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 설레던 깻잎조림의 냄새

by 유명

어릴 적 우리 집은 골목길의 끝집이었다.

골목이라 하기엔 넓고 짧은 길이었는데, 양쪽으로 마주 보는 양옥집이 네 채가 있었고 차가 진입할 수 있을 정도의 폭이었다.

주택 담벼락에 쪼그리고 붙어 앉아 소꿉놀이를 했다.

숨바꼭질을 할 때는 4채의 집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숨기도 했다.

한여름 볕이 아무리 덥고 따가워도 나의 놀이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놀다가 땀이 많이 나면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물 한잔 마시고 다시 나와 놀았다.


집 마당의 반은 시멘트 바닥이었고, 반은 화단이었다.

여름날 호스로 나무에 물을 주다가 동생들과 물장난을 하기도 했다. 옷을 입은 동생들에게 호스로 물을 쏘아 쫄딱 젖게 만들고, 또 동생들도 나에게 물을 쏘아 옷과 머리와 온몸이 젖은 채로 놀기도 했다. 옷을 입고 물을 맞는 것은 정말로 즐거웠다. 생각해 보면 옷이 물에 젖으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는 것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해가 짧도록 뛰어놀다 보면 어디선가 밥 하는 냄새가 났고, 그건 슬슬 놀이를 정리하고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밥 하는 냄새와 함께 쇠고깃국 끓이는 냄새, 된장찌개 냄새, 고등어 굽는 냄새, 계란찜 냄새, 꽁치 조림의 냄새들이 뒤섞여서 나기 시작했다.

놀이도 막바지에 접어들었건만 마음을 쉽게 접지 못하고 조금만 조금만을 되뇌다 보면 드디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아~~~~~"


‘진‘은 우리 집 딸 셋의 이름 끝자에 쓰이는 돌림자이다.

우리가 집에 있을 때 진아~라고 부르면 보통 첫째인 나를 부르는 소리였고, 셋다 밖에 있을 때 진아~는 셋다 빨리 들어오라는 소리였다.

친구들과 내일 또 놀자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반찬 냄새 중 우리 집 건 뭘까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을 때 기대보다 별 특별한 것이 없으면 살짝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곤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지금만큼 달달한 고열량의 간식을 많이 먹을 때도 아니었고, 밖에서 뛰어놀다 보면 뭐든 맛있었다.


여름철에 내가 특히 좋아하던 반찬은 깻잎조림이었다.

깻잎에 고춧가루를 넣고 약간 짭조름하게 졸인 반찬이었다.

가끔 멸치를 같이 넣고 조리면 그 냄새는 코를 자극하다 못해 침이 고였다.


다른 집들은 깻잎조림을 잘 안 해 먹은 건지 아니면 우리 집이 자주 먹은 건지 모르겠지만, 놀다가 깻잎조림의 냄새가 나면 저건 분명 우리 집일 거야 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거의 적중을 했다.

그때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결혼을 하고 요리를 하면서 깻잎조림을 몇 번이나 해보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분명 엄마가 얘기해 준 대로 요리를 했건만 맛이 없이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깻잎을 한 장 한 장 깨끗이 씻는 것이 은근 손이 많이 가는데 비해 맛이 기대만큼 안 나서 이제는 깻잎조림을 잘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름에 깻잎이 많이 나올 때면 깻잎을 사고 싶어 손이 달싹거린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나물을 무치다 간을 보라고 하면 만화를 보다가도,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르며 춤을 추다가도, 좋아하는 레고를 하다가도 콩콩콩콩 달려와 맛을 보곤 했다.

한 입 먹고는 아이들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와 억양으로

“음~~ 참기름 냄새~~ 냠냠 너무 맛있다~”고 하며 조그만 주먹으로 엄지 척 따봉을 해주고 하던걸 마저 하러 콩콩콩콩 뛰어가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우리 얘들은 엄마의 어떤 요리냄새에 마음이 설렐까 생각해 보면 요즘은 고기 굽는 냄새나 라면 냄새 정도에만 마음이 설레하는 것 같다.


밖에서 뛰어놀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집에 들어가며 이 깻잎조림 냄새가 우리 집 냄새일까 설레던 마음을 알까?


keyword
이전 01화홍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