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이유

우리들의 수상록 |

by MeeyaChoi

겸손을 현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겸손의 이유는 교적 분명하다.

'우주 같이 엄청난 주제를 다루기에 한 사람의 인생은 너무 짧고 부족하다'는 세네카의 말로, 세이건은 거대한 코스모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1977년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가 약 13년 동안 61억 km 정도 날아가서 찍은 사진에서, 지구는 까만 우주 속 잘 보이지도 않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그 흐릿한 점 안에 태평양도 있고, 우리나라도 있고, 우리 동네도 있고, 우리 집도 있고, 그리고 나도 있다. 점만 한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의 지름은 빛이 10만 년 날아가야 하는 거리이고, 그 속에 태양 같은 별이 약 5~6천억 개 있다. 이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1,700억 개 정도 뚝뚝 떨어져서 흩어져있다. 한 인간이 100살까지 산다 치고, 먹지도 자지도 않고 1초에 한 개씩 우리은하 속 태양 같은 별만 헤아려도 100살 x 365일 x 24시간 x 60분 x 60초 (개/초) = 3,153,600,000 개 밖에 못 세니까, 제일 오래 사는 사람도 우리은하의 별도 다 못 세고 죽는다.

고등학교 때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를 본 후로 드넓은 우주의 끝이 궁금하던 나를 번쩍 깨워준 수업이 있었다. 초록빛 검은 칠판 앞에서 왼손에 타들어가는 꽁초를 들고 오른손에 흰 분필을 든 집합론 교수님이 판서 한 자에 담배 한 모금 피우시며, 칠판에 1, 2, 3, 4, 5,...... 를 적고, 뻔한 자연수의 개수를 하나, 둘, 셋, 넷, 다섯,......세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저 끄트머리 마지막을 무한대∞로 표시하셨다. 이어서, 우리는 0과 1 사이, 소수점 아래 끝없이 촘한 수도 몇 개인지 셌다. 별과 별 사이에는 별이 없을 수 있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두 수 사이에 또 다른 수가 기 때문에, 하늘의 별보다 수가 훨씬 많다. 우리은하에 있는 별조차 다 셀 수 없으니까, 인간이 죽을 때까지 아무리 열심히 세도 0과 1 사이에 있는 수를 다 셀 수 없다.

굳이 수학과 과학으로 무한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도 사람이 겸손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죽을 때 십원 한 푼 들고 갔다는 사람을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으니, 돈 좀 있다고 우쭐할 이유도 없다. 네카의 말처럼, 우리 먼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조차도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할 것이므로, 좀 안다고 우쭐할 이유도 없다. 또 자기 자신만큼 약점이 많은 인간이 없다는 어떤 성현의 말 귀 기울이면, 누가 더 착한지 따질 이유조차 라진다. 돌아가신 할배 할매도 한때 젊으셨고, 나도 언젠가 무덤 속 할배 할매처럼 흙이 될 테니, 건강으로 우쭐할 이유가 없다. 기어이 남과 비교하자면, 갓난쟁이도 나보다 예쁘고 순수하며 더 오래 살 테니, 잘난 척할 이유가 없다. 거대한 우주의 긴 역사 앞에서 우리 모두 짧디 짧은 생을 살고 지나가는 인간이므로, 겸손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가 크다 한들, 내게는 내 삶이 가장 소중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며, 내 인생의 희노애락은 100% 내 몫이므로, 건강도 돈도 지식도 명예도 다 중요하다. 게다가 내 생각과 마음에 온 세상을 다 담을 수 있으니, 역설적으로 나는 온 세상 만큼 크다. 다만 겸손하면, 남도 나만큼 소중한 걸 깨닫고, 저절로 상대를 배려하게 된다. 톨스토이가 말하길, 사람이 스스로를 들어 올릴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을 칭찬할 수 없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자신을 내세울수록 본인 처지가 악화되므로, 겸손하면 평화가 온다 하더라.


우주에 비하면 한 인간은 점 안의 점보다 작으며, 그 보이지 않는 점 속에서 다른 사람도 나만큼 크다는 걸 인정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네카 (기원전 4년-기원후 65년) 고대 로마 스토아학파 철학자.

칼 세이건 (1934-1996) 코스모스(Cosmos),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세이건)의 저자.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 소설가, 철학자.

어느 성현 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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