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달콤함은 즐겼지만 탐하진 않았다

by 지구지고

이 선생님!

이 선생님을 생각하면 요즘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정말 다시 오마하고 떠나는 것이겠지만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겠지요. 지금 이리 가면 언제 올까요. 제가 같이 기다려 줄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망고 가게 들렸다가 이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망고 맛있어서 계약을 1년 연장해야겠다는.’


여행을 다녀와 매일 들르던 과일 가게에 들렀습니다. 골목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있어 릭샤에 가리고, 사람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가게입니다. 큰 잔칫상 하나 펼쳐놓은 정도로 좁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장사를 하는 남자는 갈 때마다 룽기를 입었습니다. 웃통은 검은 피부를 드러낸 채고요. 일어선 모습을 보지 못해 키가 얼만 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정강이 길이가 짧은 걸 보나, 저고리를 벗은 몸통이 한 뼘 정도인 것으로 보아 아마 저보다는 작을 듯합니다. 벽에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빙 둘러 선반을 달았습니다. 거기엔 호미곶 바닷가 손바닥 같은 노란 바나나를 죽 펼쳐 놓았고요. 처음 보는 사람은 운동 기구를 파는 가게로 착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야구 글러브인 줄 알고요. 쪼그려 앉은 발 앞에는 깎아 달라는 사람도 꼼짝 못 하도록 가격을 책정하는 전자저울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옆에 바구니 하나가 있는데, 좀 좋은 망고가 담겨 있습니다. 다른 망고는 두 무더기로 쌓여 있는데 주인이 엉덩이를 들거나 손님이 직접 골라 담아야 할 정도로 주인의 손에서 멉니다. 주먹만 한 파인애플은 허리에 매단 수류탄과 한 모양인데요. 급할 때 던져야 해서 그런지 주인의 왼쪽 가슴 언저리에 걸어 놓았습니다.

오늘은 망고 양도 적고 가격도 좀 비싸진 것 같아요. 그걸 보고 문득 이 선생님 생각이 난 겁니다. 오늘 뜬 해는 내일도 뜹니다. 그렇다고 오늘 떴던 해가 내일 뜨는 해와 같지는 않지요. 망고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제 먹은 망고가 오늘 먹은 망고와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같은 듯 다른 망고를 오늘도 한 봉지 사서 손에 들었습니다.


이 선생님!

이 선생님은 어떤 망고를 좋아하세요? 저는 백도 복숭아처럼 물렁한 것보다 한입 베어 물면 씹힘이 있는 것이 더 좋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망고가 시중에 많지 않아요. 그래서 취향을 바꿨습니다. 질감보다 향기로요. 전 망고의 달콤한 향도 좋지만 송진 냄새가 좋습니다. 그쪽이 식감도 있고요. 밤꽃의 달큼함이 섞인 냄새가 코끝을 상쾌하게 자극하는 것인가요. 밋밋함이 배어있는 것 같으면서도 강렬함으로 정신을 맑게 한다고나 할까요. 청아한 솔 냄새보다 농익은 송진 냄새, 향기롭다고 말하면 욕먹을 것 같지만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어쩌면 그리운 그 냄새 말입니다. 아무래도 소싯적 소나무 껍질 벗겨 씹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런가 봅니다. 어쨌든, 망고 맛 모르는 놈이 하는 소리라고 해도 좋습니다. 나에게 자연스러우면 그만이니까요.


망고 맛, 억지로 맛있다고 할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일부러 맛없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건 알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것이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1월에 방글라데시에 와서 망고 얘기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국민 과일이라고도 하고, 방글라데시 국가 과일이라고도 하고, 잭푸릇(Jackfruit)과 함께 과일 하면 나오는 게 망고였어요. 한국 사람들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로만 듣던 망고를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2월에 망고 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수수처럼 한 가지에 여러 개의 꽃이 뭉쳐서 핀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작은 꽃가지에 몇 개씩 뭉쳐서 핀 꽃대가 모여 하나의 큰 꽃 뭉텅이를 이뤘습니다. 꽃 하나하나는 오래된 금가락지의 누런 금색입니다. 꽃술 가운데엔 나비의 더듬이처럼 나온 끝에 검은 아기 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나비를 유혹하려 나비 짓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꽃은 산수유 꽃과 견줘 이야기해야 하나요.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비슷한 것 같아요. 노란색은 노란색인데 결은 다른 노란색. 꽃 모양도 산수유가 왕관이라면 망고 꽃은 왕비의 관 꾸미개 정도랄까요. 거기에 벌 나비가 찾아들어 사랑을 전하면 그 사랑을 먹고 자란 망고가 어린아이 요람에서 보던 모빌같이 자라나요. 뜨거운 햇볕이 살을 찌우고 방글라데시의 열기로 익은 망고는 5월에서야 맛 좀 보라고 시장 좌판에 등장했죠. 싸기도 했습니다. ㎏에 한국 돈으로 700원 정도였으니까요. 부지런한 걸음을 놀려 많이도 샀습니다. 망고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망고를 가득 실은 밴을 보면 몸이 먼저 반응했었죠. ‘하나 먹고 둘 먹고 또 먹었더니 꼬로로로록 꼬로로로록’ 동요 무색하게 들랑거렸습니다.


그것의 향기에 취하고, 노랑 속살에 ‘와!’하고, 석류꽃 주홍 자태에 반했습니다. 입에 넣으면 침을 흘릴 것 같고, 안 먹으면 서운할 것 같아서 오늘도 몇 개의 옷을 벗겼는지 모릅니다. 손이 노래지도록 깎고 또 벗겼습니다. 이제 파란 봉지 속에 누운 자태만 봐도 ‘맛있겠다.’, ‘이건 좀 있어야 되겠는걸.’하고 치워놓는 경지에 이르렀으니까요. 그렇게 가까이 두고 애지중지하던 것이 이제 점차 이별을 고하려고 하나 봅니다. 한 발짝 건너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팔던 장사들도, 좌판도 하나, 둘 없어지더니 요즘은 망고 장사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골목 입구에 자리 잡은 손바닥만 한 단골 가게에는 아직도 망고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 비 그치면 아마 그 자리를 다른 것들이 차지해서 망고 행세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7월인데요. 8월까지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요.


만나기도 어려웠으나 헤어지긴 더 어려운가 봅니다. 우기라고 늘 비가 올 것 같더니만 비는 안 오고 햇볕만 죽여서인지 망고까지 같이 따라가려 합니다.


“미인은 봄에 가슴 아파하고, 지사는 가을에 슬퍼한다(美人傷春. 志士悲秋)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선생님!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는 마십시오. 좀 있으면 또 올 여름입니다.

아쉬운 마음을 ‘허균’의 글을 패러디해 적어 보냅니다.


「오래 사귀진 않았으나 정을 다 주었다. 너의 달콤함은 즐겼지만 탐하진 않았고, 난잡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우정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대가 나를 버리고 떠나려고 하니 나는 슬픈 눈물로 그대를 전송한다. 내 너의 아름다운 향기, 상큼 달달한 맛을 기다리리라. 너 때문에 가지 못하는 내 맘 알지 않느냐.」

이전 21화바리다라 호수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