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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재 Jan 26. 2021

#3 "Can I sit here...?"

Peru. Huacachina

사막에서 여행자들과 함께 행복했던 밤.


여유로운 일정으로 온 나에 비해 보다 타이트하게 일정을 계획한 재하는

69 호수 투어를 마치코 그날 밤 와라즈를 떠났다.

우리는 일주일 후에 쿠스코에서 만남을 기약하고 작별했다.


다음 날, 나는 와카치나 사막에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옆자리에 있던 재하의 빈자리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고생하면 정이 든다고 69 호수에서 같이 고생을 했다고 벌써 정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또다시 혼자로 돌아왔다.


땅 덩어리가 큰 남미 여행에서 나처럼 가난한 배낭 여행자들은

8시간에서 많으면 20시간 정도 버스로 도시 또는 나라를 이동하곤 한다.

와라즈에서 리마까지 8시간, 리마에서 이카까지 3시간을 이동한 후에서야

그토록 가고 싶었던 사막이 있는 와카치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카치나의 숙소에 들어서자 이때까지 봐 온 페루와는 많이 달랐다.

주변은 온통 산 대신 사막으로,

게스트 하우스에는 꾸질꾸질한 로비 대신 수영장과 야외 다이닝 펍이,

조용하고 적막한 분위기 대신 당장 라라랜드를 찍을 것 같은 분위기의 달달한 음악까지 흘러나왔다.

벌써부터 뭔가 행복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 예감이 들었다.

와카치나 숙소

휴양지에 온 느낌에 꾸질꾸질한 옷들을 집어던지고

셔츠와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텐션을 올려 사막으로 발길을 향했다.

중학교 입학할 때 낯선 교복 입고 처음 등교하던 때,

그때의 그 설렘처럼 발걸음은 금방 사막으로 나를 데리고 왔다.


눈 앞에는 오아시스가 있고 온 사방이 모래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그 모래의 끝은 바다처럼 내 눈으로는 끝을 확인할 수 없었다.

와카치나 사막
사막이라니...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진짜 그 사막이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낯선 사막의 공기는 지구가 아닌 다른 별로 나를 끌고 온 거 같아서  낯선 기분이 즐거웠다.


와카치나에는 버기 차를 타고 사막을 누비고 일몰까지 보는 완벽한 투어가 있다.

그 투어를 하려고 투어사를 돌아다녔지만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오늘은 힘들다고 한다.

아쉽기도 했지만 와카치나에 있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즐거웠기에 투어는 내일 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맥주를 사서 사막을 바라보며 허기진 배를 달래주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문을 열자 눈 앞에는 영화에서만 보았던,

내가 꿈만 꾸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노란 전구들,

프랑스 파리 골목에서 흘러나올듯한 잔잔한 음악들,

싸늘한 몸을 따뜻하게 데위 줄 장작들,

그리고 이 분위기에 흠뻑 취하게 해 줄 와인과 사람들까지

나도 그들과 함께 와카치나의 밤을 즐기고 싶어 다가가서 말했다.


Can I sit here..?
Why not!!

모닥불 앞

중국에서 혼자 배낭여행을 온 친구,

프랑스에서 온 커플,

미국에서 일을 하고 호주로 돌아가기 전 여행 온 친구,

한국에서 지루한 대학생활을 하다 온 나,

이렇게 우리 5명은 모닥불의 온기를 느끼며 도란도란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각자의 여행 얘기를 하기도 하고

살아온 인생 얘기도 소소하게 하며

그들을 조금씩 알아갔다.

내가 그토록 꿈꾸던 배낭여행이 이런 거였을까...


지금 이 순간을 머릿속에 기억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아서

얼른 방으로 뛰어가서 카메라를 들고 왔다.

삼각대를 펴고 셔터를 누름으로써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오늘 밤의 추억을 저장했다.


옆에 있던 호주에서 온 친구는 삶에 지쳐 남미로 왔다고 얘기했다.

"미국에서의 쳇바퀴 돌아가는 내 생활에 많이 지쳤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남미 여행을 통해 나를 조금 더 알아가고 싶어."


26살이었던 내가 10살 정도 차이나는 그녀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대학교 1년이라는 시간을 남기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었다.

남들처럼 취업을 해야 할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도전을 해야 할지,

남미 여행을 통해 나를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다.


이런 얘기를 사람들에게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몇 백만 원 줘가꼬 여행 간다고 니 인생 바뀐다 카드나."

맞는 말이다.

여행을 통해 내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를 알아가고 나의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변화되는 모습들을 당장 느끼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1년이 지나, 5년이 지나 또는 10년이 지나서

그런 것들을 하나씩 깨닫는다고 생각한다.


연락이 되지는 않지만 지금쯤 그녀도 남미 여행을 통해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되고 그의 인생을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한다.

호주에서 온 친구와 술에 저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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