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또래에게 납치당했던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기다.

by 겨울나무

(친구를 고발할 목적이 아닌 저의 심리를 찾아가는 수단으로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 친구의 이름은 B양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핸드폰 없던 시절이에요.


11살의 나 : 11살 여름쯤이었던 거 같다. 같이 놀기로 해서 만났는지, 길 가다가 만났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한 5시쯤? 운동기구가 있는 놀이터에서

장면은 흐릿하지만 B양이 했던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 : "나 집에 안 가면 혼나..."

B양 : "몇 시까지 가야하는데?"

나 : "해지기 전에 안 들어가면 진짜 혼나..."

B양 : "아직 5시잖아. 해지려면 한참 남았어." (지금 보면 애가 똑똑했네요. 저는 그냥 막연히 최대한 혼나지 않게 일찍 일찍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해가 언제 지는 지 몰라도 한 번도 6시를 넘겨서 집에 들어간 적이 없었거든요. 11살인데 해가 언제 지는지 몰랐냐고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건 넘어가 주세요...)

나 : "나 그런데 6시 넘어서 들어간 적이 없는데..."

B앙 : (무슨 나무막대기를 주워들면서) "너 나랑 놀기 싫어서 그래? 맞아야 정신 차릴래?"

그 친구가 막대기를 쥔 이후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계속 그 친구를 따라갔다. 시장까지 따라들어가니, 자기 집까지 데려왔다. 집에서도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같이 있다가, 진짜 7시쯤 해가 지고 나서 자기 집 전화기로 전화하자면서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목소리가 확 변하면서 존댓말로 나랑 같이 있다고 위치를 알려줬다. 나중에 듣고 보니 친언니(한 살 위)가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공포의 2시간에서 벗어나 엄마랑 친언니가 데릴러 왔었는데, 막 이야기를 털어놓으니까, 친언니는 "안 그래보이던데? 존댓말 쓰고 말투 착하던데?" 이랬다. 그래... 언니도 겨우 12살이었는데 뭐...

그러고 나중에 전편에 나온 A양이랑 B양이랑 나를 사이에 두고 자기 꺼라고, 심지어 A양은 울었다. A양은 같은 반도 아니면서... 나를 그렇게 잡았다. 그러다가 두 반이 같이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어느새 둘이 친해져서 잘 지냈다. 참 이제와서 보면 별것도 아닌 일로 감정싸움하던 나이대 같다.


20살의 나 : (친언니랑 대화하다가 기억났어요.) 와 나 생각해보니까 협박, 납치, 감금 당했었네...ㅋㅋㅋㅋㅋㅋㅋ 뭐 2시간 이었지만, 그 때 진짜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진짜 바보였던 것도 있고, 그 친구도 진짜 이상했어. 혹시 집에서 좀 엄하게 키웠나? 뭘 보고 자랐길래... 11살짜리가 또래 데리고 그럴 수가 있지? 막 그 애한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안타까워... 내 기억 속에는 아직 11살이어서 그런가?


지금의 나 : 이제 진짜 흐릿흐릿하다. 위에 글은 메모장에서 꺼내옮겨 적은 거다. 그리고 또 보니 이제 혐오의 감정은 아예 없고, '내 인생에 이런 일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깔깔 웃으면서 옮겨 적었다.


다음편은 조금 길었던 지속적인 폭력에 관한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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