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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A 다녀왔습니다.

떠나온 후에야 느끼는 감동, 베트남항공 호치민 경유

by 담빛 레오


모처럼 긴 휴가를 낼 수 있어 베트남항공으로 호치민을 경유하여 푸꾸옥에서 며칠 여행한 후 다시 베트남항공 프리애드온을 이용해 국내선으로 하노이로 이동한 후 사파를 다녀왔다.

인천-호치민경유 푸꾸옥(4시간 경유)-하노이-사파(슬리핑버스 이동)-하노이-인천 순서이다. 휴가가 길어서 가능한 일정이었다. 인천-푸꾸옥 구간은 호치민 공항을 경유해서 가는데 호치민 공항에서 4시간이나 여유가 있었다. 호치민 공항 국제선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수화물을 찾은 후 국내선으로 이동해 탑승해야 하는데 면세점에서 찾은 화장품들을 들고 호치민 공항의 악명높은 긴 입국심사 줄을 서기 싫어서 여행사를 통해 패스트트랙을 구입했다. 패스트트랙은 아주 효과적이라 입국심사를 받고 나오는데까지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푸꾸옥에서 오후 1시에 출발한 하노이행 비행기는 2시간 후에 하노이 공항에 착륙했고 미리 예매해둔 사오비엣 버스를 타기 위해 지정된 게이트에 가서 봉고차에 탑승한 후 15분쯤 달려 사오비엣 사무소에 도착했다. 버스 예약시간은 5시였는데 실제로 버스가 6시 다 되어 도착했기 때문에 다들 떠나고 직원들만 남은 버스정류소에서 거의 2시간쯤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구글 검색에 평이 괜찮은 바로 옆 식당에서 분짜를 먹었는데 현지인처럼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분짜를 먹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다만 노상 수돗가 바가지에 담긴 젓가락들을 보니 위생에 대해서는 좀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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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짜를 먹다가 식당에서 사는 고양이 사진을 찍었다. 코카콜라 상자를 깔아놓은 곳이 제 자리인양 유유히 걸어가 앉은 폼이 귀여웠다.

시내에서 승객을 태우고 온 샤오비엣 버스가 6시쯤 출발했는데 듣던 후기와 달리 도로 꿀렁임잉 심해 멀미가 날 것 같아 얼른 미리 준비해온 멀미약을 먹었다. 2시간쯤 달려 휴게소에 20여분 쉰 후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라오까이에 있는 화물집하장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도 사파에 도착하기까지 버스는 두 세차례 어딘가에 멈춰 화물을 내려주고 다시 출발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또 잠이 들었는지 누가 깨워서 일어나보니 사파에 도착했다고 내리라는 것이었다. 잠이 덜 깬 채 내려서 멍 하니 있으니 사무실에서 누가 나와서 알 수 없는 베트남어로 구글 지도를 열어 보이길래 호텔 위치를 알려달라는 것 같아서 찍었더니 승합차에 태워 금새 호텔에 데려다줬다. 처음 해 보는 슬리핑버스 경험이었는데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은 경험이다. 우선 버스가 관광객만 태우는 용도가 아니고 자꾸 어딘가에 멈춰서 물건을 실고 내리기를 하기때문에 시간상 비효율적이다. 누워서 가는 편리함은 있지만 제대로 앉기는 또 어려운 애매한 자세가 된다. 버스기사는 옆에 앉은 버스회사 직원과 끊임없이 베트남어로 대화를 하거나 통화를 하거나 경적을 울려대서 잠을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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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의 숙소 - M gallery 호텔

사파의 숙소는 판시판 올라가는 푸니쿨라 탑승하는 썬플라자 건물과 같이 있는 M Gallery 호텔인데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고 하는데 인테리어에 엄청나게 투자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한밤중에 도착한 호텔 복도에서는 자꾸 마네킹과 사람 그림이 나타나서 좀 무서웠다고 할까? 아무도 없는 곳에 델루나호텔같은 느낌이었다. 복도를 지나갈 때도 사람을 거의 마주칠 일이 없어서 가끔은 이 큰 호텔에 우리만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사파의 1월은 비수기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눈을 뜬 아침에 방 커튼을 젖히고 테라스를 나갔더니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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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그냥 구름 위에 있는거다. 판시판을 올라가지 않아도 사파는 그냥 구름 위 도시였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판시판의 맑은 풍경을 볼수 있다는 말에 눈 뜨자마자 맑은 날씨를 확인한 우리는 곧장 준비를 마치고 판시판 케이블카를 타러 나섰다.

푸니쿨라를 먼저 탄 후에 내려서 케이블카를 다시 타는데 15분정도 되는 긴 거리를 타야하고 날씨는 맑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강하게 불어 케이블카가 흔들리는 바람에 심장이 쫄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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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에서 내렸더니 정말 바람이 세게 불어 뭔가를 잡지 않으면 날아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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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리 맑은데 그렇게 바람이 세게 불었다는 게 마치 거짓말같다. 판시판 정상을 오르려면 다시 한 번 푸니쿨라를 타야하는데 바람이 너무 세기도 하고 동행이 숨이 가빠서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에 푸니쿨라 탑승은 포기하고 하산하는 케이블카를 탔다. 항상 그렇듯이 돌아오는 케이블카는 별로 무섭지 않다.

판시판을 내려와 잠시 휴식을 한 후 한국인에게 평이 좋다는 마사지샵을 찾아 발마사지 60분을 선택했다. 마사지사는 정말 성의껏 근육을 풀어주었는데 과했는지 아프기도했고 돌아와서 보니 아까 문질러댔던 미간에 살짝 푸른 멍같은게 비쳐서 사파에서는 더 이상 마사지는 받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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깟깟 마을 내려가는 입구에서 마신 에그커피


사파를 여행한 1월 23~26일은 베트남의 뗏 기간이 겹쳐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맛집들은 문을 많이 닫았다. 유명한 콩 카페도 두 군데 모두 문을 닫아 헛걸음을했는데 크게 아쉽지 않았던 이유는 사파의 1월 날씨는 쌀쌀해서 콩카페에서 유명하다는 코코넛스무디커피가 그리 간절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까페마다 메뉴에 있었던 에그커피가 오히려 사파의 1월에는 어울리는 맛이었다. 에그커피는 거품만 떠서 마시면 아주 약간 계란의 비릿함이 느껴지지만 아래쪽에 있는 커피와 잘 섞어 마시면 달콤한 커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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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플라자에서 조금 걸어나가면 사파광장이 나오는데 광장에선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나와 춤을 추면서 구걸을 한다. 누군가는 이 광경을 아이들이 공연을 한다고 표현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어린아이들에게 강제로 춤을 추게 하고 앞에 있는 바구니에 돈을 넣게 하는 구걸로 보였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서서 춤추는 시늉을 하다 관광객이 앞을 지나가면 동작을 크게 하면서 억지웃음까지 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

게다가 이 아이들 앞엔 엄마인지 누군지 모를 젊은 여자들이 지키고 앉아있다. 모르겠다. 이게 이 아이들의 삶일수도 있지만 이런 광경은 사파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은 깟깟마을을 다녀왔다. 아침에는 전날보다 안개가 더 자욱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안개가 걷히고 맑은 날이 되었다. 깟깟마을은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인도가 구분이 되어 있지 않고 오토바이와 자동차, 버기가 지나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지나가는 버기를 흥정해서 5만동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버기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마을을 다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길이 안좋아서 더이상 못간다고 내리라고 했고 내리자마자 주위에 오토바이들이 둘러싸면서 타고가라고 호객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10여분쯤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구글평점이 높은 전통복장 대여점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옷을 빌려입고 누구나 찍었다는 옥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수십 장 찍은 후 깟깟마을을 들어갔다. 마을은 계단으로 된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걸어내려가야 하는데 실제로 마을에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 오히려 내려가는 계단 한가운데에 주인처럼 누워서 자는 강아지들을 보는 게 재미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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깟깟마을


계단을 한참 걸어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내려갔던 방향으로 다시 조금 올라오면 또 오토바이들이 타고가라고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내려온 반대방향으로 올라가면 버기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어찌되었건 걸어 올라가는 것보다는 뭐라도 타고 돌아가는걸 추천한다. 사파 내에서는 어딜 가든 대부분 5만동으로 흥정이 된다. 그랩은 잘 잡히지 않아서 한 번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이동거리가 너무 짧아서 그랩이 시내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았다.

풍향고에 나왔던 기념품점을 들러서 구경을 하다보니 생각지 않은 지출이 생겼다.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거리를 걷다보니 풍향고에 나왔던 호텔과 레스토랑 기념품점이 50미터 내에 다 있었다. 그만큼 사파거리는 좁다.

사파의 대부분의 기념품점은 물건이 다 비슷하고 조잡한데 이 가게만 소장가치가 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만큼 가격도 비싼 편이긴 하다. 여기서 전통복장에 어울릴법한 은귀걸이와 캐시미어 머플러를 구입해서 여행 내내 잘 하고 다녔다.

이렇게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슬리핑버스를 타고 하노이를 가야 하는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까지 안개가 며칠째 계속 자욱했다는데 우리가 여행한 이틀 날씨가 좋다가 떠나려니 비가 오는 거였다. 날씨요정을 만난다는게 이런 경우구나 하면서 우리의 행운을 축하하며 다음 날 하노이를 향해 다시 긴 시간동안 슬리핑버스를 탔다.

사파에 있는 동안은 특별한 느낌이 없었는데 사파를 떠나고 나니 그곳에 있었던 시간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발 아래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며 흐몽족 의상을 입은 어린아이들과 계단에서 물건을 내놓고 판매하는 흐몽족 할머니들까지, 맛이 있으면서도 뭔가 빠진것 같은 맛이 나는 맛집의 음식들까지......

내 남은 생에서 다시 사파를 가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인지 더욱 기억이 아름다워지는 곳이었다.

다만 사파 가는 차편은 좀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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