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십니까?

엄마의 잔소리 노트 |

by MeeyaChoi

대학 때 만나 운 좋게 아직까지 헤어지지 않은 친구가, 한 동안 회사생활이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이다 보니, 대부분 나한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지라, 이리저리 맞장구치는데, 급기야 친구가

“행복하고 싶다.”

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친구 말에 내가 묵묵부답 대꾸하지 못하자, 친구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니는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 안 하냐?”
하고 물었다. 살짝 당황한 나는 더듬더듬 기억을 되돌리다가

“어…..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네.”

하고 대답했다. 친구는 깜짝 놀라며,

“뭐? 진짜?”

하고 되물었다. 나 스스로도 놀라며,

“응. 없어!”

하고 대답하고는 변명처럼

“대신, 나는 기분이 좋다, 싫다, 기쁘다, 슬프다,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

하고 덧붙였다. 친구는

“니는 행복하다는 거 대신 좋다고 하나 보네.”

하며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나는

“그러게…… 왠지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멀게 느껴져서……”

하고 말끝을 흐렸다.


대학을 막 졸업한 딸이

“이제 행복할 준비가 되어있다.”

고 말했다. 한참을 고민한 나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모두 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에서는 그 이유가 모두 제각각 다르다.”

를 이야기해주며, 예측되는 불행을 지혜롭게 피해 가길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날이 좋을 때면, 점심 식사 후 여러 명이 모여서 학교 주변을 산책한다. 어느 날, 나는 1시에 수업이 있다는 다른 선생님과 같이 바삐 걷다가, 앞서 걷고 있는 서너 명을 지나치게 되었다. 수업이 있어 먼저 간다는 우리 등 뒤로, 지난 해 다리를 다쳐 어렵사리 재활 중인 분이

“나도 저렇게 빨리 걷고 싶다.”

고 말했다.



스무 해 넘게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선생님 한 분을 우연히 만나, 같이 차를 타고 학교로 들어가게 되었다. 차로 기껏 10분 정도 거리를 오는 동안, 선생님은 그동안 편찮으셨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병원 무균실에서 한 달 지내는 동안, 창문 아래로 보이는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며,

"인생, 별 거 없으니, 가족들과 오손도손 사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일주일을 막 넘긴 어느 날, 단체 메일로 그 선생님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게 포위당한 연합군 33만 8000명의 탈출을 그린,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 중 한 장면이다.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병사가 일주일 동안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영국에 도착하자, 한 노인이 줄줄이 늘어선 병사들에게 담요 한 장씩을 건네주며,

“잘 왔어, 잘 왔어.” (Welcome, welcome.)

고 말했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의 지친 병사는 의아한 눈초리로 노인을 바라보며

“전 그냥 살아서 돌아왔을 뿐이예요. (I came back alive.)”

고 대꾸하자, 노인은 그 병사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걸로 됐어! (That’s enough!)”

고 대답했다.



빛과 그늘처럼 행복과 불행은 붙어 다니며, 한 몸통의 두 얼굴이다. 누구나 조금씩 행복하고, 또 조금씩 불행하다. 같은 순간에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이 세상 사람 수만큼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있고, 또 그만큼 불행해질 수 있는 이유가 있다.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기 어렵고, 불행의 조건을 다 피하기도 어렵다. 절대 빈곤이나 위험이 아니라면, 삶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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