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미학

우리들의 수상록 |

by MeeyaChoi

감추면 남들이 못 볼 거 같지만,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에도 마음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말보다 마음을 다듬는 게 먼저이지 싶다. 침착한 상태에서 좋은 마음이 아니면, 자칫 허튼 말을 하느니 입을 다무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래도 가끔, 사실이나 진실을 따지거나 침묵하기보다 좀 거짓말하는 게 좋을 때도 있었다.

몇 년 전, 멀리 떨어져 사는 친정 식구들과 중간 즈음인 무주에서 만나, 며칠을 같이 보냈다. 맛있는 거도 먹고, 수다 떨다 삐지기도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안개 자욱한 덕유산 형제봉에도 올라갔다. 온 김에 꼭대기에 가려는데, 바로 앞도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야 돼요?"

하고 물으니,

"5분요! 다 왔어요!"

하고 대답했다. 대충 몇 분 지난 거 같은데도 봉우리가 안 나타나서, 내려오는 사람에게 또 물으니 또 5분 남았다고 대답했다. 뒤에서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가야 하냐고 물었고, 또 5분이라는 대답이 들렸다. 그렇게 가짜 같은 5분씩 여러 번 짙은 구름 속을 더듬더듬 걸으니, 드디어 꼭대기 표시가 있는 바위가 보였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바위에 서서 사진을 찍고 허무하게 내려오는 길에, 마주 올라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올라가야 하냐고 물었다. 나도 "5분요~!" 하고 대답했다. * 그 짧은 산길에 거짓말쟁이들이 많다.

수학은 배우기도 어렵고 가르치기도 어렵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이 졸지 않도록 집중시키는 건 늘 도전이다. 언젠가 TV 다큐에서 본 외국 고등학교 수업을 따라서, 수업이 끝날 즈음 나는 방금 가르친 예제와 비슷한 문제를 학생들에게 풀라 하고, 제자리에서 검사했다. 안 틀리고 잘 풀어오면, 학생 노트에 빨간 동그라미를 아주 크게 그리고,

"Excellent!!!"

를 써줬다.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쳐서 며칠 뒤에라도 풀어오면, "Good!"을 쓸까 잠시 망설이다가도 그냥 똑같이 "Excellent!!!"를 써줬다. 그랬더니, 큰 똥그라미와 "Excellent!!!"를 받으려고, 학생들이 안 졸고 수업이 끝나도 남아서 문제를 다 풀고 갔다. 그리고는 다 큰 학생들이 이런 거(?) 너무 오랜만이라며, 느낌표 하나 더 찍어달라, 별표도 그려달라, 스마일도 그려달라며, 기뻐했다. 한 달이 지나니, 학생들이 저 혼자 풀고 저 혼자 "Excellent!!!" 하더니, 옆 친구와 마주 보고 조잘거리며 웃었다.

세상 일이 다 '참 또는 거짓' 둘로만 구분되기 어려우며, 상황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한다. 솔직함을 무기처럼 내세우는 사람들이 일부 사실만 보고 왈가왈부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사람을 살리고 자신을 보호한다.


말과 행동이 같은지 잘 살펴야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상대가 말할 수 있도록 잘 듣고 적절히 질문하는 게 제일 큰 대화의 기술이다. 소소한 말로 웃음이 통하고 말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이 친구가 된다.


* 톨스토이(1828-1910)

* 여기 안개만 없으면, 진짜 짧은 길이다

* 이런 거? 동그라미, Excellent! 또는 쫌 거깃말 같은 인정과 칭찬 (*^^*)

* 칭찬의 부작용. 중간고사에서 만점 받은 애들이 너무 많아서, 상대평가 학점을 가르려고 부득이하게 기말고사를 어렵게 내서 줄세우는 바람에, 애들 얼굴이 하얘졌다. (ㅜ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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