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러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1년 반 일해서 모은 돈은 미국 대학원 한 학기만에 뭉텅이로 사라졌다. 다 이야기하자면 몇날며칠 밤낮도 모자랄 만큼 천신만고 끝에, 남은 돈이 바닥나기 직전 아슬아슬, 나는 옆 수학과에서 신입생 수학을 가르치는 조교 일을 시작하며 한시름을 덜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학기에 나는 우리 과에서 당뇨로 눈이 안 보이고 휠체어를 타시는 보러 선생님의 조교로 배정됐다.
첫 수업을 앞두고, 미리 잡아둔 약속 대로 학과 옆 주차장에 가니까, 짧은 은발 머리에 빼빼 마른 사모님이 기다리고 계셨고, 나를 보자마자 인사와 함께 차 트렁크에서 접힌 휠체어를 꺼내어 뒷문 바로 앞에 펴셨다. 사모님과 내가 뒷좌석의 보러 선생님을 마주 안고 끙끙거리며 휠체어에 앉히자마자, 사모님은 잔잔한 미소를 남기고 바로 떠나셨고, 나는 휠체어를 밀어 학과 건물에서 땅과 제일 가까운 반지하에 있는 선생님 연구실에 갔다. 좁은 연구실에서 마주 앉아 빤히 보게 된 50대 초반의 보러 선생님은 뼈가 툭툭 튀어나와 보일만큼 마르셨지만 배가 조금 나왔고, 듬성듬성 빠진 머리가 단정히 빗겨져 있었고, 무릎 아래로 끊겨버린 허벅지는 헐렁한 바지 끄트머리로 감싸져서 휠체어 밖으로 조금 튀어나와 있었으며, 오랜 시력상실 때문인지 눈꺼풀은 서로 붙은 듯 감겨있었다. 선생님이 외워오신 수업 내용을 쭈욱 말씀하시면 나는 노트에 받아 적었다. 한 차례 연습이 끝난 뒤, 내가 선생님의 휠체어를 밀어 와글와글한 학생들을 뚫고 제법 떨어진 같은 길 끝에 있는 강의실로 가서, 휠체어를 칠판 앞에 고정시키면 선생님은 강의를 시작하셨고, 나는 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칠판에 따라 적었다. 수업이 끝나고, 내가 다시 선생님을 주차장에 모시고 가서, 기다리고 계신 사모님과 함께 선생님을 차에 태운 뒤, 두 분이 떠나시면 내 일이 끝났다.
그밖에도 나는 따로 연습문제 풀이시간과 면담시간을 운영하고, 선생님이 수도 없이 껐다 켰다 되감기 하셨을 손때 묻은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선생님의 녹음을 듣고 시험지를 만들어 시험을 치느라 일이 많았다. 어느 날, 내 일이 채점만 하는 다른 조교 일보다 훨씬 많다고 불평하자, 조용히 듣던 보러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내가 다른 일을 찾지 않는 이상, 이미 시작된 이 상황이 바뀔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금방 후회하며 바로 선생님께 사과했다. 가끔 선생님은 샌드위치를 드셨고, 나는 선생님 옷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털며, 우리의 짝꿍 수업은 점점 손발이 잘 맞았고, 또 나는 가끔 선생님이 원하시는 새로 나온 논문 초록도 읽어드리며, 꽤 평화로운 날들이 지나갔다.
그날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던 키 큰 옥수수도 거의 다 베어지고, 끝없이 펼쳐진 텅 빈 들판이 길게 드러누워 저 멀리서 파란 하늘과 맞닿아있던, 추수감사절 연휴 중 하루였다. 근처 다른 학교에 다니던 남편 친구가 와서 같이 밥 해먹고 놀고 있는데, 좀처럼 울리지 않던 우리집 전화벨이 울렸다. 과 비서가 간밤에 보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했다. 그 뒤 우느라, 손님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이 없다. 며칠 뒤, 학과 건물에서 몇 걸음 떨어진 오래된 교회에서 장례식이 열렸고, 높은 천장 아래 뚜껑이 열린 관 속에 선생님이 주무시 듯 누워계셨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평소의 개 털 묻은 빛바래고 꾸깃한 티셔츠와는 딴판으로 꽤 낡은 자켓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지도 교수님과 학과 다른 교수님들 몇 분을 만났는데, 울고 있는 나를 보고 다들 웃으며 인사하셨다. 나 빼고 우는 사람이 없었다.
내 울음이 잦아들 즈음, 사모님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연락하셨다. 늘 주차장에서만 만났던 우리는 처음으로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두 분은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보러 선생님은 아주 젊은 나이에 1형 당뇨로 눈이 멀었고, 다리를 잘랐으며, 신장이식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물 마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딸이 하나 있는데, 혹시 당뇨가 올까봐 엄청 걱정했지만, 다행히 건강하다 하셨다. 죽음으로 보러 선생님의 오랜 고통과 고생이 끝났다 하시며, 사모님은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연구실에서 갖고 싶은 책을 1 순위로 가지라는 사모님의 허락을 받고, 그동안 해적판만 써본 나는 처음으로 비싸고 좋은 원판을 몇 권 가지게 되었고, 거기엔 보러 선생님의 싸인이 있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선생님 덕분에 잘 훈련된 나는 새로 코딩하는 일을 얻었다. 나는 보러 선생님의 업적을 1도 모르지만, 과에서는 해마다 유명한 통계학자를 초청해서 보러 선생님을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같이 해야만 해낼 수 있는 남다른 생이 있고, 그를 도와야 하는 또 남다른 생이 있다.
* Robert E Bohrer (1939-1993) 미국 통계학자
* 학비가 우리보다 몇 배로 비싼 미국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대학원생에게 조교 (TA, RA) 일을 주고, 대신 학비를 면제해 주고, 생활비를 지급한다. 조교에는 TA (Teaching Assistant 강의조교), RA (Research Assistant 연구조교) 두 종류가 있다. TA는 강의를 하거나, 연습문제 풀이 수업과 질문답변 시간(office hour)을 운영하거나, 과제와 시험지를 채점하거나, 강의 관련된 일을 한다. RA는 연구비 관련 실험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