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잔소리 노트
엄마의 잔소리 노트 | 프롤로그 |
by MeeyaChoi Nov 13. 2022
진작에 어른이 된 딸이지만, 멀리 살다 보니 볼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특히 한동안 왔다가 떠나기 전 날에는 집 떠나서 구하기 힘들 듯싶은 음식이나 자질구레한 물건을 큰 가방 구석구석에 끼워 넣고, 이런저런 잔소리도 덤으로 늘어놓았다. 듣다 못한 딸이,
"엄마, 그냥 적어줘!"
하더니, 나를 동네 문방구로 데려가서, 손바닥 두쪽만 한 얇은 노트를 사줬다.
딸이 친구 만나러 잠시 나간 사이에, 나는 노트를 마주 보고 식탁에 앉았다. 생각나는 건 너무 많은데, 침침한 눈에 작은 노트의 좁은 칸들이 아주 막막했다. 한참 망설이다가, 아쉽지만 쪽마다 세 줄을 한 줄 삼아 아주 큰 글씨로, 나름 간결하게 적기 시작했다.
1쪽 프로폴리스. 항염, 면역에 좋고...
2쪽 로열젤리. 항염, 면역에 좋고...
3쪽 야채수. 무청, 무, 당근, 표고, 우엉...
4쪽 현미차. 충분히 많이 마시기...
5쪽 해독주스. 양배추, 당근, 토마토, 브로콜리, 사과,...
6쪽 물 많이 마시기. 아침에 일어나서 한 잔,...
7쪽 신선한 음식 먹기. 곰팡이 나쁨...
8쪽 몸 활발히 움직이기. 매일 걷기...
......
이렇게 한쪽에 한 가지씩 내 나름의 생존 노하우를 적다 보니, 어느새 얇은 노트가 거의 다 채워졌지만, 다시 읽어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침 집에 돌아온 딸에게 내가
"쓰긴 썼는데, 좀 별로야."
라고 말하자, 딸이 시큰둥하니,
"왜?"
하고 물었다. 나는 스스로 몹시 불만스러워,
"이게 좀 뒤죽박죽이야. 다시 사다가 써야겠어. 처음부터 읽어보니 순서가......"
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가 쓴 것도 뒤죽박죽인데, 똑같은 말을 수도 없이 듣는 나는 어떻겠어? 됐어! 그냥 줘!"
하고 불만을 쏟아냈다.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지만, 그래도 가져가겠다는 딸의 말에, 얼른 노트 맨 앞에 삐뚤삐뚤 손글씨로 제목을 붙였다.
"엄마의 잔소리 노트. *년 *월 *일 **엄마"
손글씨로 제목까지 붙은 하늘색 조그만 노트를 받아 들고 휘리릭 넘겨보던 딸은 낯선 제목에 멈칫하며 한참 들여다봤다. 딸의 침묵을 놓치지 않고,
"꼭 읽어!"
하고 말하자, 딸은 그 노트를 백팩에 넣으며,
"침대 머리맡에 잘 둘께!"
하고 대답했다. 꽤 오래 쪼그리고 앉아서 그 노트를 쓴 나는
"놔두지만 말고, 읽어!"
하며 딸에게 다짐을 받다가, 딸의 단호한 표정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래, 머리맡에 둔다지 않는가!
나만 이런 지 궁금해진 나는 보통의 엄마 아빠들이 자식들에게 어떤 잔소리를 하는지, 자랄 때 부모에게 어떤 잔소리를 들었는지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남들도 다 똑같다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정작 더 많은 부모 자식 이야기를 들을수록, 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유 잔소리 진짜 멈추기 어렵다. 어느 아침, 딸은 일어나자마자 오래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 마시라 했었지만, 딸이 물만 마시고 밥은 왜 안 먹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밥 안 먹어?"
하고 또 묻는다.
이후 나는 주변 사람들의 부모 자식 이야기를 듣고 동의를 구해 일부를 적는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지인들은 이 글을 왜 쓰냐고 물었다. 그러게, 나는 왜 이 글을 쓸까? 지인들은 원래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어렵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적고, 글을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며, 감정에 묻혀 보이지 않던 내 생각과 마음을 다듬고, 더 이상 수정이 필요하지 않은 치유의 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