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피라미드가?

by 지구지고

뾰족하게 솟은 삼각의 피라미드가 맨살을 드러낸 건 방글라데시 타지마할에서 걸어서 2분도 안 되는 곳이었다. 라즈모니 피라미드(Rajmoni Piramid)다. 걸어도 2분 되는 곳을 오토를 타고 갔다. '몰랐으니까', '더우니까'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요금은 50따카. 바가지.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입장료는 150따카이다. 표를 사서 들어서니 키 작은 녹색의 활엽수 길이 나왔다. 윤 선생의 분홍 캐리어 받침에 연녹색의 옷, 그리고 그 길이 하나같아 사진을 찍었다. 길은 살짝 굽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빨간색 하트 길이 반겼다. 어디 가나 하트는 빨간색이다. 방글라데시 하트만 빨간 게 아니다. 왜 하트는 빨강이 많은지 이유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트 길에서 눈을 돌리면 기름만 넣으면 지금이라도 전쟁터로 나갈 것 같은 낡은 군용 지프가 도열해 있다. 지프 뒤쪽 담 위에는 출렁이는 긴 머리에 넓은 챙 모자를 쓰고 통 넓은 치마를 벌린 여인이 손을 벌려 우리를 환영했다. 몇 발짝 들어서면 양팔을 옆으로 뻗치고 손에 쟁반을 들고 있는 어느 동네 여신인지 모를 여인상은 커다란 가슴을 드러내고 커다란 노란색 목걸이를 걸었다. 「아무리 에로틱한 작품도 그곳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는 이상 외설은 아니다. 그것은 외설적인 감상자들에 의해 비로소 외설이 되는 것이다.(에곤 실론)」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 마음이 외설이다.

필름 영화 제작 시절에 사용했을 카메라와 필름이 감겼을 정말 오래된 도구들이 전시된 전시장을 지나면 수족관이다. 빨강, 노랑, 하양의 작은 물고기들이 저마다 예쁘다고 꼬리를 흔들면서 신나게 돌아다닌다. 우리의 방문이 이렇게 신나는 일인지 모르겠으나 문을 지키고 앉은 여성은 무심한 눈빛만 보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 다시 정원이다. 정원은 넝쿨나무의 붉은 꽃과 드문드문 난 녹색의 나뭇잎을 가진 나무가 많았다. 길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여인이다. 원색의 밝은 빨강, 노랑 옷을 입었다. 방글라데시 옷의 화려함을 살린 듯하다.


피라미드 입구에 다가가니 수형 번호 50번.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이 연출돼 있다. 두 줄로 이렇게 쓰여 있다. ‘쿠디람의 교수대 위에 올라가지 마세요.’ 「쿠디람(Khudiram Bose)은 영국인을 인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활동한 인도에서 가장 어린 자유 투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영국군에 의해 체포된 것은 19세였다. 영국 법원 판사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판사는 다른 마차에 타고 있었고 마차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이 죽었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영국군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처형 당시 이 소년 혁명가는 웃고 있었으며, 그의 시신이 옮겨지는 길에는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어 꽃을 던지며 자유를 위한 그의 희생을 인정했다고 한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Kshudiram_Bose)」

그 존재가 이제 여기 피라미드에 불멸의 존재로 남았다. 빨간 제복을 입고 말을 탄 영국군은 무단 통치를 하겠다는 강한 눈빛을 보낸다. 시계를 보고 있는 병사와 수신호를 위해 손을 올린 집행자의 눈빛에선 긴장감이 돈다. 침 넘기는 소리라도 들릴 듯한 맘 졸이는 순간이다. 그러나 정작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은 편안해 보인다. 조국 인도를 위한 우아한 죽음을 맞았다. 유관순 열사가 그렇고, 안중근 의사가 그렇듯 이 사람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억될 때 바로 사람이 된다. 그 죽음은 불멸이 되었다.


이제 피라미드를 찾을 차례다. 좁은 입구를 따라 내려가는 계단은 점점 어두워졌다. 무서울 수도 있다는 말을 몇 차례 하면서 바닥까지 내려갔다. 입구부터 죽 누워 있는 이들은 미라다. 죽은 사람의 해골이 사람의 손에 의해 여기로 옮겨졌을 것이고 무엇인가에 지탱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거적을 덮었는지 몸통은 보이지 않는다. ‘이 미라가 일어나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천천히 걸었다. 붉은 불빛은 마치 고기의 붉은빛을 더 선명하게 하려고 켜 놓은 정육점의 그 붉은 불빛과 같다. 입구부터 두 번째로 꺾이는 곳까지 2면에 예닐곱 구의 미라가 있었다. 죽은 것이 무서운 것인지 산 것이 무서운 것인지 모르겠다. 죽은 것은 다시 살아 나오지 않으니 그냥 누워만 있을 것이다. 산 것은 제 마음대로 일어나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니 산 것이 더 무서운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산 것보다 죽은 것을 더 무서워하는 아이러니 속에 살고 있다. 죽은 자는 누워 있고 산자는 돌아다니는데도 말이다. 미라를 지나면 그들이 입고 걸었던 옷과, 장신구들이 전시돼 있다. 금빛 장신구는 초록의 녹이 슬었다. 세월의 녹인 지, 제품의 녹인 지는 알 길이 없다. 여기까지 오면 긴장을 풀어도 된다. 출구의 불빛으로 무서움은 없어지고 “뭐 별거 아니네”하는 생각이 든다. 피라미드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면 30초도 걸리지 않을 작은 규모다. 특수 장치를 해서 무섭게 만들면 더 스릴 있는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방 생각을 바꿨다. 더운 방글라데시에서 식은땀 나게 하는 관광지엔 사람들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해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메노이테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살아가면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을 때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죽게 된다는 예상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헛소리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닥쳐왔을 때 고통스럽지 않은데도 죽을 것을 예상해서 미리 고통스러워하는 일은 헛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겐 아직 오지 않았고, 죽음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카로 돌아오는 길은 지금까지 왔던 길을 거슬러 가면 된다. 한번 해 본 일이라 쉬웠다. 피라미드를 나와 오토 요금을 흥정했다. 200따카, 100따카, 그러다가 데르쇼(150) 따카에 아차(OK). 가는 동안 오토 왈라는 어디까지 가느냐, 태워다 주겠다. 등을 계속 얘기했다. 60따카면 가는 길을 1,000따카 주고 갈 일은 없었다. 버스 타고 가겠다고 말하고 대화를 중단했다. 오토에서 내려서도 대여섯 명의 오토 왈라들이 몰려와 외국임을 확인하고 ‘공항’, ‘다카’를 물었다. 자기 오토에 타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내 대답은 NO, 너무 비싸다. 길을 건너 버스를 탔다. 오는 내내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카에 도착해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하루 종일 땀에 찌든 몸, 흙먼지를 뒤집어써 얼굴에 모래를 바른 것 같은 몸을 씻어내는 후련함을 맛봤다. 한 꺼풀 벗는 느낌이 이런 걸까.

【방문 정보】

◽ 여정: 마이멘싱 ➞(3시간/320DT) 모하칼리(Mohakari) 버스 터미널, 다카 ➞(20분/100DT) 쿠렐비시 로드 BRTC 버스 카운터(철길을 건너야 됨) ➞(1시간, 60DT) 가르시아(Garsia) ➞ (20분, 10DT)보르파(Borpa) ➞ (10분, 릭샤 40DT) 타지마할(Taj Mahal) ➞(3분, 걸어서) 피라미드(Pira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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