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괜찮아.

엄마의 잔소리 노트 |

by MeeyaChoi

통계학 여러 반을 묶어서 저녁에 한꺼번에 시험을 보던 어느 겨울 초입이었다. 책이며 노트며 다 들고 와서 봐도 되는 오픈 북 시험이었고, 대부분 문제가 과제에서 나오다 보니, 학생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바리바리 짊어지고 온 온갖 자료에 고개를 푹 빠뜨리고 정신없이 문제를 풀었다. 짧은 해가 떨어지고 온 천지가 깜깜해진 후에야 시험이 끝났고, 나는 답안지만 걷어서 연구실로 돌아왔다. 뒤쫓아와서 이런저런 질문하던 학생들도 다 돌아가고, 과목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답도 올리고 나니, 시간이 꽤 늦어졌다. 서둘러 모아 온 답안지를 가방에 넣고 막 방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누가 연구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 "네!"하고 대답하니, 머리가 산발이 된 별이가 손에 꽉 쥐고 오느라 마구 구겨진 종이를 들고 뛰어들어와서, 나를 보더니 와들와들 떨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 놀란 나는 우선 별이 등을 토닥이며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뛰어와서 숨차고 또 흑흑 우느라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 별이는

"샤워하고 한번 더 보려고 문제지를 꺼냈는데요... 답안지였어요..."

하고 간신히 말하고, 또 울었다. 그러니까, 제출해야 될 답안지를 들고 가고, 문제지를 답안지 대신 제출했다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지만, 본인이 너무 심각하므로 꾹 참고

"괜찮아, 괜찮아."

하며, 안심시켰다. 별이가 좀 잠잠해질 때를 기다려서, 나는 비슷한 내 옛날 얘기를 들려줬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는 시험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학생회관 앞 커다란 임시 게시판에 전체 시험시간표와 시험장소가 별도로 공지되었다. 그때만 해도 전화도 없고 이메일도 없던 때라서, 우리는 각자 알아서 따로따로 시험을 보러 갔다. 나도 도서관에 있다가 천문학 시험을 보러, 혼자 멀리 뚝 떨어진 강의실로 찾아갔다. 그런데, 강의실에는 온통 낯선 얼굴만 있었고, 알고 보니 딴 과목 시험이었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홀딱 맞으며, 넓은 학교를 가로질러 천문학과 사무실로 헐레벌떡 뛰어가서 물어보니, 조교 선생님이 시험이 끝났다고 말했다. 이럴 수가... 너무 좋아하는 과목인데 시험을 못 보다니, 눈물이 났다. 내 표정이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는지, 조교 선생님이 1학년 담당 교수님의 연구실을 알려주었다. 다시 뛰어서 교수님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두근두근 기다리니, "네!" 하는 대답이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에는 누가 교수님인지 누가 대학원생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두 여자가 앉아있었고, 그중 한 분이 우는 날 보더니 웃으시며, 옆 강의실에서 시험을 보라고 알려주셨다. 눈물을 닦고 강의실에 들어가니, 나처럼 늦어서 시험을 못 본 네 명의 다른 학생들이 있었다.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놓여서, 시험을 편안히 잘 봤다.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별이 얼굴에서는 눈물이 다 말랐고, 별이는 다 구겨진 답안지를 내게 주고 본인 문제지를 찾아들고 웃으며 기숙사로 돌아갔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실수를 깨닫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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