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들른 보스턴 사이언스 뮤지엄에는 유리 상자 안에 병아리의 부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한 알은 약간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지만, 저걸 못깨나 싶게 아무리 기다려도 더 이상 벌어질 기미가 없었다. 바로 옆에서는 이미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한 마리가 온통 젖은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눈을 감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가 같이 껍질 안팎을 쪼며 도와야 한다는데, 어미 없이 혼자 힘으로 껍질을 깨느라 병아리는 기절할 만큼 힘들었던 모양이다.
데미안에서 헤세는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늘 기존 세상의 편견과 투쟁하며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딸이 투쟁해서 깨뜨려야 하는 낡은 껍데기가 되어있었다. 억울해진 내가 부숴지지 않으려고 버틸수록 딸의 저항은 더 거세졌다. 어쩌다 나는 딸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되었을까? 딸이 말했다, '엄마의 걱정이 내 제일 큰 걱정이야. 엄마가 걱정하면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자기 일만으로도 이미 힘들었던 딸은 '엄마의 불안까지 책임지고 싶지 않아' 하고 덧붙였다.
오래 가슴을 앓던 어느 날, 어린 딸이 처음 두 발 자전거 탈 때 뒤에서 잡아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걱정된다고 계속 붙잡고 있으면, 애가 자전거를 탈 수 없지. 이미 어른이 된 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인생의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고 있다. 혹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면 되고, 넘어져서 아픈 것도 다 인생이다. 내 걱정은 내 몫이며, 내가 불안하다고 딸 자전거에 올라탈 수 없다. 어미 닭은 괜히 지레짐작으로 엉뚱한 데를 쪼지 않고, 병아리가 톡톡 두드리는 곳을 조용히 살피며, 둘이 맞춰서 같은 데를 두드리는 게 상책이겠지.
다 알 거 같아도 막상 닥치면, 나는 늘 서툴다. 남편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편하게 받아줘' 하고, 먼저 겪은 친구는 '그냥 잘해줘' 했다. 울고 싶던 순간 만난 기진맥진한 병아리 한 마리가 내게 말했다. '누구 탓이 아니야! 그냥 힘들어서 그래, 힘들어서!' 병아리도 그리 고단한데, 하물며 사람이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일은 얼마나 빡센가?
부모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자식을 믿고 존중하며 놓아주어야, 자식이 알을 깨고 당당하게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