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소중했다.
내 기쁨이 제일 중요했고,
내 슬픔이 제일 아팠다.
내 미래가 제일 중요했고,
남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은 시간낭비를 하는 것 같았다.
이기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내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
써도 행복하기만 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과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를 볼 때마다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많은 순간들에 행복했다.
내가 저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좋았다.
‘우리 사랑 포에버’ 일 줄 알았는데
아들이 사춘기가 되었다.
엄마의 관심은
지나친 참견이 되었고,
엄마의 공감은
억지스러운 부담이 되었다.
호기심이라는 핑계로
학교 화장실에서 구름과자를 피우다 걸리지를 않나,
수업시간에 학교밖을 나가지를 않나.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들로
학교에 불려 가기도 여러 번.
결혼도 안 하신 아가씨 선생님이 아이의 행동에 속상해하고 힘들어 하시며 울기까지 하셨다.
별보다 더 반짝이던
내 아이가 어쩌다 저리 된 건지.
어디서부터 저렇게 된 건지,
내가 뭘 잘못했길래 저렇게 된 건지.
저런 행동들의 끝은 어디일지.
매일이 걱정과 슬픔과 불안과 공포였다.
그래도 남에게 거칠거나
나쁜 행동을 하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는
사실 하나만 붙잡고 버텼다.
그래도 시간은 갔다.
약 2년의 시간 동안
치열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다.
눈물과 고성, 거부와 단절,
가출과 회유.
그럼에도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너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과 사랑한다는 말밖에 없었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아들에게 말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하는 아들 옆에 앉아 네발은 어쩜 이렇게 보드랍고 예쁘냐며 두손으로
아들의 발을 꼭꼭 주물러 준다.
좋아하는 과일을 미리 잘라 통에 담아 둔다.
그리고 떡볶이를 하기 위해 쌀떡을 산다.
밀떡을 좋아하는 나는
아들이 좋아하는 쌀떡을 산다.
끈적하게 늘어지지 않도록
냄비에 다시 한번 데치는 수고를 기꺼이 하면서.
내게 사랑은 쌀떡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