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요.
엄마의 잔소리 노트 |
한 대학 연구실을 꽤 오래 방문한 적이 있다. 좁은 연구실 내 옆과 뒤에는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학생 둘이 실습을 나와 있었다. 연말 즈음부터 둘은 몇몇 회사에 취업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해외로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1년 휴학하며 이리저리 스펙도 쌓았다는 뒷자리 학생은 두 군데 합격했으나, 4년 동안 학교 다닌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했다는 옆자리 별이는 모두 떨어졌다. 뒷자리 학생이 먼저 짐 싸서 떠나자, 혼자 남은 별이는 나와 꽤 여러 날을 함께 보냈다. 어느 오후, 별이는
“저는 휴학도 안 해서 스펙도 없어요.”
하며 속상해했다. 마음 한 구석에 안쓰러움이 있던 내가
“대학 4년을 제대로 다니고, 4년 만에 졸업하는 게 제일 큰 스펙인데 다른 스펙이 필요한가요?”
하며 깜짝 놀라자, 별이는
“저는 해외여행도 한 번 못 가봤어요.”
하고 하소연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취직해서 돈 모으면, 휴가 때 놀러 가면 되죠. 휴학 안 했으니까, 남들보다 먼저 돈 벌고, 좋네요.”
웃으며 별이를 다독였더니, 갑자기 별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당황한 내가 왜 우냐고 물으니, 별이는
“저희 엄마도 똑같이 말씀하셨어요. 근데, 엄마라서 그렇게 말하는 줄 알고, 막 화냈어요.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요.”
하고 말했다.
며칠 뒤 만난 별이는 한결 밝은 얼굴로 엄마에게 우리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몇 주 뒤, 또 다른 회사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별이는 ‘별 스펙도 없는데 너무 당당한 거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 대화를 이야기했더니,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알려주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겨울 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날, 둘이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별이는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다.
부모 말에 대한 믿음은 평소 '잘 했네, 괜찮아' 처럼 소소하게 인정하고 위로하는 언어들이 쌓여서 이루어진다. 자식이 아주 힘들어할 때는 몸 안상하게 잘 해주면서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게 낫다. 부모의 말은 궁극적으로 자식에게 용기를 주려는 부모의 따뜻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에게 늘 예쁜 말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