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요
시커먼 색깔의 관짝 같은 기차를 탔습니다. 아직 어두운 시각이지만 들어오는 기차 역시 컴컴한 색깔의 네모반듯한 것이 어둠을 지배하는 무엇인가가 다가와 나를 데리고 떠나는 것 같았습니다.
마이멘싱부터 쬬또그램까지 새벽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갔는데, 얼마나 긴 여행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이멘싱역은 생과 사의 길목이었습니다. 빛이 닿지 않는 구석은 죽음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든 사람들이 차지했습니다. 어슴푸레한 빛이 있는 곳엔 남루한 옷을 입은 승객들이 좀비 같은 모습으로 졸고 있었고요. ‘나 여기 있소’ 알리려 불을 밝힌 매점은 소리 없이 돈을 물건과 바꿔 가는 사람들이 다녀갈 뿐이었습니다. 승객들이 소란스럽던 낯을 생각하면 무서움마저 느껴지는 으스스함도 그 안에 있었죠. 그런 묘함이 교차하는 곳이 새벽의 마이멘싱역이었습니다.
출발도 하기 전에 사람들은 모두 지친 표정입니다. 저도 일찍 나오느라 여기 역에 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새벽에 기차를 타고 마이멘싱(Mymensingh)에서 쬬또그람(Chattogram)까지 북에서 남으로 11시간, 마이멘싱으로 돌아오는 4시간 동안의 기차 탄 풍경을 그려보겠습니다.
04시 30분 검은색 기차가 기적을 울리면 마이멘싱역으로 들어왔습니다. 네모반듯하게 생긴 게 마치 관짝을 죽 매달고 오는 듯합니다. 이제 먼 여정을 이 관 짝 안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으스스해졌습니다. 다카(Dhaka)까지는 3시간이 걸립니다. 물론 가봐야 아는 거겠지만요.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컴컴한 객실에 들어가니 그래도 빈자리가 보였습니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기차는 출발 예고도 하지 않은 채 한차례 긴 기적을 울리고 움직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새벽 기차는 정말 조용했습니다. 관 속에 있는 사람은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듣지 못한다죠. 그렇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쇳소리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철길의 이음매를 넘어가는 덜커덩~철컹 소리는 내가 알던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소리보다 훨씬 컸던 것 같네요. 0.5초마다 무한 반복되는 이 소리도 잠시 후엔 들리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은 저마다 잠에 빠져들었고 나도 잠이라는 것에 빠져들었던 거죠.
한참을 달렸나 봅니다. 어둠이 빛에 자리를 양보하고 관에도 빛이 들어올 때였습니다. 와글와글, 시끌벅적해졌습니다. 다음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기차 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종이에 글씨를 파서 벽에 대고 페인트를 문질러서 새긴 글씨. W16, 그러니까 나는 창가 16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누군가 와서 손짓했습니다. 별 잘못도 안 했는데 말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입석이었습니다. 얼른 일어났죠. 시끌벅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좌석표를 가진 승객이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앉은 사람과 얘기하는 소리가 마치 떠드는 소리로 들린 겁니다.
제 옆자리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내 자리니 비켜 달라. 무슨 소리냐 내 자리가 여기다. 서로 표를 상대방 코앞에 디밀며, 양보할 기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표는 온라인으로 끊었는지 A4용지에 인쇄됐습니다. 알고 보니 좌석번호는 같은데 열차의 객차 번호가 달랐던 거였습니다. 앉았던 사람이 계면쩍게 일어나 다른 객차로 갔습니다. 평온을 찾은 줄 알았는데 제 옆자리에서 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자리에서는 실랑이가 계속됐습니다. 핏대를 올리며 말하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건 말건 기차는 그저 덜컹거리며 제 갈 길을 갑니다. 제 생각엔 거북이걸음입니다. 급한 일 없다는 듯이 천천히 제 갈 길을 갑니다. ‘마행처우역거(馬行處牛亦去')라 했으니 언제 가도 가긴 가겠지 생각했습니다.
마주 보고 있는 의자는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군청색 천 조각을 덮어 놓았고, 등받이는 지구의 중력이라도 이겨보려는 듯 바닥과 직각이었습니다. 등받이 위마다 달린 천장의 선풍기가 돌돌돌 돌아갑니다. 언제 청소했는지 선풍기에는 스파이더맨이 타도 끊어지지 않을 거미줄이 걸려있고, 선풍기 살은 먼지가 붙어 텔레비전 안테나 줄 만큼이나 굵어져 그 사이로 바람이 나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선풍기는 객차 안의 많은 사람의 열기를 뒤에서 앞으로 옮겨주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거기엔 시원함은 없고 먼지만 보태서 돌려주니 피하는 게 상책인 듯했습니다.
객차 밖으로 나가 열차 출입구로 갔습니다. 활짝 열린 출입문은 시원한 바람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바람을 맞으며 손잡이를 잡고 밖으로 몸을 내밀었습니다. 오래전 경기도 유원지로 기차를 타고 떠났던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땐 기차 안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고 바닥 아무 곳이나 앉으면 자리였습니다. 여기 방글라데시 기차에도 역시 바닥에 신문지 한 장 깔고 앉은 사람이 있습니다. 중력을 이기는 사람이 없으니 이건 아마 세계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전 그 사람 옆에서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곳은 마을입니다. 마을은 기찻길을 최후 보루 삼아 등을 지고 있거나 기찻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몇 개의 간이역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간이역은 마을과 하나였습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기차 가는 것을 게슴츠레 쳐다보았고 철길엔 사람들이 나와 앉았습니다. 기차역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쉬는 곳이었습니다. 다른 열차를 먼저 보내려는 것인지 여러 개의 선로가 깔린 곳도 있었는데 그곳 역시 기차를 위한 시설이라고 하기보다는 생활의 장소였습니다. 두 시간이 다 됐는데도 아직 마이멘싱이랍니다. 다카 에어포트(Airport)역까지 1시간이 남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방글라데시를 살짝 엿봤습니다. 목 단추 하나 풀려서 그 안에 비친 조금의 속살인 듯합니다. 아직은 내가 가진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방글라데시입니다. 철길은 기차가 가는 곳이 아닙니다. 보행로입니다. 걸터앉아 쉴 수 있는 쉼터입니다. 이 길로 가면 가까우니 그게 맞을 겁니다. 철길의 쇠붙이에서 묻어 나오는 냉기에 더위를 식힐 수 있으니,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철길 양쪽으로는 식당이며, 구멍가게들이 즐비합니다. 마치 군산의 철길 마을이 계속 이어진 것 같네요. 여기저기 나뒹구는 철길 받침목은 제 할 일을 다 하고 건조장으로 새 일을 시작했습니다. 벌써 허옇게 말라가는 소똥들이 이제 새까만 신병을 맞아 나란히 줄을 세워 놓은 폼이 열병식장입니다. 여기서 마른 소똥은 붉은 정열을 불태우러 떠나고 그 자리를 새까만 신병들이 채우기를 반복하겠죠. 아침저녁으로는 선들바람이 부니 소똥도 그 안에 품은 물을 금방 바람에 내줄 겁니다. 그러면 진급도 빨리 되겠네요. 길가의 사람들은 그 소똥이 불태운 열정으로 커다란 솥에서 김을 품어내게 합니다.
알몸의 젖먹이를 안은 앳된 얼굴의 엄마가 그 솥을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궁금해 달리는 기차에서 한참이나 뒤를 돌아봤습니다. 지금도 궁금하네요.
좀 지나니 사람들이 쓰다 버린, 쓰고 버린 것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무릎을 가슴에 댄 채 웅크려 앉은 노인은 엉덩이가 무거운 건지 천천히 자리를 옮기면서 돈살 물건을 잘도 골라냅니다. 손짓 두어 번이면 하나씩 꺼내 냅니다. 노인의 지혜가 이런 건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맨발로 쇠붙이를 부지런히 나르는 사내아이는 다람쥐 도토리 나르듯 곧잘 주워 모읍니다. 여간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까맣게 그을린 주전자의 손잡이가 뜨거운지 몇 번 툭툭 치다 따르는 차 한 잔은 그나마 그들을 위안하는 에너지 음료인지도 모르겠네요.
거리를 활보하던 소도 쓰레기 더미에서 먹이를 찾습니다. 낮에 잠만 자던 개도 웬일인지 이 아침에 서너 마리가 합세했습니다. 개 두 마리는 소가 헤쳐 놓은 곳을 힐끗힐끗 눈치 보면서 같이 잘도 지냅니다. 덩치 큰 소가 작은 아이에게 좀 내어주는 거겠죠. 오늘 마이멘싱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 풍경입니다. 삶이 노곤하고 지치더라도 사람은 살아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살아가는 거고요. 행복은 그런 거로 재는 건 아니잖아요. 내 마음이 행복해야 행복한 겁니다. 여기 방글라데시에 온 저도, 우리 봉사단도 마음의 행복을 찾아 나선 건 아닌지요. ‘외로울 때면 생각하세요.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하던 노래가 갑자기 입안에서 흥얼거려집니다. ‘어려울 때면 생각하세요.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에어포트(Airport) 역에서 쬬또그람으로
7시 45분. 정말 3시간 만에 다카 에어포트역에 기차가 도착했습니다.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기차 맞습니다. 서둘러 쬬또그람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버스로 가려면 에어포트역에서 30분쯤 더 가서 버스표를 끊어야 하는데 그러면 10시가 돼도 출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할 게 뻔했죠. ‘서서 가는 것에 도전!’하면서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7시간을 서서 가기로 작정한 겁니다.
에어포트역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얀 띠를 가진 초록색 기차는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깁니다. 마치 옛 텔레비전에서 보는 서울역의 명절 풍경 같았습니다. 내리는 이, 타는 사람이 뒤엉켰습니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 전집에서 읽었던 플랫폼의 풍경이 생각나네요. 「기차의 기적 소리를 천식에 걸린 고래 같다고 형용한 프랑스의 소설가가 있는데,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긴 뱀처럼 꿈틀대며 들어온 열차는 순식간에 500여 명의 건아들을 플랫폼 위에 내뱉었다.」
아이를 허리춤에 안은 엄마, 양손에 짐을 든 사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의자에 앉아 핸드폰 만지는 젊은이, 샤리로 얼굴을 감싼 사람, 검은색 니캅(눈만 내놓고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는 무슬림 여성 복장)을 착용한 여성들도 눈에 띕니다. 외국인도 몇 명 있네요. 저도 그중의 하나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도 하고 제자리를 맴돌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들어오는지 제가 기다리는 동안 3대의 열차가 떠났는데도 사람은 줄지 않고 계속 늘었습니다. 소세키의 말처럼 내뱉은 사람이 더 많은가 봅니다. 걱정됐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차를 탄단 말인가? 걱정은 현실이 됐습니다. 기차 안은 마치 출근 시간 서울 지하철을 방불케 했습니다. 기차가 떠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이쪽에서 타서 저쪽으로 내려갔습니다, 플랫폼으로 타서 철로로 내려갔습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타는 곳 내리는 곳이 정해지지 않은 듯 저 편한 대로 하네요.
기차는 마이멘싱에서 타고 온 기차보다 좀 좋습니다. 역에 서서 지나갈 때 보니 식당 칸이 있었고, 침대칸이 보였습니다.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 가운데 테이블이 있는 가족석도 보였습니다. 보통 칸도 좌석번호를 플라스틱 바에 새겨 붙였습니다. 의자는 뒤로 눕힐 수도 있고요. 엉덩이가 닿는 부분은 볼록하게 나왔으니 푹신함도 있을 겁니다.
기차가 출발했고 도심지를 지납니다. 도심지라고 해야 철로 쪽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문이 있는 집들과 기찻길을 놀이터 삼아 나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상대로 한 옴팡 가게가 전부이지만요. 도심도 쓰레기 더미에서 소가 먹이를 찾는 것은 마이멘싱이나 여기나 똑같았습니다. 철로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기차가 교외로 나가고 있습니다, 농촌 지역이네요. 벼가 익은 들판은 벼 베기가 한창입니다. 한국의 황금 들판을 생각했는데 초록과 누런 벼가 섞인 칙칙한 색깔입니다. 벼를 다 벤 논엔 짚을 말리려 널어놓은 곳도 있습니다. 집 근처엔 말린 볏짚을 쌓아 놓은 모습이 근사합니다,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숲 속 깊은 버섯마을의 스머프들이 사는 집으로 착각하기 딱입니다. 집을 짓는데도 솜씨가 있듯 볏짚 쌓는데도 솜씨가 필요한 가 봅니다. 스머프의 집 모양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 다르네요.
벼를 벤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논바닥에서 짧게 벤 논은 한국 논의 벼 베기 한 논과 같이 깨끗합니다. 어떤 논은 벼의 허리를 베었고 어떤 논은 벼 허리를 잡고 쥐어뜯은 듯 지저분하게 벴네요. 많이 남은 벼는 소들을 매 놓으면 좋은 먹이가 되겠죠. 일찍 벤 논에선 벌써 새파랗게 새싹이 나왔습니다. 멀리 보이는 논 전체가 새로 모를 심은 듯하네요.
아! 그 모습을 보면서 옛날 선배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나라가 식량 부족으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던 70년대엔 식량 증산이 국가의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도회지도 그렇겠지만 촌에선 쌀밥 먹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모작은 필수였죠,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를 심었고, 일찍 벼 베기를 끝내면 곧바로 보리를 파종했습니다. 12월이 되면 논들이 녹색의 보리밭이 되어야 했죠. 이게 정부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촌에선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남부지방은 지금도 이모작을 하지만 충청 이북에선 시기도 잘 안 맞고 노력에 비해 수확량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정부에선 늘 현장을 찾아다니며 점검하고 정부에서 정해준 목표 달성을 못 하면 담당 공무원은 문책당해야 했어요. 그러던 어느 해 지역에도 점검을 나왔죠. 마땅히 잘된 곳이 없어서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막상 점검 일에 비가 내렸어요. 그러니 길이 질어 논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담당 직원은 순식간에 꾀(?)를 냈어요. 점검 위치를 바꾼 거죠. 들판 한가운데 일찍 벼 베기를 한 논이 보리밭처럼 파랗다는 걸 안 거예요. 중앙부처 공무원이 현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저렇게 많은 면적에 보리를 파종했느냐며, 소유주를 물었는데 그 당시 담당 직원들은 대부분 지역 토박이라 잘 알고 있었으니 술술 대답했대요. 눈으로 확인한 것은 넓은 보리밭이요, 물으면 묻는 대로 술술 대답하는 직원. 그러니 중앙에서 점검 나온 사람은 얼마나 흡족했겠습니까. 멀리서 보면 보리 같으니 벼의 싹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던 거죠. 게다가 설명을 잘하니 믿을 수밖에요. 나중에 성실한 공무원으로 상을 받았다는 얘기예요. 한국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일이죠. 그 당시 한국에서도 손으로 벼 베기를 했고 손으로 알곡을 털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벼 베기와 탈곡은 60년대 당시의 한국 농촌 풍경과 똑같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벼 베기를 마치고 논바닥에 포장을 깝니다. 벤 벼를 포장에 날라놓고 드럼통에 메 패서 탈곡했습니다. 벼 몇 포기를 잡아 드럼통에 있는 힘을 다해 서너 번 두드려야 낟알이 털려 나가죠. 힘은 힘대로 들고 능률은 없는 그야말로 원시적인 방법입니다. 그래도 좀 규모가 있는 논에서는 호롱기로 하데요. 호롱기는 드럼통에 비하면 신기술입니다. 낟알을 훑어내는 둥근 통을 돌리는데 통 밑에 달린 발판을 발로 구르듯 밟으면 삐쭉삐쭉 철사가 박힌 큰 통이 돌아가면서 낟알을 떨어내는 거죠. 이 정도만 해도 드럼통보다 천 배는 쉬울 거예요.
한국에서는 호롱 작업을 보통 품앗이로 하는데 여기는 몇 사람이 하는 걸 보니 품앗이는 아니고 가족끼리 하는 듯합니다. 농사일이 고된 것은 모두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손으로 벼를 베고, 손으로 나르고, 손으로 털고, 손으로 옮겨서 말리고, 손으로 포장해야 하는 그 수작업이 사람을 골병들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탈곡한 벼는 기차가 서지 않는 기차역 시멘트 바닥에서 방글라데시의 열기로 말려요. 기차가 승객을 나르는 교통수단이라면 플랫폼은 농업 생산을 높이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거죠. 그러니 철길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차 안 풍경
더 가 볼게요. 들판이 지나면 바나나 농장이 있고, 망고 농장도 있습니다. 바나나는 커다란 잎을 쳐들고 그 아래 마치 야구방망이에 야구 글러브 끼워 새운 것 같이 바나나를 매달고 있습니다. 파란색 바나나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바나나 잎은 바람에 찢겼는지 달리는 말갈기처럼 갈기갈기 찢겼네요.
망고나무는 짙은 녹색의 나뭇잎인데 나무 밖으로 긴 줄에 매단 모빌같이 주먹만 한 연녹색 망고를 출렁출렁 매달고 있습니다. 이 더위에 쑥쑥 자라고 익어갈 과일들은 그 강렬함으로 당도를 높일 것이고, 군데군데 자리한 연못은 후끈하게 달아 오른 공기에 물을 데워 굵은 물고기를 키워낼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저 햇빛과 열기만 보내는 것 같지만 자연은 분명 쉬지 않고 자양분을 보내는 거죠.
플랫폼조차 없는 조그만 역에서는 채 5분도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큰 도시에서는 거기가 종점인 듯 오래 정차했습니다. 여행에 지루함이 없으면 여행이 아니듯 그 정도야 했습니다만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짜증이 났습니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냉방이 안 되는 차 안은 꿉꿉한 땀내가 났습니다.
역이라고 해봐야 몇 사람 비를 피할 정도의 지붕을 가진 무채색 역에 도착했습니다. 조그만 간판에 ‘꾸밀라(কুমিল্ল, Comilla)’ 이렇게 쓰여 있네요. 꾸밀라에 정차한 차는 한참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꾸밀라는 동료 선생님이 계신 곳이니 잠시 내려서 바람을 쏘였습니다. 덥긴 하지만 건조한 바람이 끈적함을 날려주었습니다.
한참을 정차하던 기차가 출발하려 빵, 빠~앙, 다시 기적을 울립니다. 사람들이 출발한 기차에 뛰어 올라탔습니다. 열차가 느리게 출발하면서 내는 육중한 삐익 소리, 조용히 ‘덜~거덕’하는 바퀴 소리, 차창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이런 것들을 느낄 겨를도 없이 출입문에서 밀리고 밀려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곳까지 밀려서 들어갔습니다. 객차 이음매 구석마다 한 명씩 4명이 서게 됐습니다. 멀뚱하게 얼굴만 바라보면서 아무 말하지 못했습니다. 속도가 붙고 덜거덩 소리는 덜커덩, 철커덩, 떨커덩, 철커덩, 철 이음매에서 나는 그 특유의 소리를 들으며 몸은 춤을 췄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앞쪽의 열차에서 발을 들어 뒤쪽으로 옮기니 덜 흔들렸습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기찻길이 평평한 것 맞아’ 철길을 보면 울퉁불퉁한 곳이 한 곳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왜 객차와 객차 사이는 평평하지 않을까요? 왜 이리 나를 춤추게 할까요? 힘들어 죽겠습니다. 이거 진짜 궁금합니다.
기차 안은 간식을 파는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닙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통과해야 다음 객차로 갈 수 있으니 그곳은 필수 코스인 셈이죠. ‘빠니(물), 빠니~’, ‘빠니빠니, 탄다빠니(시원한 물)~’ ‘빠니빠니, 빠니, 스파클~’ 가장 많은 것은 물과 음료를 파는 청년이었어요. 청년이라기 보다는 아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작은 플라스틱 박스에 차가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물병과 음료수를 머리에 이고 다닙니다. 입은 붕어가 물 위에서 빠끔 거리듯 쉼 없이 빠니, 빠니를 외쳐 댑니다. 제 턱이나 닿을까 한 아이들도 그중에 몇 명 있습니다. 얼굴엔 힘에 부치는 모양이 역력합니다. ‘뻬아라, 뻬아라, 쇼샤, 뻬아라’ , ‘쇼샤, 뻬아라, 쇼샤, 뻬아라’ 오이와 구아바를 파는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입니다. 껍질을 벗긴 오이와 잘게 자른 구아바를 담은 봉지를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 이고 다니며 팝니다. 손님이 구아바를 구입하면 그 안에 다시다 비슷한 무슨 비법 가루를 툭 뿌려 줍니다.(양념 소금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보냉 통인지 파란색 밀폐 통에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기차가 섰을 때 잠깐 올라오거나 기차 밖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룽기를 배꼽 밑에 둥둥 동여매고 웃통을 벗은 장사꾼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보냉 통 손잡이를 들어 통을 세게 때리면 나는 소리, ‘딱, 딱, 딱’ 이 소리가 바로 아이스크림 장수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종소리로 두부 장수가 왔다는 표시를 하는 것처럼요. ‘아이스~께끼~, 하드 왔어~요~’ 어릴 때 듣던 아이스께기 장수의 목소리가 그리워집니다.
블루오션 전략을 펼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 장난감을 팔아보겠다고 기차에 오른 사람입니다. 바람 호스를 눌러 뛰게 하는 말, 굴리면 날갯짓하는 나비, 꽃이 매달린 머리핀, 거기에 봉지 과자는 덤으로 가지고 다닙니다. 모두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가지고 다닙니다.
땅콩을 팔기도 하는데 구운 땅콩을 통째로 팝니다. 한 봉지에 스무 개 남짓 됩니다. 그러니 콩으로는 마흔 개인 셈이죠.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이 땅콩을 샀습니다. 땅콩을 먹는 방법은 어디나 같은 모양입니다. 손가락으로 눌러 겉껍질을 까고, 살짝 비틀어 속껍질을 벗깁니다. 그리고는 입으로 집어던지는 거죠. 고소한 향이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벗긴 껍질은 기차 바닥에 그냥 버립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던 역무원이 한마디 하며 손짓을 합니다. ‘밖에 버려’
식사 때가 되면 싱가라와 쇼모짜 같이 요기가 되는 음식을 파는 상인들로 바뀝니다. 가까운 기차역에서 타는 듯했습니다. ‘싱가라, 쇼모짜〰 〰’ 뒷소리가 좀 깁니다. 싱가라는 손바닥 반만 한 종이를 그 위에 덮고 잡아서 주면 그만입니다. 봉투도 휴지도 없습니다. 광주리 같은 곳에 불룩하게 쌓였던 싱가라가 돌아올 때 보니 반으로 줄었습니다. 싱가리, 쇼모짜가 이 나라 국민 간식이요 국민 음식이 맞긴 맞나 봅니다.
이렇게 많은 상인들이 좁은 기차 안을 헤집고 다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지나갈 때면 길을 비켜주기도 하고 지나가는 상인을 불러 세워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저는 너무 많은 상인들이 다녀서 잠깐 짜증이 났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지 세어봤습니다. 1분에 한 명꼴로 지나다녔으니 승객보다 상인이 더 많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승객들은 서로가 다 아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합니다. 나만 빼고 모두 낯익은 사람들 같았고, 이미 모습이 다른 나를 이방인으로 여기고 슬쩍슬쩍 쳐다보는 게 전부입니다.
아! 지루함 잊고 음악을 들으라고 이어폰을 가져온 상인을 보고 나도 이어폰을 꺼내 핸드폰에 있는 음악을 틀었습니다. 하지만 기차 소리만 들릴 뿐 음악 소리는 아주 작게 들렸습니다. 그때 이어폰에서 가늘게 나오는 소리는 “어느 지나간 날에 오늘이 생각날까. 그대 웃으며 큰소리로 내게 물었지. 그날을 지나가고 아무 기억도 없이. 그저 그대의 웃음소리뿐.” 이문세의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를 ‘오징어, 땅콩’을 먹으면서 들을 수는 없겠죠.
한국의 기차를 생각해 봤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 시간이면 주파하는 KTX는 도중에 어떤 마을이 있는지도 모르게, 차창에 어떤 풍경이 있는지도 모르고 목적지에 당도합니다. 이별의 애틋함은 영화의 한 장면이 됐고, 기쁨의 재회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속도로 승부하는 세상으로 변해서 ‘빠르게, 빠르게’만을 외칩니다. 그러니 기차가 낭만이고, 삶이요, 서민의 애환이 깃들었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살던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라떼는’이 된 거죠. 요즘 젊은이들에게 옛 감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기차는 이제 기차가 아니라 그냥 교통수단일 뿐입니다. 완행이라는 낭만, 조그만 간이역을 모두 들려 그곳의 삶들을 싣고 달리는 완행의 느림이 바로 우리 마음에 쉼표를 찍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기차는 안에만 타는 것이 아니라 기차 밖에도 사람이 탈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아침 일찍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철길 다리를 건너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오래된 삶이 들어있었습니다. 머리에 인 짐에는 삶에 찌든 때가 있었고, 바닥에 주저앉은 어르신에게서는 고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삶의 때가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고단함이 찌듦을 보듬는 정이 있었습니다. 먼 길을 거치고 돌아 모든 사람의 삶을 싣고 달리는 거였습니다. 지금 달리는 이 열차가 그 열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아날로그 열차. 그러니 기차 탄 풍경은 방글라데시의 풍경이요, 한국의 옛 모습입니다.
쌀 포대를 자리로 내줬어요
꾸밀라에서 출발한 기차는 쬬또그람을 향해 갑니다. 기차 안 풍경은 어땠냐고요. 10시간도 넘게 탔으니, 풍경이 풍경이겠습니까?
<지구별 여행자>에서 류시화는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들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그 길들은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들과, 열여덟 살에 아기 어머니 된 여인들과, 진리를 깨우친 성자들의 동굴로 나를 인도했다. 책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것은 시간과 풍경으로 인쇄되고,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로 제본된 책이었다. 그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 책에 얼굴을 묻고 잠드는 것이 좋았다.」
만나는 것, 보는 것 모두가 책이래요. 거기다 한술 더 떠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으로 제본된 책이래요. 근데 저는 그 정도의 책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기차는 만원이었습니다. 선반엔 많은 것들이 올라앉았습니다. 학교 가던 책가방이며, 보자기로 싼 짐 보따리, 아이 옷이 삐죽이 나온 가방, 가끔은 목이 견디지 못해 내려놓은 싱가라 광주리까지 올라앉았습니다. 의자 등받이는 무슨 죄인지 지친 얼굴을 한 승객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고, 그들의 얼굴에서 떨어진 땀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고요. 거기에 머리를 대고 잠을 청하지만 흔들리는 기차가 가만 놔두질 않네요. 저도 해봤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너무 흔들립니다. 달달 돌아가는 선풍기는 더위를 없애주기는커녕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바람을 내보내고요. 거의 찜질방의 그 뭉근한 더위라 할까요? 가슴에서 땀 한 방울이 도르르 굴러 배꼽으로 들어갑니다. 기차 하면 밤기차가 제격인데 ‘낮 시간 동안 이렇게 기차를 오래 탈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거리 기차는 낮을 밤으로 바꾸고, 밤을 아침으로 바꿔주는 줄 알았습니다. 두 줄의 평행선을 달려 한 줄은 밤이요, 한 줄은 낮으로 가는 선로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봅니다.
두 명씩 앉는 의자는 앞을 보며 배치됐습니다. 가만 보니 통로 쪽 의자의 팔걸이는 서 있는 사람을 위해 내주어 세 명이 앉는 의자로 변했습니다. 바닥에 비닐봉지 하나 깔고 앉은 아주머니는 용케 커다란 PE 포대를 등받이 삼아 입석을 좌석으로 바꿨습니다. 좌석에 앉으니 곧바로 고개가 땅으로 내려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내려갔네요.
제 앞자리의 주인이 꾸밀라에서 바뀌었습니다. 호리호리한 청년이 40㎏짜리 쌀 포대 둘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잠시 앉아 있던 나는 자리를 비켜주고 무거운 짐을 의자 앞에 놓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하나는 의자 앞으로 들어갔는데 하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할 수 없이 옆으로 비켜섰는데 이 청년이 뭐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는데 앉으라는 말이었습니다. 저에게도 그렇게 행운은 왔습니다. 9시간 만에 앉을 수 있게 된 거죠. 재차 말하는 앉으라는 소리에 속으로는 ‘아! 이런 천우신조가’라면서도, 입으론 ‘괜찮아요’를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말을’ 하면서 후회했습니다만 상대방의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제 엉덩이는 쌀 포대를 눌렀네요. 그제야 얼굴을 보며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청년 덕분에 2시간은 마음껏 졸 수 있었습니다. 다리가 퉁퉁 붓는 것도 막을 수 있었고요.
종점이 가까워졌나 봅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 둘이 승객을 헤치고 객차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하얀 가운에 가슴 호주머니에 볼펜 두 자루가 꼽혔습니다. 말끔하게 면도했습니다. 하얀색 가운을 입어서 의사로 착각했는데 검표원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기차 회사에서 신분을 인정한 역무원이 맞았습니다. 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호주머니를 뒤지고 짐 가방을 뒤집니다. 나도 하얀색 승차권을 꺼내 눈 가까이에 대고 확인한 다음 검표원에게 보여줬습니다. 손바닥만 한 승차권, 그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적힌 데까지 나를 데리다 주는 증표요, 나를 안정감 있게 만드는 초대권이라고 해야 할까요. 꺼내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확인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미처 표를 끊지 못한 승객은 그 자리에서 돈을 꺼내 요금을 내면 영수증을 내줍니다.
연한 파란색 빤자비를 입은 중년이 재빨리 이동하려다 검표원이 표를 보여 달라는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뭐라 말하면서 앞 칸을 가리키지만 검표원은 표를 보여 달라고 재촉합니다.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이 몇 차례 되풀이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무임승차인가 보다’라고 직감했습니다. 제가 직감했으니, 검표원은 당연히 알겠죠. 마침내 큰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눈이 모두 둘을 향했죠. 여러 차례 말해도 남자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검표원은 동행한 경찰에게 뭐라 말하니 경찰이 나섰습니다. 돈을 내라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검표원을 등지고 서더니 호주머니에서 500따카 짜리는 다른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고 잔돈 몇 푼 만 내놨습니다. 그사이 검표원은 영수증을 작성했는데 남자는 영수증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마 ‘요금이 얼만데 이렇게 많냐!’ 겠죠.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검표원이 요금에 무임승차 과태료를 더해 두 배로 끊었을 겁니다.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니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현지 한국어 선생님께 무임승차 과태료는 두 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읍소를 시작하는 남자. 남자는 4번 접힌 100따카짜리를 검표원 손에 쥐여 주며 뭐라 말합니다. 봐달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미 모든 사람 앞인데 봐줄 수가 있나요. 검표원은 손을 뿌리치며 돈을 내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경찰에게까지 100따카를 내밀며 봐달라고 합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남자의 표정은 묘하게 바뀝니다. 주위의 눈치도 살핍니다. 하지만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의자에 앉은 승객 하나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검표원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원칙대로 하겠다는 굳은 표정입니다. 그 후론 아무도 이의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검표원이 경찰에게 호주머니를 뒤지라고 하고 경찰이 행동을 시작하자 스스로 돈을 꺼내 놓습니다. 그래도 500따카 짜리는 어디에 교묘히 숨었는지 나오질 않네요. 어찌 됐거나 잔돈만으로도 계산은 다 됐습니다. 거스름돈까지 받았으니까요. 그런 남자가 갑자기 자기 울분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며 다른 열차로 갔습니다. 나 같아도 그랬겠습니다. “방귀 뀐 놈이 화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창피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바람피우고 소리치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늦게 일어나고 ‘안 깨웠다’고 성질부리는 녀석, 돈 갚아야 할 놈이‘ 더 소리 큰 소리 내는 것’. 본질은 나를 좀 이해해 달라는 겁니다. 이 일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말라는 신호입니다. ‘왜 하필 내가 잘못했을 때 와 가지고 이러는 거야, 좀 봐주면 안 되나, 창피하게. 내 상황이 이러이러하니 너는 말하지 말라’ 뭐 그런 겁니다. 그렇지만 실수와 의도된 잘못은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이 남자는 분명 전에도 무임승차했을 겁니다. 그때는 다행히 걸리지 않았겠죠. 한 번 하기가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아주 쉽습니다.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어가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 객차 안은 웅성웅성했고 객차 통로는 아수라장이 된 분위기였습니다. 검표원도 따라 순식간에 다른 객차로 갔습니다. 언쟁 때문에 멈춰 섰던 물을 파는 청년이 박스를 이고 ‘빠니, 빠니, 탄다 빠니’를 외치며 아수라장을 비집고 지나가네요.
꾸밀라를 지나니 처음으로 사탕수수인지 옥수수인지 한 길도 넘는 식물들이 자라는 밭이 보였습니다. 옥수수보다는 사탕수수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사탕수수는 밭을 떠나면 어느 밴 위에 올라타고 시내로 나갈 겁니다. 기차를 타는 녀석도 있겠죠. 거기서도 온전히 살지 못할 겁니다. 프레스기에 몸을 구겨 넣어 찢기고 으스러져 제 몸에 물기 하나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 고통으로 짜낸 달디 단 뽀얀 사탕수수 물은 누구의 떨어진 당을 보충해 줄 음료로, 갈증 해소를 위해 팔리는 것으로 제 사명을 다하겠죠. 그게 사탕수수가 살아서 해야 할 미션이라면 제대로 한 겁니다.
쬬또그람에 가까워지면서 저수지가 사라졌습니다. 곳곳에 있던 저수지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구릉이 생겼습니다. 마치 협곡 열차를 탄 기분입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평지를 달려온 기차가 구릉에 와있으니 신기합니다. 방글라데시는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도 있어 평균 해발고도가 5m라고 합니다. 그 5m를 모두 쬬또그람에서 높여 놓은 것이라니 여기만 산이 있는 건 맞나 봅니다. 물론 산이라고 해야 한국의 동네 뒷산만도 못합니다만 열대의 검푸른 빛입니다. 산중호걸이라는 호랑님, 춤추는 토끼, 바이올린 켜는 여우, 까불까불하는 짐승들이 가득할 것 같은 정글입니다.
곧 시내에 당도했고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승차권이라는 유기증권을 돌려줘야 할 시간입니다. 긴 여행이 끝을 알리는 개찰구를 나오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표정 없는 역에 내려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쬬또그램에서 같이 고생하며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뭉텅이로 내렸습니다. 어느 도시를 방문하건 처음 접하는 곳이 그 곳의 표정이 되는 법이죠. 여기 쬬또그람은 고생 끝이라는 인상보다는 와우! 굉장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마이멘싱역이 가정집이라면 에어포트역이 학교 정도였는데, 쬬또그람역은 천장 높이가 3층은 됨직한 열린 역사입니다. 사진 한 방 찍는 것으로 오늘 11시간 기차 여행은 막을 내렸습니다.
'여행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구나' - 다카에서 마이멘싱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카까지 에어컨이 팡팡하게 나오는 버스를 탔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내리는 곳입니다. 역시 여행은 기차가 맞나 봅니다. 기차로 시작했으니 기차로 여행을 마무리하자는 생각으로 다카역으로 갔습니다. 종이를 접어 ‘동서남북’하는 놀이 아시나요. 그 종이 같은 모양이 연속된 지붕입니다. 정말 관리하기 어려울 텐데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게 볼록볼록 튀어나온 지붕을 가진 역사입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는지 줄 설 수 있는 라인을 쇠 파이프로 만들었습니다. 검표도 이곳에서 한듯한데 지금은 검표는 하지 않네요. 길이가 20미터는 되는 듯합니다. 그것 때문에 병목이 생겨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4번 플랫폼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출발 10분 전에야 탑승 플랫폼을 알리는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745(৭৪৫), platform 4(৪)’. 기차에 올랐습니다. 아침에 타고 왔던 그 관작이 또 왔네요. 안에 들어갈 것도 없습니다. 물론 입석이죠. 출입구 옆 짐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옆 칸은 연료를 가득 실은 조종실이었습니다.
잠시 후 제가 서 있는 자리로 아이들이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예닐곱 살 된 여자아이는 두 갈래로 머리를 묶었습니다. 남자 이이는 반소매 옷에 비싸 보이는 검은 구두를 신었네요. 엄마는 아주 젊었는데 비행기 안에는 들고 가지 못할 큰 검은색 천으로 된 캐리어를 내 앞에 눕히고 아이들을 앉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무심한 손짓만 해댔습니다. 나도 쳐다봤죠. 철길에는 초로의 여성이 철로를 낮은 의자 삼아 다리를 벌리고 앉았고, 그 옆에는 앳된 아가씨가 한쪽 발은 슬리퍼를 벗어 철로에 올린 채 바닥만 보고 있었습니다. 이들 삼각관계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잠시 쳐다보고 눈을 내리깔기를 반복했습니다. 누가 먼저 말을 해야 하는데 뭐라 말할 수는 없고, 광고에 나왔던 거 기억하시나요.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이런 눈치 보기가 계속됐습니다. 시간이 돼도 기차는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뭐 방글라데시가 언제나 그랬으니까 이제 그런 건 별로 신경도 안 쓰지만요. 밖에 나가보니 기름을 넣고 있네요. 하, 이런! 하며 플랫폼 시멘트 의자에 앉으려니 넘어가는 해가 얼굴을 비쳐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열차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서성거리는데 기차가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이 삼각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어머니가 시집간 딸을 마이멘싱으로 돌려보내는 장면입니다. 같이 나온 건 아마 시집간 딸의 동생일 겁니다. 언니를 배웅하러 온 거지요. 기차가 움직이자, 엄마가 아이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밖에 서 있던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 꺼내서 기차로 다가옵니다. 기차 안의 딸은 오지 말라고 손짓하고요. 하지만 기차가 너무 높아 아이 손에까지 닿지 않은 채 기차에서 멀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엄마는 눈물을 훔칩니다. 뭐라 중얼거리는 것 같긴 합니다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입안 소리입니다. 기차가 떠나 밖을 볼 수 없지만 아마 할머니는 기차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을 겁니다. 기차에 탄 딸도 한참을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은 입에서 눈으로 왔다 갔다 했으니까요. 이 방글라 판 신파극은 한국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만 사람 사는 곳엔 어디나 있습니다. 그래서 기차역이 이별의 정거장이라는 거 맞나 봅니다.
결은 다르지만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 발 0시 50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랫폼,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0시 50분」 <대전 블루스>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엄마야 그러건 말건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작은 아이를 안고 가방에 앉은 엄마는 더워 죽겠다는 듯 손부채질을 하다 아이의 얼굴에 땀이 맺힌 것을 보고 아이에게 부채질을 했습니다. 아이의 가슴 단추를 풀면서 손부채질을 했습니다만 그 바람으론 아이 더위를 가시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이 얼굴에는 점점 더 많은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내 배낭 안의 밥공기 크기의 무선 선풍기. 좁은 공간에서 가방을 뒤지느라 또 땀을 냈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지퍼를 열고 찾았으니 다행입니다. 선풍기를 켜서 아이 엄마에게 줬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금세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아이에게 바람을 보냈습니다. 신기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어 어깨만 으쓱해 보였습니다. 옆에 서 있던 승객도 아이에게 손부채질해 바람을 보탰습니다. 그런 바람에 주위 사람들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어디에 있냐고’, ‘뭐 하냐고’ 질문을 계속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는 여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이거 내가 다 아는 말이니 쉽게 대답했네요. 방글라데시 사람들 얼마나 멋집니까. 내가 아는 것, 답변할 수 있는 질문만 하네요. 하긴 모르면 어깨를 ‘으쓱’ 해 보이면 그만입니다. 기차 탄 풍경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방글라데시는 감성의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외국인이 찾는 관광의 나라는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 때문에 여행하는 데 불편은 없습니다. 열정적이고 친절했죠. 외국인들이 헤매고 있으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짱가 같은 해결사가 나타나서 시원하게 해결해 줍니다. 불편이라면 빨리빨리 문화에 물들어 느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있겠죠.
기차는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삶을 싣고 달립니다. 기차 안에 가득 실린 고단함도 그 도착지에선 희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기차는 이들의 삶을, 꿈을 이루게 해 주죠. 아무리 낡은 기차라 해도, 아무리 천천히 가는 기차여도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줍니다. 혼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꿈을 조금이라고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기차에서 내린 이들은 아마 낯선 공기를 마시면서도 새로움에 가슴 뛰는 경험을 할 것이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겁니다.
이번 기차 여행은 1평 남짓한 공간에서 방글라데시와 호흡을 같이한 진짜 방글라데시 여행이었습니다. 마이멘싱에서 다카까지 120㎞, 다카에서 쬬또그람까지 철길로는 320㎞, 북에서 남으로 440㎞, 11시간 달렸고, 다카에서 마이멘싱까지 120㎞, 4시간을 추가로 차 안에서 보냈습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나에게 느림이 무엇인지 알려준 여행이었죠.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에서도 기다림이 필요한 건 아닐지 생각하게 합니다.
김애란은 <잊기 좋은 이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 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본다고 본 것들이 그냥 헛됨이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기차를 타면서 생각한 이것저것을 한데 모았습니다. 빨랫줄에서 갓 걷은 빨래처럼 모든 것이 엉켜있지만 차곡차곡 개어 옷장에 넣는 건 여러분 몫으로 남겨두렵니다.
‘여행은 즐기는 것뿐 아니라 기다려야 하는구나.’ 새삼 깨닫는 새벽입니다.
【정보】
◽ 마이멘싱기차역 – 다카 에어포트기차역: 120따카, 3시간
◽ 다카 에어포트기차역 – 쬬또그람기차역: 345따카, 8시간
◽ 다카 Kamalapur기차역 – 마이멘싱기차역 120따카, 4시간
◽ 기차표 구입 방법: 온라인이나 사전 현장 구매를 통해 좌석표를 구입할 수 있다. 입석표는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 기차의 종류는 부하마푸트라, 자무나, 하워, 모항곤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좌석은 침대, 가족석, 일반 좌석 등이 있다.
❈ 쬬또그람(팜파라)-다카(아람바그): 그린라인 버스(에어컨) 900따카, 6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