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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하늘색 셔츠, 마지막 수의

철없는 두 딸이 해맑게 골랐던 아빠의 수의

by 흔들리는촛불


동생의 생일은 2월 18일, 내 생일은 3월 2일이었고 아빠는 3월 8일 오전 10시 38분에 돌아가셨다. 동생과 내 생일에 아빠는 병상에 누워 계셨지만 그래도 우리 둘의 생일을 모두 축하해 주실 기력은 남아 있으셨다. 일상적인 대화와 농담들 속에서 간혹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게 할 만큼의 고통이 느껴지면 급하게 약을 투약했다. 그러면 아빠는 너무나도 커 보이는 병원복 속에서 힘 가쁘게 가슴뼈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숨을 내쉬었다.


동생은 고3이었고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고등학교에서 그래도 서울대 진학 유망주로 손꼽혔던 동생은 방학 때에도 공부를 해야 했고, 냉철해 보일 수 있지만 언제까지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호스피스에 입원하는 순간,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더 이상 병의 진행 경과와 치료 방법이 아닌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쳐준 순간부터 우리 가족은 더 이상 ‘희망‘에 모든 걸 걸지 않았고, 각자 저마다 ’ 죽음‘이 다가올 시간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특별한 교육, 그리고 아빠의 마지막 옷


호스피스 병동은 보호자들에게 ‘죽음’을 가르쳐주는 사무실이 따로 있었다. 그곳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방법이 적혀있는 팸플릿을 받고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모두 유심히 듣고 있었는데 신기하게 우리 누구도 그 교육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죽음을 기다리는 5개의 단계가 있었다.

처음에는 ‘부정’을 하고, 이후 ‘분노’하고, 현실과 ‘협상’하려 하고, ‘우울’해하다가 ‘수용’하게 된다고 했다. 아주 정확한 말들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다행히도 모두 이미 ‘수용’의 단계에 있었다.


아빠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더 이상 아빠가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허공만 바라보았을 때 나랑 동생이 웃으며 아빠의 수의를 준비했다. 이렇게 글로만 보면 감히 아빠의 죽음을 즐거워하는 사이코패스인가 싶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의 우리는 이미 아빠의 죽음을 수용했고 오히려 기약 없던 사망 선고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언제 곁을 떠날지 모를 아빠를 지켜보고 있어야 해서 우리 가족과 가장 친한 엄마의 친구이자 우리가 어릴 적부터 ‘이모’라고 불러온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모와 함께 고속터미널에서 아빠가 마지막으로 입으면 이쁘고 편안할 옷을 쇼핑했다.


셔츠, 속옷, 양말, 바지를 사며 우리는 계속 이 사이즈는 너무 작다고 남자 사이즈 M정도의 옷들로 실랑이를 벌였다. 머릿속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정말 순수하게 아빠에게 어떤 옷이 가장 이쁠까, 뭐가 가장 편안할까라는 생각만 있었지 이 옷이 아빠의 마지막 옷이자 관에서 입게 되실 옷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는 정말 약간의 스침에도 아파하고 불편해하는 아빠를 보며 오직 옷의 안감이 부드러운지, 양말 안에 혹시나 따끔거리는 물질은 없는지 연신 면을 만져보며 이게 더 부드럽다, 아니다 저게 더 부드럽다며 실랑이만 벌이고 있었다. 그 실랑이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침내 그중 면도 부드럽고 아빠가 좋아할 것만 같은 이쁜 셔츠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 옷들을 사서 엄마에게 뛰어가 자랑을 했었다. 지금 이 글을 적다 보니 얼마나 철이 없었나 싶다. 난 엄마에게 본인이 대학생 시절부터 알아온 같은 학과의 선배이자 21년 동안결혼생활을 하며 사랑으로 함께 두 아이를 길러온 배우자가 입게 될 수의를 자랑하듯이 내보이고 있었다. 그때 엄마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배우자의 수의를 사 와 해맑게 웃는 그의 두 딸을 보며 얼마나 미래가 막막했을까


나중에 옷을 입혀보니 모든 옷들이 다 아빠에게는 헐겁고 컸다. 아빠는 본래 조그라 들었던 몸에서 호스피스에 온 뒤 정말 마지막 생명력이나 수분까지 다 빠져나간 가볍디 가벼운 몸이 되어 있었다. 같이 간 이모의 말이 맞았다. ‘너희가 고른 옷도 아마 크실 거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모는 결국 우리가 이쁘다고 한 옷을 고르게 해 주셨다. 그리고 그 하늘색 셔츠는 막상 아빠가 입고 나니 남의 옷을 훔쳐 입은 듯 어색하고 볼품없었다. 옷 안에 아빠가 두둥실 떠 있는 느낌이었고 그 사이로 여실히 드러나는 가슴뼈와 쇄골은 마치 아빠가 옷걸이가 된 것만 같았다. 살 좀 빼라는 잔소리를 10년 넘게 들었던 아빠는 그렇게 마지막에는 그 누구보다 가벼운 몸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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