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이름의 욕망 덩어리

-기레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by 나신하

방송기자로 밥벌이할 줄은 몰랐다. 원래 글쟁이를 하려고 국문과에 갔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의욕만 앞설 뿐 재능은 부족했다. 현타가 왔다. 안정된 밥벌이가 더 급했다. 기자로 출세하려고 목숨 건 친구 따라 공부하다가 얼떨결에 덜컥 방송기자가 됐다. 그것은 우연이었고 행운이었고 슬픔이었다. 국문과 대선배이던 대학 총장님은 진심으로 축하해 줬는데, 소설가인 학과 지도교수님은 "거기 가면 글 쓰기가 어려울 거야."라며 알 듯 모를 듯한 축하말을 건넸다. 예언처럼, 그 이후 내 글에는 온기가 거의 사라지고 가시 같은 비판만 남았다.


제도권 기자들 세계는 별천지였다.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에 절어 있었다. 편법과 부도덕으로 점철된 특혜를 당연하게 여겼다. 신입기자 환영 회식에서 "사회적 약자를 살피는 마음 따뜻한 기자가 되겠다."는 소감을 밝히자, 사회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 치고,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몸 바쳐 일하라 "는 것이었다. 얼마뒤, 갑자기 어디선가 "머리 박아, ㅅㄲ들아!"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애송이들은 이 게 뭔가 싶어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갑자기 보도국장이 "그러면 내가 박지, 뭐" 하면서 식탁에 머리를 박았다. 선배들의 욕설이 난무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랬다. 나는 중간에 도망쳤는데, 동기 기자가 술병에 머리를 맞았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때는 그러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저널리즘 원칙은 '개나 줘 버리라'라는 분위기였고, 남들보다 튀는 보도에 혈안이 됐고 그런 경쟁을 독려했고 그런 경쟁을 당연히 체화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도까지 취재기자가 돋보이기 위한 수단이 되기 일쑤였다. 상명하복 검사집단 같은 피라미드 구조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기자에겐 정서적•물리적 폭력이 가해졌다. 특히, 입사 후 상당 기간 사회부는 주먹질과 발길질, 손찌검과 욕설, 따돌림이 은근히 난무하는 정글 같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유력 실세기자가 후배 여기자에게 재떨이를 던졌는데 구두경고로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장에 있던 기자가 내게 말했다. "맞을 뻔한 걔가 먼저 잘못했어요." 비겁함이 생존전략이던 때였다.


사회부 회식 때는 폭행이 언제 벌어질까 조마조마하여 중간에 도망가기 일쑤였다. 사회부 애송이 기자 때였다. 사이코 같은 폭력 부장을 피해 다닌다고 피해 다녔는데 사무실에서 기습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나는 너무 서러워서 새벽에 만취하여 전봇대를 끌어안고 울었다. 선배들은 "그냥 네가 참고 넘어가라."라고 다그쳤고 나는 고립됐다. 그 당시 갖가지 폭력은 수뇌부의 묵인 속에 꽤 긴 시간 대물림됐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리적 폭력은 교묘한 언어적 폭력과 모멸감을 주는 구조적 폭력으로 대체돼 갔다. 그리고 앞장서서 유무형의 폭력을 휘두르거나 방조했던 기자들이 수뇌부의 총애를 받으며 시경캡, 앵커, 팀장, 부장, 특파원, 국장, 본부장으로 승승장구하는 꼴을 지켜봤다. 게 중엔 '진보의 기수'가 된 인간도 있고 사장 후보로 거론된 인간도 있다. 폭력의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아무 일 없는 듯 웃으며 폭탄주를 들고 건배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괴기스럽다. 우리는 모두 사이코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눈치를 보는 부끄러운 기자였다. 사람대접받기 위해 특종 잡기에 몸부림쳤다. 기자정신? 그것은 점차 희박해갔다. 예수쟁이 자존심 때문에 아첨하지도 못했고 극렬하게 저항하지도 못했다. 가끔 발끈하여 저항했지만 보복성 불이익 속에 곧바로 후회하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면 나 같은 인간이 특파원 지국장을 한 게 기적이고 이변이었다. 모두 KBS 기준으로 돌이켜 본 옛이야기이다. 타사 사례는 구체적으로 하지 않겠다.


돌이켜보면, 언론계 전체를 통틀어 봐도, 바람직한 저널리즘의 실현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투쟁한 기자는 극소수였다. 내 기억 속에 기자정신 충만했던 기자들이 없지는 않다. 고인이 된 MBC 이용마 기자 등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부분 방송사 재직 중 고난의 길을 걸은 기자들이다. 소설, 드라마, 영화 따위에 등장하는 정의로운 기자는 정말 보기 드물었다. 보고 듣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자 대부분은 기득권, 권력, 명성에 대한 갈망, 그리고 기계적 직업의식 사이에서 배회하는 족속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나 역시 그 범주에 가까울 것 같다.


작금에 기자집단이 기레기라고 욕먹는 데는 유서 깊은 까닭이 있는 셈이다. 우리는 과거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서 진정한 반성도 성찰도 하지 않았다. 언론개혁 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고 언론개혁에 앞장서는 정치인들을 집단린치하는 행태는 그래서 부끄러운 짓이다. 우리 기레기들이 반성문부터 써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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