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미 가면 고산때매 죽는다카든데 감당되겠나"
Peru, 69 lake
오르막 뒤에 찾아오는 행복.
대구에서 인천까지 4시간
인천에서 리마까지 약 25시간
리마에서 와라즈까지 약 10시간
약 40시간 이동 후에 첫 여행지인 와라즈에 도착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푸석푸석한 얼굴과 기름진 내 머리를 따뜻한 온수로 얼른 다 씻겨 내리고 싶었다.
샤워를 하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69호수 투어 신청을 하고 잠에 들었다.
"남미 가면 고산때매 죽는다 카든데 감당되겠나"
"남미 가면 고산이라서 숨도 못 쉰다는데 살아 오것나"
"고산병 걸리면 머리통 뿌사진다던데..."
내가 남미를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얘기들이다.
직접 겪어봐야 숨도 못 쉬는지, 머리통이 뿌사지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 괜찮다고 걱정마라고 말하고 왔지만 여행 처음부터 고산과의 하루를 보냈다...
외국에 와서 외국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새로운 인연, 새로운 추억을 쌓는 거도 좋지만
한국인들을 쉽게 볼 수 없는 이곳 남미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새벽부터 69호수 투어 버스를 기다리던 중,
나와 키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한국인이 내 앞에 섰다.
"한국 사람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재하였다.
페루 여행 대부분을 함께 했던 재하와의 첫 만남이었다.
미담으로 우리가 함께 여행한 지 10일 정도 됐을 때쯤, 재하는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남미까지 와서 남자랑만 같이 있어야 하냐... 내가 그때 형이랑 인사를 안 했어야 했다..."
음...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하게? 69호수로 갔다.
입구에서부터 우리는 남미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 양쪽으로 이어진 절경들,
졸졸졸 소리와 함께 흘러내리는 냇물과 그 모든 것들을 품에 안은 소들까지...
이제 내가 남미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69호수 가는 길
그렇게 자연을 느끼면서 2시간 정도 지났을 때쯤,
오르막길을 올라가면서 고산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해발 4,600m까지 오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눈앞에 보이던 아름다운 절경들은 뒷전이고
내 눈은 바닥에만 시선을 두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큰 언덕 하나를 거의 다 올라왔을 때쯤
'와... 이제 정말 69호수에 도착한 걸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언덕을 올랐지만
눈앞에는 더 큰 언덕이 우리에게 얼른 오라며 뜨겁게 맞이해 주고 있었다.
죽음의 오르막길 중...그렇게 두 번째 언덕만 오르면 정말 69호수를 볼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힘입어 오르기 시작했다.
몇 걸음을 내딛자 지금까지는 산책길을 살랑살랑 걸어왔다는 걸 느꼈다.
고산이라서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는 게 너무 힘이 들고 숨이 차서 헐떡거리기까지 했다.
"남미 가면 고산때매 죽는다 카든데 감당되겠나"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자꾸 떠오르면서
내 정신이 감당 안 되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1시간 정도를 더 오르니 우리 앞에 더 이상의 오르막이 보이지 않았고
앞에 69호수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69호수"와... 와... 진짜 미쳤다..."
69호수를 마주했을 때,
그 어떤 단어로도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넋을 놓고 미쳤다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69호수 앞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르면서 우리는 얘기했다.
남미는 절대 쉽게 얻는 게 없구나...
69호수가 있는 와라즈라는 도시에 오기 위해 10시간 버스를 타고,
와라즈에서 트레킹을 하기 위해 4시간 버스를 또 타고,
4시간의 정말 힘들었던 고산 트레킹을 하고 난 후에야
아름답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보석 같은 호수를 만날 수 있었다.
이 69호수 하나만을 보기 위해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했고
이 힘든 트레킹을 해야 했지만
그 순간 모든 고생들은 머릿속에서 지워졌고
"행복하다"라는 단어로 그때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
그때, 우리는 알았다.
이제 시작인 남미 여행이 앞으로 굉장히 힘들 거라는 걸
하지만 그 끝에는 모든 과정들을 까맣게 잊을 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69호수 앞에서#남미 #페루 #69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