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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재 May 30. 2021

#9 "저거 본다고 눈물이 진짜 나나..."

Peru, Machu Picchu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꿈꾸는 마지막 목적지,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곳,

인생에서 한 번 정도는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많은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평생 품고 있는 마추픽추,

그곳에 발을 밟다.


간단하게 재하와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드디어 마추픽추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꼬불꼬불 어디로 향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산속으로 20분 정도 버스가 이동했다.

기사님이 다 왔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드니

자욱한 안개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마추픽추를 맑은 날씨에 보는 건 큰 행운이라고들 얘기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가 자주 내리고 항상 안개가 끼여있는 곳이 마추픽추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안개에 뒤덮여 마추픽추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잉카제국의 마지막 성전이고 마지막 숨을 함께한 마추픽추에 어떤 기류가 흐르는지

정말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얄밉기도 했다.

우리가 입구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앞에 있는 사람을 보기에도 희미할 정도로 안개가 자욱해서 걱정이 앞섰다.

걱정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표정이 우리와  별 다름이 없었다.

정말 못 보는가 하는 걱정이 크게 앞섰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한 채  마추픽추에 왔으니 스탬프는 찍어야 한다고

재하가 마추픽추 스탬프를 찍으러 같이 가자고 한다.


마추픽추 입구에는 기념을 하기 위한 마추픽추 그림과 글자가 새겨진 스탬프가 있다.

그걸 보고 의미 있는 곳에 기록을 하고 싶어 내 여권 뒷 페이지에 그 도장을 찍었다.

(세상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걸 1년이나 뒤에 알았다...)

세상 멍청한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여권에 그런 도장을 찍어버린 바보 같은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그 도장 때문에 1년 뒤 러시아에 갈 때 입국 금지를 당할 뻔했었다.)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고도 아무것도 모른 채 도장을 찍었다고 마냥 좋다고 해맑게 마추픽추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오르막을 조금 더 올라야 마추픽추를 볼 수 있다.

그 길을 오르다 문득 예전에 본 꽃보다 청춘 페루편이 생각이 났다.

유희열, 윤상, 이적이 함께 마추픽추에 보러 가는 내용이었다.

그들도 역시 안개에 뒤덮인 마추픽추를 보고 절망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한없이 기다리다... 또 기다리다...

거짓말처럼 뜨거운 햇살이 안개를 벗겨내자 그들은 다시 희망을 품고 올라갔다.

그토록 보려 했던 마추픽추의 모습을 함께 보기 위해

어린아이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손을 맞잡고,

서로의 설레는 마음과 뜨거운 온도를 공유했다.

그리고는 마추픽추 앞에서 함께 고개를 들었다.

마추픽추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마추픽추 앞에서 그들은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유희열이 꿈만 꾸던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쳤다.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그들의 세월을 돌아보며 옛 추억에 잠긴듯 했다.

그들의 감정을 정확히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유희열은 이렇게 얘기했다.


그 순간 왜 눈물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의미를 조금 알게 됐던 건 옆을 돌아보니 상이형이 있고,
더 옆을 보니 적이가 있잖아요.
나의 청춘의 도입부에 함께 해 준 두 사람들이 지금 내 옆에 있는 거잖아요.


유희열의 눈물에는 꿈꾸던 마추픽추를 봤다는 기쁨보단

옆에 함께 있는 윤상과 이적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우리도 그들과 비슷했다.

처음 올라갔을 땐 자욱한 안개뿐이었지만

몇 시간을 기다려 그 어느 때 보다 맑은 마추픽추를 함께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도 그리고 재하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예전 꽃청춘을 보며 생각했었다.

저거 본다고 눈물이 진짜 나나...?

닭똥 같은 눈물이 볼 위로 줄줄 흘렀다...

많은 생각과 감정이 동시에 오갔다.

지금 이 순간 재하와 함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면서 "나도 거 가봤다"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자연 속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

두 분과 함께 다시 오고 싶었다.

지구 반대편인 먼 나라에 부모님과 함께 오기란 현실적으로 정말 쉽지 않겠지만

현실적인 걱정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꼭 한 번은 이곳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들이 그리워졌다.


여행이란 그런 거 같다.

정말 아름답고 좋은 곳에 함께 있는 사람,

혹은 그 순간에 함께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고생 끝에 69호수를 봤을 때,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처음으로 봤을 때,

그때마다 나도 그랬다.

그 순간 함께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소중히 여겨지고

함께하지 못했지만 함께 오고 싶은 어느 누군가가 그리워지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with. 마마 파파 in syd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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