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영재 Jan 31. 2022

#20. "26살에 몰랐던 나의 얼굴을 마주했다.."

Bolivia. Huayna potosi

“It’s so dangerous. you could die.”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가이드는 앞으로 100m는 정말 위험하다고

지금 이 상태면 죽을 수도 있다고 내려가라고 얘기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나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남은 100m의 길

단순하고 일차원적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앞으로 100m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고

여기서 포기한다면 스스로에게 정말 부끄러울 것만 같았다.

그리고 포기하는 순간,

 인생에 포기란 단어는 너무 쉽게 스며들 것만 같았다.

이대로 몸이 고장 나서 앞으로 남미 여행을 못할지언정

나는 끝까지 가야만 했다.

“I can do it”


이라고 대답하고 오로지 정신력만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허벅지를 미친 듯이 때려가며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기대하던 정상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감과 함께

오전 6시가 되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와이나 포토시의 정상은 구름과 눈에 덮인 능선,

그리고 저 멀리서 고생한 나를 감싸주는 따뜻한 일출,

그걸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이었다.


남들이 와이나포토시에서 본 일출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밤새 눈이 내리고

지금도 눈이 내리고

눈앞엔 눈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장 바로 앞에 있는 가이드도 잘 보이지 않는데

끝없이 펼쳐진 능선과 능선을 밝히는 일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감격의 눈물…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는데 눈물을 쥐어짜 내고 싶어도 나질 않았다.

미친 듯이 힘만 들고 정상에 올랐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아서 허탈하기만 했다.

그렇게 짧은 10초 같은 10분의 휴식 후에 다시 베이스캠프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큰 아쉬움만 가지고 와이나포토시 투어는 끝이 났다.


남미 여행이 다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때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비록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더 이상 올라갈 길은 없었다는 걸.

여기가 6088m 정상이었다는 걸.

내가 해냈다는 걸.

 모든 것들을 시간이 지나 한국에 와서 알게  것이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넘기 힘든 오르막은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그때, 정상 100m를 남기고 만약 내가 포기했더라면

아마 다음에도 힘든 일이 생기면 쉽게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의지를 가지고 올라갔기 때문에

앞으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26살이 되어서 몰랐던 진짜 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목표가 생기면 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런 나를 알게 해 준 와이나포토시에 정말 감사함을 표한다.


요즘도 육체나 정신이 죽을 듯이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와이나포토시에서의 마지막 100m를 되새기며 그 순간을 이겨내기도 한다.


혹시 누가 와이나포토시를 가고 싶다고 하면 나는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이 글을 보고 혹시나 가게 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분은 올라가는 길에 '임영재 개자식'이라는 욕을 수없이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암흑의 정상


작가의 이전글 #19. "정상 100m를 앞두고 몸을 내동댕이 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