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는 내 공간을 내어주는 것
윤 선생님!
윤 선생님이 먼저 말했잖아요. “이거 당황스러운 거 아닌가요? 밥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혼자 먹으라네요. 자기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얼마 전이었어요. 아래 집 아들, 10살인 ‘샤이온’이 문을 두드리며 ‘코리아 엉클’을 불렀어요. 문을 여니 아래층으로 내려오라고 하네요.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어요. 옷을 갈아입고 내려갔죠.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앉으려니 식탁으로 안내했어요. 식탁엔 약간의 음식이 담긴 접시가 하나 덜렁 놓여있습니다. 한 뼘도 더 됨직한 넓은 접시예요. 먹으라고 말했어요.
주위를 둘레둘레 보면서 “나 혼자 먹어.”라고 한국어로 말하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더군요. 다시 말했어요. 영어로 말했어요. “나 혼자” 그리고 방글라데시어로 또 말했죠. “같이 먹어요.”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내 생각에 같이 먹어야 할 것 같은 주인 남자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룽기를 입고 웃통을 벗은 채 방에서 먹으라면 손짓만 해댔어요. ‘하산! 하산!’ 불러 같이 먹자고 해도 혼자 먹으라는 건지 먼저 먹으라는 건지 손짓만 해댔습니다.
주방을 나온 주인은 손에서 루띠(밀가루로 구운 빵)를 서너 장 내려놓으며 손을 입 쪽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먹으라는 시늉을 했어요.
나는 속으로 소리 질렀어요.
“아! 그러니까 이걸 나 혼자 먹느냐고? 오라고 했으면 같이 먹어야 하는 거 아냐?”
인심 좋은 주인은 먹을 게 없어서 안 먹고 말만 하는 줄 알았는지 소고기라며 불고기 양념 색깔의 큼직한 깍두기 알 만한 고기를 세 점을 더 내오더라고요.
“소고기, 맛있어요. 한국에 소고기 있어요?”
“네 있어요.” 그리고 하나를 집어 입 입에 넣고 ‘정말 맛있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샤이온, 샤이온” 나는 ‘샤이온’을 불렀습니다.
“샤이온 같이 먹자.” 아무도 식탁에 오지 않으니 고육지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샤이온도 식탁에 앉으려 하지 않았어요. 혼자 외출했다가 혼밥이 싫어서 굶은 적도 있는 나는 이게 방글라데시 방식의 초대 문화라면 이 문화를 따라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손으로 우적우적 음식을 입에 넣었어요.
윤 선생님도 경험하셨겠지만, 음식의 양도 만만치 않잖아요. 음식은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해서 나와요. 그만 내오라고 손짓, 몸짓을 해봐도 손가락으로 ‘하나만 더’, ‘두 개만 더’라고 하면서 계속 내오잖아요. 이걸 끊지 못하면 여기서 배 터져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례한 줄 알면서도 일어나는 시늉으로 더 나오는 음식을 물리쳤어요.
윤 선생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이번 여행에서도 일어났어요. 일정에 없이 방글라데시의 한국어 선생님 집에서 점심을 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초대를 받은 셈이었죠. 나도 알지 못한 사이에 초대받은 상황이 된 거예요. 우리가 가진 일정은 일정일 뿐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게 바로 여기였어요. 일정 짜느라 괜한 고생을 했구나 생각했었죠. 그래도 방글라데시는 안 될 것도 없고 될 것도 없는 나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 어떻게 되겠지 했어요. 정말 편안한 나라잖아요. 차가 막혀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받아들이죠. 늦어도 빨라도 그것이 숙명처럼 여기고요.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고요. 지각이 없는 나라인 셈이죠. 그래서 행복한 나라인가요. ‘인샬라’면 해결되는 나라. 그런 나라니 그러려니 여길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가요.
그 나라의 생활을 직접 보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누구를 초대한다면 어느 정도는 나쁜 건 감추고 좋은 것만 보여주게 마련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정말 방글라데시 농촌을 본 것 같아요. 줄줄이 과자로 주렴을 만들 듯 펼쳐 걸어 놓고 파는 고만고만한 가게, 서너 소쿠리 채소를 내놓고 룽기 자락을 훌렁 걷고 앉은 남자의 좌판, 나무 의자에 두 발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 무심히 밖을 내다보는 주인의 상점, 정말 손바닥만 한 상점이 줄지어 선 상점가를 지나 그 안쪽에 있는 가정집을 보았지요. 벽이 벽을 서로를 의지하는 담벼락을 가진 집. 녹슬 대로 녹슨 붉은 함석지붕에 빨래를 얹은 집, 이끼가 역사를 말해주는 유적지를 주거지로 삼아 사는 사람들, 현대인이지만 시바신이 거주하는 공간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이 되려는 고대 사람임이 분명한 가족들, 외국인이라고 구경거리 난 듯 모여드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있는 마을을 보았습니다. 벽에서 빼꼼히 내민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기도 했어요. 빗물이 신발에 배어들고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질퍽한 길을 미끄러지면서 걸어 들어가 점심을 먹었어요. 바나나 잎 우산을 써보기도 하고 비를 맞으면서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걷기도 했죠.
빗길을 뚫고 우리가 도착하자 음식을 만드는 손길이 분주해졌어요. 마을 사람들이 다 온 듯 많은 사람으로 집안이 가득했고요. 비가 쭉쭉 내리는 마당에선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 소리가 짜랑짜랑 들렸고요. 내다보니 작은 아이들은 줄넘기를 하고 조금 큰 아이들은 공을 차면서 뛰어다니더라고요. 비가 오니 지치긴 틀린 것 같았어요. 아마 비에게서 공급받는 에너지와 아이 본연이 가진 힘을 합치면 백만 스물다섯을 셀 때까지 뛰어놀 수 있을 기세였어요.
집안에선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냄새는 집 안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부침개 같은 루띠는 앞뒤 할 것 없이 노릇노릇 구워져 접시에 담기는데 회전 초밥집 접시 쌓이듯 하네요. 비 오는 날 질척한 우리네 부침개보다 마른 듯 촉촉한 루띠가 더 어울리기도 하더라고요. 누리끼리 한 ‘달’은 이름 그대로 달달하게 익어갔고요. 속 붉은 망고는 주홍주홍 하면서 깍둑썰기가 돼 각각의 컵에 나눠 담겼지요.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어요.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할 것도 없이 척척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으로 봐선 여간 해본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음식이 조리되는 동안 곁에 다가오지 못하는 수줍음 많은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죠. 음식을 하지 않는 남자들은 머뭇머뭇했지만 다가와 말을 걸었고 낯선 방문객을 낯설지 않게 맞으려 애쓰는 눈빛이 역력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웃 주민들이 아니라 모두 가족이라고 하더라고요. 큰집, 작은집 가족들이 모여 족히 30명은 되었어요. 대여섯 평은 될 만한 큰 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단체 사진을 찍는데도 버거울 정도로 많았으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이 풍성해졌죠. 우리네 식탁처럼 상다리가 휘게 차리는 문화는 아니지만 직접 정성을 들여 만든 따뜻한 음식을 내놨습니다. 접시에는 소보로 빵 등 튀어나오듯 갈색 반점이 볼록볼록한 등을 가진 루띠가 몇 장씩 담겼어요. 누런색의 우중충한 옷을 입었던 망고는 엷은 고춧가루 물이 든 무처럼 살짝 노란색이 도는 주홍으로 맑은 유리컵 속에서 들어앉았지요. ‘손으로 먹어야 하나’하는 생각을 들지 않도록 포크를 미리 놓아둔 주인의 센스도 돋보였어요.
하지만 여기도 주인은 상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더라고요. 손님만 식탁에 앉아 먹는 꼴인 거죠. 앞에서 말했듯이 경험이 있으니, 뭐라 말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어요, ‘편하게 먹으라는 배려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었죠 뭐. 생각해 보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겉치레는 하지 않겠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시라. 어떤 편견을 갖게 된다면 그것도 언젠간 풀릴 것이다. 하지만 난 진심이다.” 이런 거 아닌가요. 전기가 나가자, 선풍기보다 더 센 바람이 뒤에서 훅 들어왔어요, 뒤를 돌아보니 한국어 선생님 누나인가요. 누런색 나뭇잎 같은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상으로 보내고 있었어요. 부채질하지 말라고 계속 말해야 했어요. 이런 게 환대구나! 생각했어요. 우리는 뜻밖의 환대를 받은 것이지요. 부족한 것 같지만 아쉽지 않은 대접이었죠.
환대는 내 공간을 남에게 내어주는 것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나를 내세우지 않고 손님을 주인으로 앉히는 것이죠. 환대는 여러 가지 모습일 거예요. 그중에 아마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모양은 물질일 거고요. 특히나 음식은 환대한다는 표시 중에 가장 큰 것일 거예요. 하지만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죠. 음식을 장만하는데 정성을 다하고 상을 차리는데 예의를 갖추는 것이 환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니 그때 빈손으로 간 우리는 미안한 꼴이 됐던 거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파브나 김 선생님의 아이디어로 아이들에게 용돈을 조금씩 줄 수 있어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었어요. 환대는 아이의 노래로도 나왔던 것 같아요. ‘동해 물과 백두산이’ 한 아이가 애국가를 불렀어요. 그 노래를 장 선생님이 받았죠. ‘엄마 곰, 아빠 곰, 얘기 곰’ 빗소리 속에서도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곰 세 마리의 행복함이 이 집의 행복함과 이어진 것 같았죠. 방글라데시 가족과 함께 손뼉 치는 나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요.
초대, 환대가 친해지기 위한 수단이라면, 서로 알아가는 과정, 친근감의 표시라면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있어요. ‘왜 나혼 자 먹어야 하는가?’ 하는 겁니다. 초대해서 같이 먹고 마시며 시끌벅적 이야기하는 우리 문화를 이해 못 하긴 여기 방글라데시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초대해 놓고 주인은 딴전 피고 손님만 밥을 먹게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방글라데시에서 더 살아야 알 수 있는 일이겠죠.
제 생각엔 환대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일상인 것 같아요. 제가 외국인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전에 제가 방글라데시 타지마할을 찾아가려 할 때 길을 몰라 헤매게 되었어요. 그때도 버스 차장은 나를 직접 버스에 태워 갈아타는 곳까지 데려다주었어요.
또 한 번은 버스를 잘못 타 허허벌판 막막한 버스 종점에서 내린 적이 있는데 그때도 어디선가 나타난 학생이 버스 타는 곳까지 직접 안내해 준 덕분에 파남시티(Panam city)를 찾을 수 있었었어요. 그래도 최고의 환대는 아마 나를 둘러싸고 서로 싸우다시피 하면서 내가 갈 곳을 기어코 찾아내 알려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들은 정말 사람을 환대할 줄 아는 거죠. 환대의 수혜자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결이 다를지 모르지만, 성경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라고 말하잖아요. 공자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은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마라’라는 말로 대접을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받고 싶은 일을 남에게 행하라’는 말인 거죠.
어쩌면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지’라는 우리의 문화는 환대와는 정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숟가락 하나로 환대가 되는 세상은 아니듯 하네요.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차이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파브나-라즈샤히 여행 중에 만난 방글라데시의 가정에서 정말 방글라데시 사람을 보았어요. 환대를 알았습니다. 왁자지껄하면서도 질서 있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꼈고요. 이런 게 행복이구나 생각하게 하는 방글라데시의 가정을 보았지요. 질척 질척한 빗길을 꼬불꼬불 걷고 빗물에 신발을 적시지 않으려 애쓰며 “차가 가도 되는 길이구만”하고 불평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낮이었어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인데요. 1,200쪽에 이르는 ‘안나’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 딱이에요. 방글라데시의 삶도 이 말 하나면 모두 해결돼요. 아니다. 이 문장 중 반만 써도 될 것 같네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다.”
다음엔 어디로 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