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소리에 이발하다

by 지구지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오늘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천둥소리 하나 때문에 해결한 날이네요. 아침 먹고 책상이 앉아 있다가 콰꽝! 꽈 쾅! 단발성 굉음에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책상에 앉아 졸고 있던 눈이 천둥소리에 저절로 떠졌습니다.

에피쿠로스는 <피토클래스에게 보낸 서신>에서 「천둥이 생기는 이유는 바람이 구름 속 빈 공간에 갇히기 때문일 수도 있고(바람이 갇혀있는 호리병에서 볼 수 있듯), 바람에 실려 불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타오르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구름이 찢어지고 분리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구름이 얼음처럼 응집되어 서로 부딪치고 파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천둥소리는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소리 같습니다. 소리가 좀 요란했거든요.


일상을 시작하는데 무언가의 충격이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였는데 살짝 비를 뿌리더니 소리만 지르고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늘도 짜증이 났나 싶었습니다. 왜 있잖아요. 시원하게 주룩주룩 비를 뿌리고 싶은데 내릴 수가 없어 답답한 상황. 아마 마음을 소리를 질러서 표시했나 봅니다. 졸다 깼으니 또 졸 수도 없고 동네나 한 바퀴 돌아야겠다 싶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검은 라운드 티에 어제 입어서 빨려고 내놨던 바지를 입고요. 출근할 때 입었던 바지니 아무리 동네를 산책한다 해도 불편했습니다. 몇 발짝 안 돼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아니,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합리화한 게 맞을 겁니다. 비가 언제 올지도 모르니 ‘물이나 사서 들어가자’로 마음을 바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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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이 있는 큰길에서 샛길로 들어가는 삼거리는 언제나 복잡합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릭샤가 바퀴를 앞 릭샤 뒤꽁무니에 처박고 서서 갈 때를 기다리고, 큰길로 나오려 릭샤는 서 있는 릭샤의 옆구리를 받을 듯 서서 릭샤왈라(릭샤 운전사)들끼리 뭐라 말을 주고받습니다. 유턴하려는 차는 팔을 차창 밖으로 내놓고 장사꾼의 밴이 빼기를 기다리지만 좀처럼 빠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삼거리는 늘 릭샤와 사람, 장사꾼, 차가 뒤엉키기 일쑵니다. 전봇대 때문에 틈이 생긴 사이로 간신히 빠져서 마을 안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과일 가게는 문을 열었습니다. 밴에 야채를 가득 실은 장사꾼들은 셋이나 나와 있었고요. 과일 가게에는 이제 망고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입니다. 구아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바나나는 노란색보다는 파란색이 대부분이고요. 수류탄 모양의 파인애플은 주먹만 한 것을 벽에 죽 걸어 놓고 팔고요. 열무라도 있으면 살까 싶어 야채 밴을 두리번거렸는데도 없네요. 악력 운동하기 좋을 만큼 손안에 쏙 들어올 만한 오이, 꼭지를 따낸 토마토, 새끼손가락 반만 한 청양고추보다 훨씬 더 매운 고추, 보라색에서 탈피하려는 가지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풀들이 밴 위에 가득했습니다. 세 곳의 채소 밴을 살펴보다 이발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계획은 변경하라고 있는 건가요. 집에서 나온 목적에 이발은 없었는데 '이발이나 하고 들어가자'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에어컨이 나오는 시설 좋은 이발소에 갈까 하다 날씨 탓을 하며 덥지 않아 동네 이발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우리 동네 반경 200미터 안에는 이발소가 여섯 군데나 있어요. 골목 입구에만도 두 곳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곳곳에 있어 이발소가 정말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아마 머리 자르는 것뿐 아니라 수염도 다듬어야 하니 이발소를 많이 이용하는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첫 번째 이발소를 들여다보니 두 명의 이발사가 두 대의 의자를 놓고 영업하는데 손님이 대기할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나를 슬쩍 보던 이발사 한 사람이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하며 들어오라는 표시를 했지만, 그냥 손을 들어 보이고 지나쳤어요. 두 번째 이발소는 오늘은 문을 열지도 않았더라고요. 골목 안쪽에 있는 이발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골목 입구에서 세 번째 있는 이발소입니다. 아무도 없는 듯싶었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이발사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있었어요. 유리문을 똑똑 두드리며 작은 소리로 ‘아쌀라무 알라이 꿈(안녕하세요, 이슬람식 인사)’ 했으나 명상이 깊었는지 하던 일을 계속했어요. 이번엔 큰소리로 ‘께몬 아첸!(안녕하세요)’하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제야 눈을 뜬 이발사는 빨리 일어나면 허리라도 다친다는 듯이 느릿하게 일어나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어요.


이발소는 한국의 옛날 이발소와 비슷합니다. 문이나 유리창엔 커다랗게 ‘Salon’이라 쓰여 있고요. 그 옆에는 붙여놓은 지 오래돼서 빛바랜, 그 당시엔 유행했었을 헤어 패션 사진이 붙었고요. 이발소 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들어가면 사람이 앉으면 옆으로 기울어질 것 같은 기우뚱한 커다란 의자가 있고 그 앞에는 벽 전체를 채우지 못하고 의자 앞만 비추는 거울이 벽에 붙어있어요. 거울 아래엔 머리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머리라도 감을 수 있을 듯 커다란 세면대가 구멍을 뻥 뚫린 하수구를 내보이고, 작은 선반엔 로션, 스킨 병으로 보이는 것들이 서너 개 놓여있어요. 손님이 대기할 수 있는 의자는 덩치가 큰 사람이면 둘이 앉기도 벅찬, 등받이가 직각인 소파 하나가 전부고요. 벽면은 녹색과 빨간 원이 잘게 나뉘었으나 하나의 큰 틀로는 방글라데시 국기를 형상화한 사진과 이곳 집권 정당의 표시인 것으로 보이는 한 척의 배 사진이 벽면 세 곳이 붙어있네요. 낡을 대로 낡은 천정은 플라스틱 마감재로도 가려지지 않았는지 커다란 스티커를 붙여 나름대로 떨어지진 않겠구나! 할 정도였고요.


의자에 앉자 아니나 다를까 뒤로 의자가 까딱 소리를 내며 뒤로 젖혀졌어요. 깜짝 놀랐지만 등을 기대고 이발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 싶어 엉덩이를 의자 뒤로 바짝 붙이고 앉았어요. 이발사가 이발 천을 덮으면서 ‘어떻게 자를까요?’하는 눈으로 쳐다봐서 손으로 살짝살짝만 자르라는 시늉을 했어요. 입으로도 뭐라 말했는데 제대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눈치 빠른 이발사는 이내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하며 알았다고 했어요. 이 정도면 의사소통을 아주 잘한 거지요.


충전식 이발기를 든 이발사가 머리를 둘레둘레 돌리면서 틀을 잡았어요. 그런 다음 가위질로 빙 돌아가면서 다듬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나더라고요. 5분. 그 5분 사이에 사각사각, 싹둑싹둑하는 가위질 소리를 들으며 졸았어요. 이발소에만 가면 졸리는 것은 한국이나 방글라데시나 같더라고요. 뒤통수 부분을 면도기로 정리하려는 듯 면도기에 날을 갈아 끼우면서 손을 얼굴에 갖다 대며 면도하겠냐고 물었어요. 아니라고 대답했죠. 그러다 3초도 안 돼서 면도하겠다고 했어요. ‘나(Na, No)’를 3초 만에 ‘지(ji, Yes)’로 바꿨어요. 그 새 새 면도날로 바꿨으니 면도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발사는 내 말을 이내 알아차리고 안면 면도 준비를 했어요. 뒤로 눕혀지길 기대했던 의자는 눕혀지지 않았어요.(한국의 이발소는 면도할 때 의자를 뒤로 눕혀 누운 자세에서 면도하거든요.) 얼굴에 크림 같은 것을 바르기 시작했는데 향긋한 냄새, 어디서 맡아본 냄새인데 알 수 없어 무슨 냄새지 할 때 새로운 것이 얼굴에 발라졌어요. 눈 아래쪽만 바르는 것으로 봐선 면도 거품이나 면도 크림일 것이라 생각하다가 궁금해서 눈을 떠 보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산타클로스의 수염처럼 하얀색으로 바뀌었더라고요. 한참을 정성 들여 얼굴에 바르고 나서야 면도를 시작했어요. 오른쪽 귀 쪽부터 시작된 면도는 이발사의 왼손으로 피부를 집어 당기면서 동시에 면도날이 당기는 반대쪽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여 수염을 잘라냈죠. 한 번 간 곳을 두 번 세 번 지나다니며 한 올이라고 깎이지 않은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면도날이 날렵하게 움직였어요. 넓은 면은 그렇게 손가락으로 피부를 잡아당겼지만, 코 주변이나 인중이 있는 것은 피부를 살짝 눌러 피부가 면도날에 딸려 가지 않도록 하면서 면도를 이어갔고요. 볼을 면도할 때 죽죽 밀어 면도하던 것과는 달리 한 올 한 올 잘라내려는 듯 움직임의 간격은 미세했어요. 톡톡 떡의 수염이 잘리는 소리가 정겨웠어요. 그러고는 턱선과 목으로 이어지는 면에 이르자 마치 눈썰매장에서 눈썰매 미끄러지듯 면도날이 죽 미끄러지는 느낌이었어요. 면도를 마친 손에 물을 묻힌 이발사는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어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아직도 잘리지 않은 수염 한 올을 찾으려는 그의 손 감각은 일 순 멈춰 서서 면도날로 확인하듯 아직 살아있는 수염을 잘라냈어요.


면도가 끝났나 싶었는데 다시 얼굴에 뭔가를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바른 것보다는 두툼함이 느껴졌다. 이불이 없어 요를 끌어다 덮을 때의 그 무게감이었죠. 눈을 뜨니 전과 같은 면도 크림이 생일 파티에서 케이크를 얼굴에 바른 것처럼 하얗게 발라져 있었어요. 다시 한번 확인 면도를 마치고 나서야 얼굴을 닦을 수 있었어요. 머리를 감겨주면서 얼굴을 닦을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은 이발사의 손놀림이 얼굴로 훅 들어오면서 얼굴만 씻어줄 요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손을 들어 내가 하겠다고 했어요.


한국의 이발소와 같은 듯 다른 방글라데시 이발소입니다. 같다면 의자나 기구들이 같은 것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다른 것은 한국의 이발 기구가 위생 처리되고 여러 개를 사용하는 데 비해 방글라데시는 대개의 이발소가 이발 기구가 이발사의 숫자에 같다는 것, 내가 가 본 이발소 여러 군데의 이발소 중 머리를 감아 주는 이발소는 없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외국에 나가서 이발해 보는 것인데 매달 방글라데시에서 이발했으니 버킷리스트 하나는 확실히 해결한 셈이네요. 이발 요금 100따카, 면도 요금 50따카. 오늘 지출입니다.


오늘은 산책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서 비가 올 것이라는 핑계 하나로 이발만 한 날입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재미를 찾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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