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고 있지 않아요. 행복하구요.
엄마의 잔소리 노트 |
by MeeyaChoi Nov 13. 2022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고, 알뜰살뜰 살림을 살던 엄마는 내내 온돌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개면서 살았지만, 두 아들에게만큼은 침대를 사주었다. 남편이 외국에 취직한 후, 느지막에 엄마의 침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큰 아들이 결혼하고, 둘째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자, 남편은 긴 외국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을 결정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엄마는 두 아들이 떠나고 넓어진 집에 침대를 들이기로 했다.
그 사이 작은 아들은 대학 앞의 원룸을 떠나서, 오래된 작은 빌라로 집을 옮겼다. 아들이 출근하고 없는 동안 엄마는 아들이 새로 이사한 집에 들러, 살짝 벌어진 창문 틈에 틈새막이를 붙이고, 집안을 꼼꼼히 살펴서 보수가 필요한 곳을 찾아 집주인에게 보수를 요청해두었다. 엄마 마음 같아서는 젊어서 돈 아끼느라 못써본 예쁜 살림살이를 아들에게 사주고 싶었지만, 꽤 오래 떨어져 지내는 동안, 훌쩍 성인이 된 아들은
“제가 알아서 할께요.”
하며, 엄마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래도 뭐든 해주고 싶은 엄마는 튼튼한 새 빨래건조대를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꽤 비싼 멋진 파스텔 톤의 침대용 이불 커버를 발견했다. 엄마는 오래된 아들의 이불을 바꿔주고 싶어서, 퇴근하는 아들을 이불 가게로 불러냈다. 엄마는 이 고운 이불 커버가 항알레르기 기능이 있는 아주 좋은 면 80 수라고 아들에게 열심히 설명해주니까, 아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 인터넷으로 이불 커버를 샀으니, 이불 속통만 사달라고 말했다. 실망한 엄마에게 아들은
“제가 산 커버가 면 80 수라면, 믿으시겠어요?’
하고 말했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나도 잘하고 있다는 아들의 단호한 표정에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나중에 도착한 아들의 면 80수 이불 커버에는 짙은 초록빛 산과 들, 높은 하늘 사진이 이불에 꽉 차도록 커다랗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이를 본 순간 엄마는 아들 앞에서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속으로 ‘내 아들 취향이 이랬나?’ 싶어 놀라고, 그동안 아들의 취향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사실에 거듭 놀랐다.
엄마는 본인의 침대를 찾기 위해서, 나무 프레임이 좋을지, 가죽 프레임이 좋을지 고민하고, 침대를 위로 벽에 붙일지, 옆으로 벽에 붙일지, 방 한가운데 둘지 고민을 거듭했다. 머리를 동쪽으로 둘지 남쪽으로 둘지 침대 방향을 고민하다가, 요즘 같은 아파트 시대에는 머리 방향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어느 풍수지리 유튜버의 이야기를 들은 후, 긴 고민을 끝내고 그냥 편한 대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문득 신혼의 큰 아들네 침대 위치와 방향이 생각난 엄마는 아들에게 방금 본 그 풍수지리 유튜브를 카톡으로 보냈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10초도 되지 않아서, 큰 아들의 답이 날아왔다.
“고민하고 있지 않아요. 행복하구요. 저걸로 불필요한 고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번개같은 아들의 답장 속도로 보건대, 아들은 엄마가 보낸 유튜브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엄마는 마음에 들던 그 고운 파스텔 톤의 이불 커버를 하나 장만하고, 마음에 드는 침대를 드디어 하나 샀다. 이미 성인이 된 두 아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살고 있으니, 엄마는 남은 엄마의 인생을 잘 설계해서 건강히 재미나게 살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모의 걱정과 달리, 자식은 멀쩡하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