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곁에서 배운 나날

by 나자카

1980년대 중반을 넘긴 어느 봄날, 나는 교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날의 공기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마주한 순간, 긴장과 설렘이 파도처럼 밀려와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교실에는 낯설지만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고, 햇살은 창문을 지나 복도에 길게 드리워지며 봄의 시작을 조용히 알렸다. 낡은 나무 책상에서는 오래된 나무 향과 새 학기의 설렘이 뒤섞여 은은히 퍼졌다. 그 향과 설렘은 두려움으로 굳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었고, '나라의 미래를 키우는 일'이라는 사명감은 내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교사의 하루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그 자체였다. 아침마다 들려오던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던 조회, 아이들과 마주 앉아 웃음과 긴장이 교차하던 수업, 그리고 해가 기울어가는 교실의 종례까지. 아이들과의 하루는 늘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사건들로 가득했다. 한 아이가 던진 사소한 질문이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고, 뜻하지 않은 다툼이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은 나를 한층 성장하게 했고, 교사의 길이 단순히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자리임을 알려주었다.


교무실에서는 동료들과의 소박한 대화가 하루를 지탱해 주었다. 점심시간에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으며 나누던 정다운 대화 속에는 동료애가 배어 있었고, 선배 교사의 짧은 조언은 때때로 책 수십 권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작은 의견에도 귀 기울이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순간들, 그 시간이 모여 학교는 조금씩 따뜻한 공간으로 변해갔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나갔고, 나 또한 교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졌다.


미술 교사였던 나는 처음엔 그림을 가르치는 일에만 마음을 두었으나, 곧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은 단순히 선을 긋고 색을 입히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드러내는 고백이자 삶의 태도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네 그림이 남과 다르다는 건 틀린 게 아니라 특별한 거야.”


그 말에 눈을 반짝이던 아이들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순간, 그림은 교과서 속 지식을 넘어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세상과 만나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1980년대 말, 나는 학급 문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낡은 복사기에서 또각또각 뽑아낸 종이에 아이들의 글과 내 글을 모아 작은 책으로 묶었다. 손때 묻은 종이와 번진 잉크는 투박했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 꿈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첫 학급 담임을 맡았던 그해 겨울 방학식이 끝나자, 아이들이 하나둘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미소만 지었는데, 어느새 아이들의 팔이 내 허리를 감싸안더니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순간 몸이 공중에 떴고, 하늘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눈앞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 속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선생님, 고마워요!”라는 외침은 내 마음을 환히 밝혀주었다.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인 그 짧은 순간, 나는 아이들과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그 감격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아이들의 마음에 더 보답해 주어야겠다.”


해마다 이어진 문집은 어느새 학급을 대표하는 것이 되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며 자부심을 느꼈다. 모둠일기 또한 아이들의 마음을 비치는 창이었다.


“친구와 화해해서 기분이 좋아요.”

“오늘은 엄마와 다퉜어요.”

“제 꿈은 만화가예요.”


날마다 다른 일기의 문장은 작은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교사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다양한 활동을 도입했다. 학급 체육대회에서는 운동장에서 함께 달리며 땀을 흘렸고, 요리대회에서는 아이들과 도구를 나눠 쓰며 웃음을 터뜨렸다. 집단상담 시간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우리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워갔다.


교단은 끊임없이 나를 배우게 했다. 더 나은 수업을 위해 밤샘 교재 연구에 전념했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았다. 학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에서 강사로 섰던 적도 있다.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긴장 속에서, 오히려 나 자신이 더 많이 배우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역 미술 교사들이 참관하는 공개수업에서는 아이들의 작은 대답 하나에도 귀 기울이며 정성을 다해 수업을 이끌었다. 수업 발표대회는 준비와 경험이 쌓인 덕분에 무난했지만, 그 결과 이어진 영상 촬영 수업에서는 카메라 렌즈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을 붙잡아 준 건 화면 너머의 시선이 아닌, 눈앞에서 집중하는 아이들의 눈빛이었다.


그 모든 과정은 내게 부담이자 도전이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배움의 길이었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나는 교사의 성장은 결국 아이들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깊이 실감했다. 이것이 교사의 책무라 믿었기에, 미술 수업 컨설팅 활동을 맡게 되었을 때도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쏟은 시간과 노력이 언젠가는 또 다른 교실에서 또 다른 아이들의 배움으로 이어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 여한이 없다.


세월이 흘러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파도가 닥쳤다. 텅 빈 교실, 화면 속 작은 창에 비친 아이들의 얼굴, 낯선 온라인 수업. 아이들의 집중이 흐트러지고 서로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교실의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미술실의 책상과 의자를 닦으며 안전한 공간을 지켜내는 일이 내 몫이라 여겼다. 화면 너머로 전하는 위로의 말 한마디, 학부모와 나눈 작은 메시지 하나가 아이들의 마음을 붙잡는 줄이 되었다.


되짚어보면, 내 교직 생활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마주한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나는 참된 기쁨을 느꼈다. 그림을 완성한 뒤 환하게 웃던 얼굴, 졸업식 날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말, 작은 쪽지에 적힌 아이의 고백.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작업실 한편에는 10여 년 동안 이어진 모둠 활동의 기록인 일기와 학급 문집, 아이들의 편지들이 남아있다. 어떤 것은 25년, 어떤 것은 30년, 때로는 3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증거로 남아있다.


그것은 내 삶의 근본이자, 나를 길러준 뿌리였다. 아이들과 함께 나눈 웃음과 눈물, 배움과 성장의 순간들이 쌓여, 이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남았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진정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교단에서 흘린 땀과 눈물은 내 삶 속에서 가장 따스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풍경으로 남아있다.





당신의 일상생활 중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 있는 영향을 주었던 기억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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