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자신을 배신한 진보 패거리에도 초연한 조국의 절제력>
조국을 헐뜯는 데 골몰하는 인간들의 공통점은 열등감이다. 정의로움도 치열함도 순수함도 조국의 발뒤꿈치 먼지보다 못한 인간들이다. 보수 진영 못지않게 진보 진영에도 그런 류의 인간들이 꽤 많이 서식하고 있다. 걔 중엔 진보와 보수를 왔다 갔다 하며 이간질을 업으로 삼는 이** 같은 인간도 있다. 예전 같으면 걔들의 선전선동이 대중에게 잘 먹혔는데, 지금은 그게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다. 이미 시민들은 조중동, 보수 종편, 지상파 등 재래식 언론의 감시자이지 추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래식 언론, 재래식 지식인, 재래식 정치인들이 조국을 맹목적으로 비난할수록 조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뿐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정치인 조국의 초월적인 인내심이다. 보수 기득권 패거리를 향해서는 가장 날카로운 공격의 선봉장을 자처하면서도, 과거 자신을 난도질하고 버린 진보 패거리를 향해서는 특별한 증오심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대의명분에만 집중하는 비범한 모습은 나 같은 평범한 언론쟁이가 따라가지 못할 위대함인 것 같다. 조국이라고 왜 마음이 없겠고 감정이 없겠는가. 그것을 표출하지 않는 절제력이 무서울 지경이다. 그래서 정치인 조국에게서 많이 배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 아래 KBS는 진보 참칭 무리의 놀이터였다>
소위 진보 패밀리가 KBS를 통치하던 시기, 조국의 반의 반도 고통받지 않았으면서 나는 나를 괴롭힌 진보 참칭 부류들에게 참 많은 적개심을 품었던 것 같다. 지나 놓고 보니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데.
조금 부연하자면,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사장 두 명이 연이어 KBS를 통치하던 시기는 내게 악몽 같았다. 진보성향 노조와 협회가 주축이 돼 사장 축출 제작거부 투쟁이 한창이던 국면에서, 나를 비롯한 해외 특파원 약 20명은 투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KBS 창사 이래 특파원들의 파업 사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어찌해서 당시 사장은 해임됐다. (훗날 그 해임은 법원 판결에서 불법으로 확정됐다.)
귀국하자마자, 마치 해동된 냉동인간 혹은 시간여행자 같은 당혹감이 밀려왔다.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사장부터 주요 임원, 간부진들이 파업 주동세력으로 꽉 차 있었다. 회사 분위기는 마치 인민위원회 같았다. 진보와 거리가 멀거니와 박근혜 정권에서 보직의 호사를 누리던 인간들이 파업 이력을 바탕으로 진보의 탈을 쓰고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법률도 사규도 무시하고 파업전사들의 여론몰이로 인사와 정책이 좌우된다는 소문이 쫙 돌았다. 파업에 가담하지 않았던 간부급과 특파원 대부분은 사실상의 살생부나 다름없는 명단에 공개 게시됐다. 수뇌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극소수 위인들을 제외하고 이들 대부분은 문재인 정권 내내 한직을 떠돌거나 징계를 받거나 조직적 따돌림을 당했다. 나름 진보세력을 자처하던 나는 무사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회사 주류 세력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고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으면 인사권으로 응징한다는 소문은 단순히 괴담인 줄 알았다. 문재인 정권이 임명했던 사장과 그 부하들이 비정규직에 적대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장기고용 비정규직의 해고를 강요했다고 말하면, 진보진영에서는 그 말을 믿어줄까 안 믿어줄까?
<후배기자의 쌍욕, 방송대상, 그리고 디스크 파열까지>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까마득한 후배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무슨 말을 해도 대답 없이 노려보는 일이 종종 반복됐다. 회사 주도 세력의 판단에 이견이라도 조금 내면, "어떤 ㅅㄲ", "잘라버려도 그만" 따위의 폭언이 들렸다. 조금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고 까마득한 후배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며 때릴 듯이 달려드는 일도 있었다. 그때 나는 놀라서 도망갔다. 그리고 후회했다. '아, 지금은 하극상이 일상화된 인민위원회 시대인데, 괜히 그런 말을 해서, 살기등등 위대한 후배님의 심기를 건드렸구나.'
그 이후 나는 회사에서 말수가 줄었고 일만 미친 듯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밖에 없었다. 시사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건강과 영혼을 갈아 넣었다. 쉰 살을 훌쩍 넘겨 한국방송대상과 기독언론인상을 받았고 방송기자상을 받았다. 진보세력이 장악한 보도본부는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정신도 몸도 견디질 못했다. 허리 디스크가 파열됐다. 산재 신청은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분위기상 그게 받아들여질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것을 갖고 다툼을 벌이기도 기분이 더러웠다. 그냥 병가를 내고 내 돈을 들여 치료를 받고 요양을 했다. 치료와 회복에 두 달 치 월급을 웃도는 돈이 들었다.
구국의 강철대오, 언론민주투사들이 장악한 회사는 방송대상 수상 기자에게 창문 없는 골방 일자리를 마련해 줬다. 모욕감을 아니 느꼈다면 거짓말이다. 재량권이 있는 듯 없는 일. 그러나 이 상황이라도 감사하려 노력했다. 최소한 진보 참칭 패거리들로부터 폭언이나 모욕을 받는 일은 없었다.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정권으로, 그리고 다시 이재명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내겐 바뀐 것이 없었다. 그냥 노트북과 벽을 마주 보고 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회사는 여전히 정권이 임명한 사장과 그 사장이 임명한 친위세력의 놀이터이다. 머지않아, 윤석열 정권이 임명한 '파우치 사장'은 이재명 정권이 임명한 '친명팔이 사장'으로 바뀔 것이다. KBS사장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진보 참칭 무리의 KBS 귀환을 경계하며>
젊었을 때 나는 회사의 '키보드 워리어'였다. 모두들 숨죽이고 있거나 익명으로 투덜댈 때, 나는 내 이름을 걸고 공개적으로 사내 게시판에 의견을 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웬만해선 사내에 내 의견을 게시하지 않는다. '죽 쒀서 개 줬다'는 배신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때, 사내 게시판에 몇 번 글을 올리고, 기자 총회에서 의견을 냈다. 핵심은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두 번째 사장은 퇴진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진보역량을 하나로 모으지도 못했고 무능한 경영으로 회사 재정을 파탄 냈으며, 회사를 분열시키고,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지금도 그 판단은 그대로이다. 다만, 불법 논란이 뻔한 강제 축출보다는 자진 사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 사장은 결국 불법 해임됐다. 오래전 정연주 사장, 그 이후 고대영 사장이 그러했듯, 그 사람도 결국 법원에서 해임 무효 판결이 나왔다. 이래저래 비극이다.
'친문팔이'로 득세하던 위인들 상단수는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회사를 떠났다. 그중에는 KBS에서 쌓은 명성과 능력(?), 인맥을 바탕으로 회사 바깥에서 제2의 인생을 화려하게 살고 있는 위인들도 상당수 있다. 진작부터 정치판 언저리에서 기웃대며 지방선거를 준비한다는 위인들의 소식도 들린다. 예전 같으면 분노가 치솟았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조국이 자신을 괴롭힌 진보팔이 인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분은 더럽다. 이재명 정권 아래에서 사장은 누구, 본부장은 누구 따위의 지저분한 소문을 들었다. 예전처럼 분노는 없지만 기분이 더러운 것은 사실이다.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내 기분의 권리는 내게 있다. 바야흐로, KBS에도 정치의 계절이 다시 몰려오고 있다. 진보 코스프레하면서 집권 경쟁하는 꼴을 또 봐야 하나 싶어 기분이 꿀꿀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내 주제에 정치권에 줄 대기 따위는 소질이 없다. 비록 정치적 비위가 약해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인간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