손을 떼고 아빠의 방을 나왔었다. 재밌는 이야기란 별 이야기가 없었고 그저 예전에 함께 했던 즐거웠던 추억들을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MBTI ‘N’의 힘을 빌려 최근에 뉴스에서 본 사회현상들에 ‘만약에’라는 마법의 단어를 빌려 온갖 상상 속의 이야기를 해주는 게 다였다.
아빠와 호스피스 병동에 단둘이 있는 그 시간에도 그렇게 수다를 떨었는데 점점 아빠가 아파했다. 간호사분에게 아빠가 아프다고 말씀드리자 약을 놓아주셨고 그 이후에도 아빠는 계속 이를 앙다물고 고통을 참았다. 그러다가 아빠가 수건에 물을 좀 적셔서 이마에 놔달라고 했다.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아빠의 6인실 병실 안의 화장실은 당시 누가 사용 중이었거나 아니면 혹시나 아빠가 화장실 냄새로 속이 안 좋을까 봐 괜히 병실 밖의 화장실을 갔던 것 같다.
세면대에서 수건에 찬물을 몇 번이나 묻히고 쭉 짜면서 수건이 완전히 적셔지게 하던 중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웠다. 단번에 우리 아빠다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제발 아니길 바라며 바로 수건을 들고 병실로 뛰어갔다. 수건에 물을 묻혀오라고 했던 아빠가, 분명 아무 힘이 없어서 축 늘어져만 있던 아빠가 온 힘을 다해 두 다리와 두 팔을 마구 휘저으며 ‘앞이 안 보여!! 앞이 안 보인다!!‘라고 연신 외치고 있었고 그 옆으로 몇 명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간호사분들이 그런 아빠에게 약을 투약하며 몸부림을 말리고 있었다.
사람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는 동공이 팽창하고 몸이 굳는다고 들었다. 그 당시의 나는 고장 난 카메라 같았다. 렌즈의 초점을 온전히 아빠에게만 고정시킨 채 렌즈의 뚜껑을 닫고 싶어도 닫지 못하고 2초 동안 온 집중을 다해 아빠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손에 축축한 수건이 있다는 사실도 그 2초 동안은 망각했고 소리를 지르는 아빠의 검은 입속만 바라보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분명 나와 아빠 모두가 그 자리에 있는데 그 2초 동안 아빠와 사람들이 서서히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았고 그 주변이 어두워졌다. 누군가가 마치 시공간을 비틀어 나의 등을 잡고 공간에서 끌어내며 모든 상황에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팔을 잡아주었고, 그 순간에야 ‘딸깍’하고 온몸에 다시 전류가 흐르며 눈이 깜빡여졌다. 내 팔을 잡아주셨던 분은 아빠 옆 침대의 환자분이었다. 분명히 환자복을 입으신 분이었고 머리가 히긋히긋 세었던 할머니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분이 그렇게 걸으실 수 있으신지 의문이 든다. 그래도 그 당시의 내가 기억하는 건 옆자리의 환자분이셨다.
‘빨리 엄마 오라고 그래요’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젖은 수건은 함께 가져갔었던 대야에 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번 더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엄마에게 카톡으로 아빠가 많이 아픈 것 같다. 와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남겼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적어도 운전을 하면 3시간은 넘게 걸렸을 텐데 내 기억으로는 엄마가 곧이어 바로 왔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의 시간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나의 시간은 오직 아빠를 기준으로만 가끔은 느리고 선명하게 가끔은 빠르고 흐리게 지나갔다.
엄마가 왔고, 아빠는 그제야 진정이 되었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약에 취해 조금씩 얕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마치 방금까지 그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았던 사람처럼 다시 가슴뼈를 간신히 위아래로 움직이며 잠을 잤다. 3시간 동안 차를 몰며 달려온 엄마는 얼마나 그 차 안에서 기도를 했을까.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디 본인이 없을 때 떠나지 말아 달라고.
그 기도를 들어준 듯이 아빠는 이 일이 있고 4-5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임종을 앞뒀을 시점의 여러 기억들 중에서 앞이 안 보인다는 말과 함께 아빠 근처로 드리워졌던 그 어두움과 아빠의 까만 입속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마 난 그때 ‘죽음’ 또는 ‘저승사자’가 다가온다는 걸 직접 바라봤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