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에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by 지구지고

이젠 익숙해졌습니다. 30℃가 넘는 밤이 한 달째 계속되고 있지만 더위에 짜증이 나지 않음은 면역이 된 것이겠죠. 아무리 더워도 잠을 잘 수 있으니까 방글라데시에 완전히 적응한 걸까요. 출근하려니 현관의 주차 질서가 심각하게 어지러웠습니다. 신발들이 모두 나와서 서로의 짝을 찾으러 흩어진 모양새였습니다. 그중에 내가 신어야 할 신발은 방글라데시산입니다. 방글라데시 수제화점에서 나온 캐주얼 구두인데 검은색 소가죽 구두입니다. 구두 앞은 볼록하게 성을 쌓은 모양으로 발등과 발 옆의 가죽을 이은 형태의 구두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조각배같이 볼품없어 보이지만 그 위에 커다란 구명 하나가 있어 발을 넣을 때 손을 대지 않아도 쉽게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 여간 편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불편한 것은 구두 밑창이 얇아서 발바닥에 충격이 온다는 거죠. 하지만 편안해서 요즘은 이 구두만 매일 신고 출근합니다.


신발 하나 바꾸는 일이 그렇게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 갈 때 신발을 세 켤레 가져갔습니다. 아니 네 켤레입니다. 등산화도 하나 가져갔으니까요. 비가 많이 온다는 방글라데시에서 신발이 젖으면 갈아 신발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나는 발이 작아서 신발을 살 때, 디자인을 보기보다는 발에 맞는 신발인지를 먼저 봅니다. 하지만 가벼워야 한다는 기준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발은 여성화 매대에서 골랐는데 방글라데시에서 그런 신발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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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화는 혹시 네팔 여행에서 설산을 오를 때 등산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새로 장만해서 간 거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평소에 신던 신발을 가져갔습니다. 하나는 검은색 단화와 비슷한 캐주얼 신발이었습니다. 이 신발은 내 발에 꼭 맞아 오래 걸을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출근 화로 신던 신발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조카의 운동화인데 초등학생이 작아서 못 신는다고 내놓은 신발을 내가 가져가겠다고 가져온 것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신다가 버리면 되겠다 싶은 생각으로 캐리어에 넣어 간 랜드로바 신발이었습니다. 10년은 된 것 같은 이 신발은 얼마나 신고 돌아다녔는지 벗어 놓으면 아주 볼품없는 신발이었습니다. 진한 갈색이었던 신발은 진함을 상실해서 본래의 색을 잃었고 신발 등은 여기저기에 긁혀서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오래되다 보니 신발 뒤축은 구부려서 밟아 신어서 반듯함을 잃은 찌그러진 신발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새것처럼 보이려고 까만 구두약으로 닦아서 광을 내면 갈색과 검정의 조화로운 광을 발했던 신발입니다. 구두약을 먹은 신발은 출근할 때 신으면 나름 말짱해 보였던 신발이었습니다. 발뒤꿈치 안쪽이 유선형으로 닳아 벗어 놓으면 안으로 기울기까지 안 신발은 내 걸음 탓이겠죠. 그렇지만 안쪽에 지퍼가 달려있어 신고 벗기에 편했고 달리기라도 할라치면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묶으면 되는 그런 신발이서서 좋았으니까요.


그런 신발을 방글라데시에서도 여전히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안 되었는데 다 닳아 굽이라고 할 수도 없던 굽의 덧댄 부분 일부가 떨어져 걸을 때마다 거슬렸습니다. 수선을 위해 찾은 수선집은 집이 아니라 노상에 있는 점포입니다. 시장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여러 명이 죽 앉아 수선하지만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 이들은 장소를 옮기며 수선을 하기도 합니다. 연장이라고 해 봐야 구두 꿰맬 때 쓰는 바늘, 붙일 때 쓰는 사포와 본드, 힘을 쓸 수 있는 집게와 망치, 헌 구두에서 나온 것들을 모았다가 다른 구두 수선할 때 사용하는 조각들이 전부죠.


내 신발이 수명을 다해 갈 때 심폐 소생술을 한 것은 다카에서였습니다. 다카 시장의 사거리 번화가에 여섯 명의 수선공이 앉아 작업을 하던 곳에서 그중 한 명에게 맡겼습니다. 떨어진 쪽의 닳은 쪽을 따내고 덧 고무를 붙였습니다. 덧 굽을 이리저리 돌리며 맞추더니 사포질을 하고 퉁퉁하게 생긴 손으로 본드의 작은 깡통을 열었습니다. 200㎖ 정도 들어갈 만한 원통의 깡통이었습니다. 거북 등처럼 갈라진 검지손가락으로 본드를 찍어서 치즈처럼 딸려 오는 본드는 깡통 가장자리에 눌러 자르고 신발과 덧 고무에 쓱쓱 발랐습니다. 한 치도 망설임 없는 수선공의 손에서 내 신발은 다시 태어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본드가 좀 굳는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작업하는 동안 다른 수선공의 작업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뒤축을 바꾸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떨어진 신발창을 붙이기도 합니다. 보라색 샌들은 떨어진 끈을 붙이고 꿰매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발등 쪽 끝이 떨어지는데 그 샌들은 발가락 쪽 끈이 떨어졌습니다. 색이 바랜 주홍색 구두는 구두창이 두 동강 난 것을 떼어 내고 새로운 구두창을 가져와 헌 구두의 뚜껑을 떼서 둘을 다시 접합하는 대수술 중이었습니다. 한 땀 한 땀 바늘이 들어갔다 나오면서 다른 실을 물고 나오면 힘껏 당겨서 조이고 다시 앞으로 한 땀씩 전진하는 고된 작업을 손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손으로 하는 이 장인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작업을 했으니까요. 수선이 끝난 구두는 기울어지지 않았습니다. ‘아! 새 신발 됐네’라고 생각하는데 수선공이 웃으며 신어보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정말 신기에 좋은 신발이 되어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신발을 수선한 비용은 한국 돈으로 1천 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때는 이미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를 떠난 상태였습니다. A/S가 불가능했습니다. 만약 다카에 있다고 해도 A/S는 불가능했겠죠. 1천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수선한 구두니 까요. 본드 붙인 부분이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덧 굽을 잃어버리지 않아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학교 앞 구두 수선공을 발견하고 또 맡겼습니다. 이때는 제 반 학생들과 함께였으니까 좀 더 마음이 편했습니다. 신발을 보여주니 금방 알아채고 사포질 하고 본드로 붙인다고 합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먼저도 붙여서 떨어졌으니 꿰매 달라”라고


본드를 붙이고 접합부가 떨어지지 않도록 꿰맸습니다. 그러고는 이제 안 떨어진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건네준 신발에 나도 흐뭇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커피를 쏘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축이 기울어지지 않으니 좋았습니다.


새 신발을 길들이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새 신발은 발이 아프기도 하고 딱딱한 가족에 발이 쓸리기도 합니다. 신발이 발을 보호해야 하는데 새 신발은 그런 역할을 잘 못하는 것같이 오래된 신발을 고집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것 없을까요. 금방 신어도 10년 된 것 같고, 10년을 신어도 새것 같은 신발 말입니다.


두 번이나 수선을 마친 신발을 버리지 못하고 세 번째 수선을 한 것은 아마도 내 발이 그 신발을 원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두어 달 잘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꿰매고 붙이기를 반복한 신발이 이제는 꿰맨 부분만 남고 떨어져 걸을 때마다 땅에 끌리는 겁니다. 신발을 벗어보니 정말 꿰맨 부분이 덜렁덜렁했습니다. 신발을 버릴까 하다가 다시 한번 나하고 살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마이멘싱(다카 북쪽의 도시 이름) 시장을 걷다가 구두 수선 좌판을 펴 놓고 가게에 앉아 수다를 떠는 수선 가게가 있어 무작정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는 수선공에게 말 한마디 필요 없이 신발을 벗어 보여줬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오케이”

“담 꼬또?(얼마입니까?)”

“엑쇼 따카(100 따카)”

“해(오 케이)”

“끼 쇼모이 라게?(시간이 얼마나?)”

“엑뚜(조금)”

그렇게 흥정을 해 수선에 들어갔습니다.


떨어진 덧 굽은 떼어내고 굽의 일부 잘라내서 다른 굽 조각을 잘라낸 부위에 맞도록 붙인다고 했습니다. 물론 손짓과 눈짓 그리고 일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통해 소통하며 작업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본드를 붙이고 잠깐 대기하는 시간에 아주 좋은 신발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가볍고 디자인이 예쁘다고 했습니다. 아주 비쌀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발창을 꺼내서 닦으려다 말고 발가락 닫는 부분이 달아서 너덜너덜한 것을 보고 “포리보르똔. 포리보르똔”했습니다. 처음엔 못 알아들었지만, 바꾸라는 말로 이해하고 바꾸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헤어진 곳 바닥에 다른 것을 붙여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수선공은 웃으며 ‘오케이, 오케이’를 연발했습니다. 그에게서 건네받은 신발을 신으니 찌뿌둥한 몸이 물리치료받은 기분이었습니다. 200따카를 주니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마 거스름돈을 주어야 하나 망설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갈 때마다 그 자리에서 구두를 만지고 있는 그 옆에서 수선하는 것을 구경하고 오기도 하고 차 한 잔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아무 말 없어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어서 좋았습니다. 다 해진 신발이 친구를 만들었습니다. 인연을 만들어 준 겁니다.


황광우는 그의 책 <철학 콘서트 2>에서 인연을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고단한 여정이었을지라도 돌이켜보면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일상 탈출이 여행의 소극적 목적이라면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 이것이 여행의 적극적인 목적이다. 이 인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새로운 자연과의 만남이요, 둘째는 몰랐던 역사의 발견이요. 셋째는 인간의 눈빛과 마주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구두 수선공과 우리는 눈빛으로 말하고 눈빛으로 웃었습니다.


아참! 그 신발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1년을 신었던 신발은 깨끗하게 빨고 까만 구두약을 발라 나의 집에 자주 놀러 오던 학생에게 주었습니다. 신발이 작아 괜찮겠냐고 하나 자기 여동생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신발뿐만 아니라 사용하던 전기장판이며, 공구 세트, 그릇 같은 필요한 것을 모두 주고 왔습니다. 그것들도 우리의 인연을 이어 줄 중요한 매개체니 까요. 신발 하나 바꾸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뭘 그렇게 많이 바꾸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코페르니쿠스 생각을 하면 바꿀 건 바꿔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서문

지구를 움직이게 하고 움직이지 않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 본 연구의 가설은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움으로 인하여 이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일부 학자들은 성질을 낼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정돈되어 온 학문에 느닷없이 파란을 일으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정보】

방글라데시에는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노점으로 운영되는데 수선하는 가격은 아주 싸다. 다만 밑창이나 필요한 부분을 수선할 때 수선에 사용되는 가죽이나 밑창을 살펴보고 수선해야 오래 신을 수 있다. 이곳 서민들은 슬리퍼나 구도, 운동화 등 모든 신발을 수선해서 신는다. 가방의 지퍼 같은 것도 수선하는 곳을 찾으면 간단하게 수선해 사용할 수 있다. 보통 100따카 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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