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3가지

허황된 꿈

by 윤태린


정말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세상은 공평하다고, 운명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웃어준다고 말하던 사람들.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나는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다.

“다 똑같이 힘들어. 인생은 원래 그래.”

어른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그건 허구였다.

내 귀엔 동화책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근거 없는 위로이자 망상처럼 들렸다.

어떤 부모, 어떤 집안에 태어날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면

나는 불만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선택도, 동의도 없이 정해졌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고, 책임감은 사라진 집에서

부모는 바라는 것만 많았다.

“좋은 직업 가져야지. 의사가 최고야.”

“그러니까 공부 좀 해.”

나는 어릴 적부터 ‘해야만 하는 것들’ 속에 묶여 있었다.

좋아하는 것보다, 시키는 게 먼저였다.

그게 정말 자식을 위한 길인지,

아니면 부모의 욕심을 위한 길인지,

사춘기 내내 나는 그 경계에서 분노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말로는 “외모가 다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눈빛과 행동으로는 대놓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했다.

성형을 하면 “성괴”라 욕했고,

안 하면 “좀 하라”며 뒤에서 수군거렸다.

마르면 “가시 같다” 하고,

살이 찌면 “돼지”라며 웃었다.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 이 지랄 맞은 세상에 태어난 게,

가끔은 죽고 싶을 만큼 끔찍했다고.

마녀사냥은 기본이었다. 세상이 평가하는 기준은 훨씬 더 가혹하다는 걸.

너무 예쁘면 시기와 악플,

못생기면 무시와 조롱.

평균이면 평균이라고, ‘애매하다’는 낙인이 찍혔다.

말 한마디가 꼬이면,

한순간에 이상한 사람, 거짓말쟁이, 이상한 여자 취급을 받았다.

그걸 겪으며 나는 확신하게 됐다.

사람의 본성 속에는 ‘선’보다 ‘악’이 먼저라는 걸.

누군가는 천사처럼 굴지만,

그건 자기 이익이 걸려 있지 않을 때만 그렇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점점 사람을 피했고,

집 안에 틀어박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히키코모리 같은 삶.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나만의 동굴에서 숨 쉬듯 버텼다.

외모에 대한 압박은 매일같이 목을 조였다.

평균보다 살이 조금 찌면, 그게 마치 ‘잘못’인 양 느껴졌다.

그 스트레스 속에서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고,

몸은 점점 망가졌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살이 빠지면 조금은 인정받을 거라 믿었으니까.

그 무렵, 나는 이상하게도 할머니나 엄마가 하던 걸 그대로 따라 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없을 때, 그들은 늘 무당집으로 갔다.

나는 평소엔 그런 걸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그냥 그 문을 열었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짙은 향 냄새와 뜨끈한 초의 열기가 나를 감쌌다.

작은 방 안, 벽에는 알록달록한 부적이 붙어 있었고,

조상 사진과 과일, 막 깎은 사과가 상 위에 놓여 있었다.

무당은 이미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그의 눈빛이 너무 깊어서,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다.

“앉아.”

그 한 마디에, 나는 조용히 맞은편 방석 위에 무릎을 꿇었다.

무당은 촛불 옆에서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너… 힘들지.

그냥 힘든 게 아니라, 속이 텅 빈 것처럼 힘들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이 조금 흔들렸다.

그걸 본 무당은 마치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는 듯, 말을 이어갔다.

“웃을 때도, 네 속은 하나도 안 웃어.

사람들이 네 웃음을 진짜라고 믿어도, 너는 매번 거짓말하는 기분이지.

왜 이렇게 오래 버텼냐.”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혀서 고개를 숙였다.

무당은 내 이름을 한 번 불렀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조상님이 널 지켜.

네가 잘되게, 못된 짓 못 하게, 헛짓 못 하게 막아준다.

근데… 너는 그 보호조차 힘들어서, 그냥 다 놓고 싶은 거야.”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마음속 문장이,

그 사람의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온 것 같았다.

“너, 애늙은이래.

왜 이렇게 빨리 철이 들었냐고…

어렸을 때부터 못 볼 꼴 다 보고 살아서 그렇대.

애가 어른 걱정을 하고, 어른이 돼서도 애처럼 못 살았잖아.”

그 말이 내 가슴을 찢었다.

나는 무당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방석 위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무당은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안 운다고, 안 아픈 거 아니야.

그냥 울 힘이 없어서 참은 거야.

네가 참는 동안, 네 안에 있는 어린애는 계속 울고 있었어.”

그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콧물과 눈물이 뒤섞여 흐르고, 숨이 헐떡거렸다.

나는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라도 울음이 세상에 들릴까 봐.


그날 밤, 집에 돌아와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에, 방 한 구석에 묻혀 있던 공책을 꺼냈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에 비친 내 손은, 예전보다 더 마르고 창백했다.

“그냥… 한번 적어볼까.”

엄청 예뻐지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

엄청나게 부자가 되기.

쓰고 나니, 웃음이 났다.

너무 뻔하고, 너무 어린애 같은 소원.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게 진심이었다.

한참을 공책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근데… 돈 많으면 진짜 행복할까?”

나는 알고 있었다.

돈이 공허함을 메워주지 못한다는 걸.

외로움을 덜어주지도, 오래된 상처를 치유해주지도 않는다는 걸.

그저 불편함을 줄일 뿐,

삶의 뿌리 깊은 고통에는 손끝도 닿지 못한다는 걸.

그래서 내 소원은 결국, 헛된 망상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적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듯,

아니, 어쩌면 미래의 나에게 전하듯.

그날 이후, 공책 속 소원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예뻐지고 싶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다.

그게 너무 세속적이고,

어쩌면 부끄러운 바람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속 가장 솔직한 진실이었다.

“어차피 현실은 안 바뀌잖아.”

툭 던지듯 말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꿈꾸는 건 내 마음이니까.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결국, 버티는 만큼 살아남는다.

하지만 버티는 것만으로는 살아있는 게 아니다.

사는 건 버티는 게 아니라, 숨을 쉴 이유를 찾는 거다.”

나는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내 소원은 계속 세속적이고 유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세속적인 꿈마저 잃어버리면,

내 마음속 불씨마저 꺼질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꿈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꿈이 허황돼도, 나를 비웃어도.

그리고 언젠가, 아주 먼 훗날.

혹시라도 내가 조금은 예뻐지고,

조금은 사랑받고,

조금은 부유해진다면—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