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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yaChoi Sep 30. 2023

좋아하는 거 하고 싶어요.

정상인이십니다요! |

        규정에 따라 차례로 만났던 다른 학생들이 학사경고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눈물을 쏟았던 것과 달리, 별이는 고요함을 넘어 나를 보고 다. 본인의 상황과 겉도는 미소가 좀 뜬금없다 생각하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내게, 별이는 학과의 어떤 소모임에서 다른 학생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고, 거기서 밀려난 후 수업을 빠지기 시작했다고 담담하게 했다. 별이의 시간표는 전공 거의 없이 교양과목만 잔뜩이었고, 그마저도 별이는 대부분 결석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싶냐고 물으니까, 잠시 나를 빤히 보던 별이는 별 주저 없이 '좋아하는 거 하고 싶어요' 하고 대답했다.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쩔쩔매며 뭘 좋아하는지도 까먹고 사는 내게, 본인이 등록한 수업도 제대로 는 별이의 대답은 내가 바라던 이 아니었다. 순간, '세상에 누가 하고싶은 일만 하고 사냐?' 는 생각이 스쳤지만, 별이에게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다. 별이는 이런저런 걸 하고 싶어서, 학원에 등록해서 다니려 한다고 대답했다. 학교 대신 학원을 가겠다는 학생을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나는 별이를 달래기 보다 애들이 제일 싫어하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부모들이 좋아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밥해서 가족들 먹이고, 좋아서 매일 출근하는 줄 아냐, 부모들도 하기 싫고 힘들지만 참고 하는 거다. TV 생활의 달인 봐라, 달인들이 처음부터 그 일이 좋아시작했겠냐, 힘들어도 끊임없 하다 보니 그렇게 잘하게 되고, 결국 자부심을 갖게된 거다, 방청소부터 열심히 해라 등등... 별이는 조용히 웃었지만, 내 얼굴에서는 웃음끼가 사라졌다.  

        며칠 뒤, 학과 사무실로 별이 부모님이 뜻밖의 면담을 요청했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한참 망설이다가 약속을 잡았다. 저녁 시간의 까페는 조용해서, 낯선 부부가 누군가를 찾는 표정만으로도 별이 부모님인 걸 알 수 있었다. 두 분은 꽤 전문직 맞벌이였고, 별이는 어려서 매우 영특했는데 어쩌다 보니 방문을 닫고 안나온다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뒤에, 한참 주저하던 별이 아버님이 '바빠서 일주일에 한 번도 같이 밥먹기 어렵다.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부모님께서 별이 방청소부터 시키시라 하고, 학교에서도 학과 심부름이나 청소 같은 작은 일을 맡겨보겠다 했다.

        용기를 내서 도움을 구했던 아버님의 진솔함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 나는 학과 조교 선생님에게 별이를 매일 불러서 학과 사무실에 앉혀두고 잔심부름이나 청소를 시켜보라고 부탁해두었다. 다사다난한 학기가 바쁘게 흘러가는 중에도 과사무실에서 또박또박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별이를 발견하고, 은근히 놀란 나는 조교 선생님에게 별이가 어떠냐고 물었다. 조교 선생님은 별이가 빠짐없이 나와서, 청소도 열심히 하고, 심부름도 잘하고, 심리상담도 잘 다닌다고 대답했다. 밝고 친절했던 조교 선생님 마음에 쏙 든 별이는 다음 학기부터 정식으로 근로 장학생이 되어서, 학과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중요한 도우미가 되었고, 나는 별이를 잊었다.

        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쳤다. '잘 있냐?'는 인사에 별이는 '네! **과로 바꿨어요' 하고 대답했다. '잘했네! 부모님께서 기뻐하시겠다'는 내 말에, 별이는 부모님께서 많이 고마워하신다며 대신 인사를 전해줬다.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구덩이에 빠질 때가 있다. 하고 싶지 않더라도 매일 성실하게 먹고 자고 청소하고, 용기를 내어 힘든 처지를 밝히고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받으며 해야할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구덩이를 빠져나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에 한 발자국 더 가까와진다. 다만, 좋아하는 걸 잘하게 되거나 잘하는 걸 좋아하기까지, 노력과 시간이 좀 필요하다.


 * 부모님 면담요청은 매~~우 예외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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