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행정실 앞 화단에 새끼고양이 다섯마리가 나타났다. 검고 진한 줄무늬가 있는 토종 우리나라 어미고양이에 새끼들은 두 마리는 검정, 세 마리는 연한 줄무늬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고양이를 발견한 우리(나를 포함한 직원 셋)는 심심하던 차에 신나는 발견을 한 듯 고양이들을 보러 다가갔고 어미고양이는 얼른 새끼들을 데리고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새끼고양이들이 건물 옆쪽 인적이 더 드문 화단에 나와서 놀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냐옹씨와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고양이들은 화단과 맞닿은 높이 1미터쯤 되는 벽 너머에 있는 아파트 재활용 수집창고에 숨어지내다가 볕이 좋을때 벽을 폴짝 뛰어넘어 우리 학교 화단으로 와서 놀고 가는 것이었다. 고양이털 알러지때문에 고양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새끼들은 어떤 동물이든 귀여운가보다. 어떤 날 새끼고양이들은 어미 고양이 젖을 빨기도 했고 개구쟁이 아이처럼 작은 동백나무 기둥을 앞발로 잡고 한바퀴 빙 돌며 놀기도 했다. 집에있는 강아지 사료를 출근길에 가져와서 작은 그릇에 담아 화단 벽 아래 두면 다섯 중 용감한 녀석부터 벽을 폴짝 뛰어넘어 사료를 먹는다. 그리고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까지... 어미고양이는 사료를 결코 먼저 먹는 일이 없다. 새끼들이 사료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새끼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하루는 사료를 놓아주다가 새끼를 건드리려는줄 오해한 모양인지 어미고양이에게 순식간에 손을 할퀴었는데 상처가 꽤 깊고 오래갔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자 어미고양이가 새끼들을 독립시켰는지 새끼중 한마리만 남기고 네 마리가 하룻밤 새에 사라져버렸다. 아직 작은 아기고양이들인데 매몰차게 쫓아내버렸다는 생각을 하니 새끼들만 사료를 먹이던 모성애를 가진 어미고양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자 어미고양이마저 어디로 갔는지 나타나질 않았다. 혹시 돌아왔는지 고양이가 있던 화단쪽을 가서 살펴보기도 했다. 서운했다. 출근하면 매일같이 먹이를 챙겨주고 고양이가 좋아하는 츄르와 캔사료까지 먹이며 정이 들었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리다니!
그렇게 또 두어달이 지나 고양이를 잊어갈 무렵 바쁜 회계 마감 업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창쪽을 보니 사라졌던 어미고양이가 창가에 올라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창가에 나타난 고양이에게 사료를 슬쩍 내밀어줬더니 매일 아침 출근하면 창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를 기다린것은 아니고 먹이를 기다린 거겠지?
그때부터인지 아침 출근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오늘은 고양이가 와 있으려나? 내가 먼저 출근해서 먹이를 챙겨주고 싶은데... 생각하며 행정실을 들어서면 창틀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머리를 빼꼼히 들어 나를 바라본다. '어서 츄르를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민화에 나오는 토종 고양이처럼 생긴 어미고양이에게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고민하다 냐옹씨로 부르기로 했다.
냐옹씨는 어느날부터 배가 점점 커지는 것 같더니 며칠 나타나지 않다가 어느 날 배가 홀쪽해지고 수척해져서 나타났다. 혼자서 어디선가 새끼를 낳고 온 모양이었다. 새끼들을 보고싶어 전에 지내던 화단쪽을 가서 살펴보았지만 이번엔 다른곳에 숨겨두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당직선생님이 가끔 저녁무렵에 새끼들이 나온다며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신 걸로 새끼들이 잘 지내고 있을거라 짐작할 뿐이다. 젖을 물리는 동안은 특별히 사료양도 늘려 줬다.
우리 사무실 창틀에 냐옹씨가 올라와 사료를 먹고 있는 모습을 다른 동료들도 보게 되어 이제 더 이상 냐옹씨는 우리 학교에서 비밀이 아니다. 어떤 동료는 냐옹씨에게 먹이를 주지 말고 중성화를 시켜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아직도 우리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는 냐옹씨를 어떻게 잡아서 중성화를 시킬수 있겠어? 강제로 어찌 잡아서 중성화를 한다면 냐옹씨가 행복해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릴 다시 찾아와준 준 냐옹씨가 배고프지 않도록 사료를 제공하는 것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