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에 60명 정도의 학생들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드디어 주변에 신설 초등학교가 생겼고, 한 반에 42명이라는 쾌적한 인원으로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 시절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42명이 얼마나 정답고 소소한 인원인지 알 것이다.
우리 반에 '심'씨 성을 가진 남학생이 있었다.
심 OO은 하루라도 친구들이나 선생님을 웃기지 않으면 그날의 덕업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실없는 우스갯소리를 하든, 몸개그를 하든, 하다못해 닭소리, 개소리, 온갖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서라도 친구들을 웃겨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였다.
심 OO은 짓궂은 장난으로 여자아이들을 놀리거나 울리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 지저분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친구들과 선생님을 웃겼다.
가령 입으로 방귀소리를 내어 방귀를 뀐척하고는 자기가 뀐 방귀를 친구들에게 발사하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 여자아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남자아이들은 웃기다고 책상을 두드리며 깔깔댔다.
심 OO의 별명은 자연스럽게 "방구쟁이 심방구"가 되었고, 수업 중 어디서 방귀냄새가 나면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심방구는 그게 싫지 않다는 듯 또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그 상황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어떻게든 친구들과 선생님을 웃기는 것이 학교에 오는 이유이자 목표인 듯 보였다.
그 시절 선생님들은 잘못한 것들에 대해 종종 벌이나 벌칙을 주었는데 심방구가 특히 선호하는 벌은 엉덩이로 이름 쓰기였다.
심방구는 아주 크~~~ 고 정성스럽게 엉덩이로 자기 이름을 썼고 마지막에 점까지 꾸~욱 눌러 찍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부끄러운 척하며 자음모음이 붙어버린 듯 빠르게 후루룩 날려썼다.
반 아이들은 심방구 엉덩이의 움직임에 따라 속도가 느릴땐 "시~~~~ 임, 바~~~~ 앙, 구~~~~ 우" 라고 했다가 속도가 빠를땐 "심! 방! 구!"라고 호닥닥 외쳤다.
빨랐다가 느렸다가 하는 반전 있는 장단에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나는 심방구가 빠르게 이름을 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갈 때는 뭔가 아쉬운 마음마저 들어 입맛을 다셨다.
심방구의 엄마는 아들의 별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색의 학교체육복보다는 청바지에 단정한 줄무늬 티나 셔츠를 입혀 학교에 보내시며 아들의 차림에 꽤나 신경을 쓰셨던 것 같다.
반면 심방구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깔끔함과는 최대한 거리가 먼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심방구가 친구들을 불러 모으더니 우유에 밥을 말았다.
이렇게 먹으면 고소하고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했는데 친구들은 이상하고 느끼해 보인다며 모두 거절하고 심방구가 먹는 걸 구경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우리 반을 웃음바다로 만들던 친구가 문득 생각난 것은 딸과 함께 파스타집을 갔을 때였다.
나는 꾸덕한 크림소스에 졸여진 리조또를 특히 좋아한다.
리조또를 먹다가 문득 우유에 밥 말아먹었던 그 친구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방구쟁이 심 OO.
아직까지 티비에서 못 본 걸 보면 이름을 날린 개그맨이 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디선가 주변에 기분 좋은 웃음을 선사하는 이가 되어 살고 있을 것 같다.
리조또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그 시절.
시대를 앞서간 입맛.... 혹은 이국적인 맛의 선구자...
쯤 되는 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