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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재 Jun 15. 2021

#10 "알파카 스테이크... 죽이네..."

Peru, Aguas Calientes

가끔은 호화로운 여행도...


마추픽추를 온몸으로 느끼고 숙소로 돌아갔다.

긴 여정으로 인해 피곤해진 몸을 침대에서 조금 달래다 보니

금방 마추픽추의 마을인 아구아칼리인테스의 밤이 되었다.

기다렸던 마을의 밤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워 

내 가슴을 쿵쾅쿵쾅거리게 하고 

두근두근되기 시작했다.

기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기찻길로 이어진 작은 마을에

노란빛 전구들이 길을 밝히고,

그 길 위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여행 얘기를 하는 여행자들,

그리고 잊을만하면 연기를 뿜으며 치~~익 치~~익 낭만적으로 들려오는 기차소리까지...

오늘 밤은 아구아칼리인테스에 취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구아칼리인테스 마을

여행 내내 돈을 아끼겠다고 시장에서 끼니를 채우고,

비싼 음식을 한 번도 먹지 못한 우리에게 오늘만큼은 호화로운 밤을 보내야만 했다.

항상 시장에서 끼니를 채우면서 노래를 불렀던 알파카 스테이크...

오늘의 메뉴는 정해졌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유독 감성적인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은은한 노란 불빛들이 식당 전체를 밝히고,

내가 좋아하는 초록 초록한 마당과,

그리고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얘기를 하는 여행자들까지...

우리의 호화로운 밤을 보내기에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이 없었다.

메뉴판을 보고 오늘만큼은 가격표를 보지 않고 가장 좋은 스테이크와 와인을 한 병 시켰다.


손바닥만 한 작은 스테이크 한 덩이를 접시에 두고 칼질을 시작했다.

한 입 물자마자 눈이 똥그레 지며 외쳤다.

알파카 스테이크...죽이네...

평소 같았으면 세 입으로 끝날 것만 같은 그... 작은 알파카 스테이크를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더 조금씩...

잘라가며 30번은 음미를 한 거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그 작은 스테이크를 조금씩 먹어가며 행복해했던

그 소박한 행복들이 정말 그립고 그때의 그 감정들을 또다시 느껴보고 싶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재정적인 여유가 생겨서 다시 돌아간다 할지언정,

알파카 스테이크만큼은 세 입이 아닌 30번은 나눠서 먹고 싶다는 바보 같고 어리숙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호화로운 음식을 먹고 기찻길 앞에서 맥주를 한 잔 더 했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많은 얘기를 오갔다.

내일부터 쿠스코로 가는 길에 함께하는 성계투어가 있지만

마추픽추를 마지막으로 쿠스코에서 재하는 남미를 떠나야만 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던 재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정말 소중히 여겨졌다.

재하가 아니었다면,

나는 과연 누구와 함께 마추픽추를 왔을까..

혹은, 혼자 마추픽추를 여행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누구와 함께였던 또는 혼자 보냈을지언정 그 나름의 즐거움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하와 함께 했기에 나의 남미여행의 시작이 더욱 특별했다는 건 확신한다.


그렇게 우리의 그 어떤 날보다도 럭셔리했던 아구아칼리인테스의 밤이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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