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개는 천재다』(브라이언 헤어 외)

by 나신하

<할아버지 한 마리와 살다>

늙은 시츄와 함께 살고 있다. 15살을 넘겼으니, 개로서는 할아버지뻘이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반려동물’이란 말이 낯설던 2010년 가을, 유기견 문제를 취재하면서 감수성이 말랑말랑해졌다. 지인의 소개로 2개월 된 강아지를 만났다. 작고 예쁘고 앙증맞은 강아지를 상상했는데 눈앞에는 크고 못생긴 털북숭이 강아지가 나타났다. 낯선 사람 앞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모습에 마음이 찡해졌다. 개를 좋아했지만 돌봄에는 서툴러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병치레가 잦았고 몸 여러 곳에 선천적 장애가 있었다. 여러 차례 위기를 넘겼다. 한 번에 수백만 원씩 병원비를 쓰기도 했다. 그래도 생명은 돈보다 소중했다. 심방 나온 전도사가 강아지를 보더니 “우상이니 내다 버리라.”라고 말했다. 문제의 전도사를 준엄하게 꾸짖고 상종을 안 하게 됐다. 예수쟁이라고 모두 그렇게 정신 나간 것은 아니다. 친하게 지내던 교회 장로는 유기견 시츄를 치료하기 위해 500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다.

회사 안팎의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에게 지쳐 있을 때, 말만 번지르르한 교회 인간보다

말 안 하는 강아지 한 마리가 더 큰 위로를 줬다. 공놀이를 좋아하던 명랑 강아지는 그렇게 일본 주재원 시절도 함께 보내고 하면서 어느새 모든 것이 귀찮은 할아버지 개가 됐다. 마지못해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할 때 잠깐 깨어 있고 하루 종일 자는 것이 일이다. 그래도 밤늦게 퇴근하면 눈을 반쯤 감은 상태에서 꼬리를 흔들며 어기적어기적 마중 나온다. 시츄는 식탐 많고 머리는 나쁘고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길러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주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예민하게 알아채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의사 표현과 감정 표현이 명확하고 내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아픔을 잘 표현하지 않다 보니 수시로 병원을 방문해 이것저것 검진을 하고 있다. 아직 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개의 조상, 늑대가 인간을 선택했다?>

개는 인간을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이다. 포유동물 대부분이 인간의 번성으로 개체수가 급감했지만 개는 그 반대이다. 가정의 반려견뿐만 아니라 장애인 보조견, 군견, 경찰견, 세관견, 인명구조견, 자연보호견, 심지어 빈대타지견, 암탐지견, 치료견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선천적 천재성과 적응력, 지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동물의 천재성은 뛰어난 지적 능력과 자연발생적인 추론 능력으로 구성된다. 추론 능력은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시행착오 없이 해결하는 능력이다.

개의 천재성을 말하려면, 개가 인간과 함께 살게 된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사람이 늑대를 길들여 사냥에 이용했다는 가설이 오랫동안 유력했다. 그런데 원시 인류는 이미 늑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성공적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일부 늑대가 먹이 사냥과 영역 다툼의 험난한 야생 생활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접근했다는 가설이 더 설득력 있다. 성공률 낮은 사냥보다는 인간이 남긴 음식을 먹는 편이 편하다. 온순한 늑대들이 인간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사냥을 돕고 경비견 노릇을 하며 안정된 먹거리와 잠자리를 확보하게 된 것이 개들의 조상이 됐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과 고고학적 유물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는 개의 신비한 능력>

개가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그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밝혀졌다. 개는 당연히 다른 개들의 의도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늑대이던 시절부터 유래한 특성이다. 야생 동물은 다른 동물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개, 늑대, 침팬지, 그리고 여우에 대한 연구 성과는 덜 공격적인 야생 동물이 인간의 의도를 알아채고 스스로를 가축화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가축화된 동물의 생존과 번식은 야생의 거친 경쟁보다 유리하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유아 수준에는 한참 못 비치지만, 개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물건의 이름을 수백 개씩 외우고, 학습 과정에서 배제와 추론이라는 고차원적 인지 능력을 발휘한다. 각기 다른 물건이 포함된 범주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인간이 물건에 붙인 이름의 기호적 성격까지 이해한다. 또한 각기 다른 발성으로 다양한 의미를 표현할 줄 안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청자가 이 신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시각 신호와 음성 신호를 조절할 줄 안다.

개는 자아를 인식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거울 실험이 유명하다.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짓거나 거울 뒤를 탐색하는 것으로 미뤄 거울 속의 자신을 다른 개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물론 개가 거울 실험에 흥미를 못 느낄 뿐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다른 개들의 소변 냄새와 자신의 소변 냄새를 구별하거나 자신의 크기를 기준으로 다른 개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자아를 인식한다는 증거일까? 개가 사람처럼 자아를 인식한다는 증거도 없고 인식하지 못한다는 증거도 없다. 개의 지적 능력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불충분하다.


<탁월한 모방 능력에 유추 해석 능력까지>

개의 의사소통 능력은 사회적 생활에 적합하다. 무리와 소통하며 무리의 힘에 의지할 줄 안다. 사람과 소통하며 사람의 힘에 의지할 줄 안다. 다른 개들이나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무엇을 모방하고 무엇을 모방하지 않을지도 결정한다.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적 추론을 하기도 한다. 늑대처럼 영역 보호 본능이 있지만 치명적 공격은 드물다. 무리끼리 연합하고 싸움 뒤에 화해도 하고 싸움과 무관한 개가 패자를 위로하기도 한다. 지배적인 개보다 좋아하는 개를 따르고 관대한 인간을 선호한다. 언제 협력할지를 알고 좋은 파트너와 나쁜 파트너를 구별할 줄 안다.

우리는 어느 견종은 머리가 좋고 어느 견종은 머리가 나쁘다고 평가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견종 대부분은 인간의 필요와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장난기, 호기심, 추적 경향성, 사회성, 공격성 등 다섯 가지의 성격 특성으로 개를 분류하기도 하지만, 이는 지적 능력의 우열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사람의 의도에 맞게 반응하는 능력을 머리의 좋고 나쁨으로 예단하는 것은 아닐까? 너무 영리하여 복종하지 않는 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들은 주인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주인이 바라는 것을 무시하고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 실험 관찰 결과, 개와 인간의 유대는 아이와 부모의 유대와 비슷하다. 아이가 부모에게 항상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개는 선천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반려견을 키우면 노인, 독신녀, 아이들, 남성 동성애자 등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 물론 이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려동물을 보살피면, 보편적으로 상실감과 나쁜 감정,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동물매개치료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고 환자의 회복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보고 있다. 그러면 반려견 입장에서는 어떨까?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개들이 사람 따라 반응하는 태도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성에게, 노인보다는 젊은 사람에게 훨씬 친근하게 대한다. 왜 그럴까? 개들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스트레스를 덜 느끼는데, 이는 호르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태도 문제이다. 남성이 개를 쓰다듬는 태도가 더 거칠고 투박한 것이 원인이다. 남성을 잘 가르쳐서 여성처럼 부드럽게 쓰다듬도록 하면 개의 스트레스가 훨씬 감소함을 알 수 있다. 결국 개의 스트레스는 개 탓이 아니라 사람 탓이고, 남자 탓이다.

산책 중에 만나는 개들 중에는 다른 개들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친근하게 구는 녀석들이 꽤 있다. 개 주인은 으레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개는 사람을 더 좋아해요.” 개가 인간에게 느끼는 친화성은 타고난 것이다. 사람이 부드럽게 쓰다듬으면 개의 뇌는 평온함과 다정함을 느끼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심지어 동족보다 사람과 함께 있기를 더 좋아한다. 평생 따르고 충성하는 대가로 개들은 음식, 사랑이 넘치는 가족, 따뜻한 집을 얻는다. 이 거래의 완성은 개가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다. 개는 천재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창궐하는 가짜 ‘개 전문가’를 경계해야>

인터넷에는 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출처도 근거도 믿을 수 없는 가짜 정보가 넘쳐난다. 그래서 가급적 연구 이력을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저서 원전을 찾아보는 편이다. 이를테면, 미국 듀크대학교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과 교수 ‘브라이언 헤어’와 듀크대 진화인류학과 연구원 ‘버네사 우즈’의 저서 『개는 천재다』. 위에 언급한 내용은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2022년 국내에 번역 소개됐는데, 연구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고 쉽고 설득력 있게 나와 있다. 일부 내용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애견인이라면 꼭 일독하시기를 권한다. 남의 연구를 출처도 밝히지 않고 도용하거나 인공지능으로 짜깁기한 유튜브 표절 영상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와 재미, 그리고 신뢰성 높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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