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속 자연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면 자연이 감상이나 즐거움의 대상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정도를 지나면서부터입니다. 그 이전의 자연은 일종의 두려움의 대상이거나 성서 속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공간정도로 여겨졌지요. 상징적 의미로 여겨지던 그림 속 자연이 서서히 감상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 화가 시모네 마르티니 (Simone Martini, 1284-1344)가 <페트라르카의 버질 Petrarch’s Virgil>이라는 필사본 첫 페이지에 그린 로마시인 버질(BC 70-BC 19)의 모습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이 그림에서 버질은 자연 풍경을 감상하며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홀로 시를 쓰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요. 이는 풍경화라는 장르의 도래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로 서양문화에서 자연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탐구와 여행의 목적으로 인지하여 그려진 첫 작품이라 평가됩니다.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h, 1304-1374)가 수십 년에 걸쳐 집대성한 이 필사본에는 버질의 여러 목가시들 뿐만 아니라 호라티우스(Horace, BC 65-8)나 스타니우스(Statius, C45-96)와 같은 다른 고전작가들의 작품 또한 실려있습니다. 동시대 문학인이었던 단테가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한 것과는 달리 페트라르카는 자연을 감상과 즐거운 탐구의 대상으로 여겼고 그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시선은 마르티니의 그림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성모자상>, 1326. Image Sourc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시모네 마르티니는 그의 스승이었던 두치오(Duccio , Duccio di Buoninsegna, 1255-1319)와 함께 14세기 시에나 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모자상Madonna and Child>에서 보시는 봐와 같이 그의 화려한 채색과 유려한 곡선구사법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주류를 이루던 비잔틴 미술의 추상적이며 각지고 딱딱한 느낌의 작품과 구별되었는데요. 아마도 마르티니의 이런 정서적인 표현법이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즐기고 감상의 대상인 풍경으로 그려내는데 적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페트라르카 역시 그의 화법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마르티니의 다른 작품인 <몬테마시 포위의 귀도리치오 다 포글리아노 Guidoriccio da Fogliano at the Siege of Montemassi>를 한번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마르티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그 진위여부에 대한 논의는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시에나 푸블리코 궁전에 위치한 벽화로 몬테마시 포위 공격을 지휘한 시에나 군 사령관 귀도리치오 다 푸글리아노의 초상과 그 뒤로 펼쳐진 풍경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물론 작품의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페트라르카의 버질>과 비교해 보면 이 시대 자연풍경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하늘과 황량하고 메마른 지형은 버질이 감상하는 자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참고문헌: Kenneth Clark, Landscape into Art (Boston: Beacon Press,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