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샘!
호텔 앞 풀장에 동심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늘을 닮아 고요하던 물이 작은 빗방울에 제각각 반응하네요. 하나의 물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엔 무수히 많은 다른 하나가 존재했나 봐요. 그래서 그런가요. 빗방울을 품는 물은 다 같은 모양으로 품는 것 같지만 그것들이 그려내는 건 모두 다른 원이네요. 그도 그럴 것이 품는 물도 안기는 빗방울도 다 다를 테니까요. 어떤 빗방울은 무거웠을 터였고, 어떤 빗방울은 작게 떨어지고, 그 방울의 면적 또한 달라 풀의 물에 부딪혀 만들어 내는 모양도 제각각이겠죠. 빗방울 하나하나에 이름이 없어서 그런가요. 빗방울들이 만들어 내는 파문에도 이름은 하나뿐이네요.
어제 콕스바자르의 해변에서 ‘게’가 만들어낸 모양도 그랬어요. 큰 게는 집을 짓는데 구멍을 크게 뚫었어요. 작은 게는 작아 보일랑 말랑한 것도 있고요. 게의 크기에 따라 게의 능력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양을 만들어 냈겠죠. 같은 환경에서 같은 것을 먹고 같은 일을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달라요. 뽕 뚫린 게 구멍을 중심으로 모래 방울을 만들어 밖으로 던진 게들은 그들의 힘으로, 그들의 크기에 의해 멀리 던질 수도 있고 가까이 던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은 힘에 의해서만이 아닐 거예요. 게들이 생각을 했다면 아마 게들의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양일 거예요. 모래를 동그랗게 뭉칠 수 있는 것도 아마 큰 능력일 거고요. 사람은 할 수 없는 모래 뭉치기. 게가 그린 그림이 아주 예뻐요. 이것들이 무수히 오래된 세월 이전부터 만들어졌다면 아마 인류가 그려왔던 기하학적 모양은 게들에 의해 창조되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방했을 것이란 착각을 하게 했어요. 게들이 던져낸 모래 방울도 게 구멍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퍼져 나갔으니 풀장의 파문과 한 가지겠죠. 오늘 콕스바자르에서 나는 어떤 동심원을 만들었나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어제 같은 오늘을 살아왔어요. 오늘 같은 내일을 살 거잖아요. ‘매일이 새 날이어라’하고 산다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일으킨 파문은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가 모두 다른 모양으로 태어나서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 하루하루를 만들었어요. 지금까지 만든 날이 그렇게 적지는 않은데 남긴 자취는 왜 없을까요? 기껏해야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잘해왔다는 생각 하나, 남들을 위해 살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 정도밖에 말할 수가 없네요. 그러면서도 ‘인생 잘 살아왔어’ 하며 스스로 방패 하나 들고 비난을 막았던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지금까지 매일 무언가를 내 안에 담으려고만 했어요. 뭐가 담기는 줄도 모르고요. 이제 내 안에 나를 담아야겠어요. 인생에서 유일한 문제는 부족한 나 자신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 단 하나밖에 없다고 하잖아요.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인생 수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 있을 때도 근사하게 시간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이 떠나고 없을 때나, 우연히 혼자 있을 때 갖게 돈 시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껴둔 시간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내 안에 나를 담과, 남도 담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빗방울도 담고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가 경험한 것을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라는 말을 되새기는 아침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