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4, 소를 어떻게 할지는 소에게 물어봐야

by 지구지고

소를 빤히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소 두 마리와 마주한 난 어쩔 줄 몰랐다. 소 때문에 멈춰 설 줄은 몰랐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등에서 배로 이어지는 누런 얼룩을 가진 검은 소 한 마리와 누런 소 한 마리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소가 가는 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빵빵 소리 지르던 버스도, 릭샤의 삑삑이도 소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이곳의 무법자들이 손을 놓았으니 나도 어쩔 수 없다. 다리는 삐쩍 말라 알루미늄 사다리 같았고 배는 양옆으로 불뚝 튀어나왔다. 바닥에서 무엇을 찾는지 소는 고개를 앞으로 쭉 빼고 드는 법이 없다. 늘 아래만 보며 걷는다. 혀로 입 주위를 핥으며 걷는 소는 입 주변의 숭덩숭덩 난 털도 같이 핥았다. 굵고 기다란 까만 눈썹은 눈을 반쯤 가렸다. 소는 갓난아이 주먹만 한 까만 눈을 껌먹껌먹 하면서 누가 뭐래도 제 갈 길을 간다. 가만히 옆으로 비켜서는 수밖에 없다. 오토릭샤가 다니니 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돌아갈 길도 마땅치 않다. 하지만 소가 지나갈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소가 똥이라도 싸는 날이면 고역이다. 그 높은 데서 아스콘 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지면 땅에서 퍼지는 파편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군다나 묽은 변을 내리쏟으면 파편 반경은 2m는 될 것이다. 한 마리는 더 크니까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반경을 2.5m로 늘려야겠다. 앞에서 내게 오고 있으니, 소의 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볼 수 없다. 일을 본다는 눈치를 챌 수 없다. 그러니 2.5m 안에는 최소한의 시간을 머물러야 한다. 꼬리를 흔드는 날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소 등에 파리가 날아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소를 마주하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날이다. 주춤하고 물러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니 느린 걸음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 내 옆을 지나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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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으로 들어가는 문, 문이라 해야 모서리는 무엇이 박았는지 한쪽으로 누었고, 뻘겋게 녹슨 철근을 내장이라고 들러낸 한 길 내기 되는 시멘트 기둥이다. 문은 땅을 딛었고 그나마 지탱하던 경첩도 맨 위는 뒤틀려 제구실을 하려는 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문기둥에 반쯤 붙어 팔랑이는 포스터를 뜯는 염소가 소가 가는 길을 막았다. 소가 염소 엉덩이를 돌아 사람들이 있는 나무 그늘로 다가가자 사람들이 피했다. 운동장에 풀이 많은데도 풀을 뜯지 않는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속에서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나 보다. 육식동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다리는 살이 하나도 없이 뼈만 남았고 배는 솜은 실은 당나귀처럼 뽈록했다.

지금도 방글라데시 마이멘싱 시내를 가다 보면 도로 한가운데로 소들이 한가로이 지나간다. 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소를 위해 주니 살기 좋은 곳이다. 소가 지나가면 릭샤, 오토들이 멈춰 서거나 비켜 간다.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때는 상점의 진열대 너머를 가만히 쳐다보기도 한다. 사람도 그 소를 가만히 쳐다본다.


사람이 소를 피하고, 사람이 소와 마주 보는 나라, 소가 염소를 피하고 소가 도로의 주인인 나라, 무슬림의 나라 방글라데시에서도 소는 신이었다. 신이 사람과 같이 살아간다. 소가 가는 곳이 길이요 신심이다. 모든 것이 신이라는 인도인들의 말을 여기 방글라데시에서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이 누구나의 곁에 있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나는 아직 방글라데시에서 소고기를 사지 않았다. 신을 입에 담을 수 없어서였다.


“이 소들은 주인이 누구야?”

내가 학생에게 물었다.

“발로 나(bhalo na, 좋지 않아요.), 발로 나” 한다.

“왜”

번역기를 들이댄다.

“병들어서 버린 소나 늙은 소입니다. 주인은 없어요.”

“없어요? 죽으면 어떻게 해요?”

돌아온 대답은 “몰라요.”였다.


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몸이 아프니 치료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먼저 간 신의 옆으로 안락하게 가는 게 좋은지. 지금처럼 거리를 활보하는 아픈 신이 될 것인지. 소의 대답을 기다려 보는 수밖에.


방글라데시에서 도축되는 소는 버펄로라고 하기는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푸줏간 앞에서 소고기를 살까 말까? 망설이던 일을 멈췄다.


【정보】

소고기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살 수 있다. 마트에는 냉장 시설이 있어 냉장고에 보관된 소고기를 살 수 있지만, 시장에는 냉장 시설이 없어 밖에 매달라 놓고 판다. 시장에서 소고기는 1kg에 1만 원 정도 한다. 하지만 먼지와 더운 날씨로 인해 시장에서 소고기를 사려면 아침 일찍 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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