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운동신경이 있다거나 유연하다는 소리는 가끔 들어봤다.
순발력과 지구력, 파워는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다.
대근육을 이용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중간은 간다.
그런데 전생에 바느질하다 한 맺혀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한자리에 앉아 손으로 뭔가를 조물딱 거리는 건 당최 체질에 맞지 않았다.
예전에 아는 언니의 권유로 애견미용을 배운 적이 있다.
하루하루 배우면서 느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자괴감뿐이었다.
강아지의 발톱을 깎기에 나는 겁이 너무 많았다.
강아지 피부에 클리퍼를 바짝 갖다 대고 털을 깎기에는 나는 겁이 심하게 많았다.
선생님이 강아지 오른쪽 몸통이나 오른쪽 얼굴을 깎아주면, 그걸 보고 왼쪽을 비슷한 형태로 따라 깎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저주받은 미적 감각인지, 공간감각이 왜곡된 것인지 아무리 애를 써도 양쪽이 비슷해지지 않았다. 애를 쓰며 깎아봐도 양쪽의 모양이 다르거나 크기가 달라 결국은 화가 나거나 웃음이 터지거나 강아지에게 미안해졌다.
양쪽이 빼딱한 강아지를 캐이지 안에 넣을 때마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애견미용을 배우면서 나는 내가 "심하게 손재주가 없는 타입"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고, 인정했으며, 받아들였다.
양쪽의 균형을 맞추거나, 위아래를 동그스름하게 깎거나,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손재주가 부족했던 나는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 미련 없이 포기했고 후회조차 남지 않았다.
배움을 시작하는 것 자체는 쉽다.
하지만 그것을 잘 해내는 것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조금 더 빨리 고수의 경지로 갈 수 있다.
잘하지 못하더라고 스스로 재미 있으면 그 또한 괜찮다.
하지만 결과가 확연히 보이는 것을 잘 못하면서도 즐기기란 쉽지가 않다.
잘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해주는 것도 그것이 자신에게 타격감이 없을 때나 괜찮은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지 글을 쓰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으면서도 라이킷이나 구독자 알림을 보면 심장이 떨린다.
구독자수가 세 자릿수가 되는 사람만 봐도 기가 죽고 주눅이 든다.
심지어 천명이 넘는 구독자가 있는 작가를 보면 넘을 수 없는 경지인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작가의 한 편의 글이라도 진정성 있게 읽고, 나 역시 한 편의 글이라도 진정성 있게 쓰고 싶다.
구독자수에 연연해하지 말고 스스로 즐기자고 다짐해 보면서.
P.S.
연연하지 않으려 하지만 나의 글에 라이킷을 해주고 구독을 해주신 구독자님들께는 큰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