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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by 담빛 레오

이상기온으로 봄 기온이 예년보다 낮고 바람이 많이 부는 탓일까? 올해 봄은 잠들었던 내 열정이 이성의 틀을 부수게 했다.

바람을 들이려고 열어둔 주방 뒤쪽 창 밖으로 흰나비 한 쌍이 바람을 타고 놀고 있는 휴일 낮.

어제저녁부터 있었던 몸살기에 잠을 푹 자지 못한탓인지 몸에 힘이 생기지 않아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있다. 정신은 몽롱하고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어제 일이었다. 14년 만에 그를 만나는 절차는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회사 메신저 창에 이름을 검색하고 열었다 닫았다, '잘 지내?'란 세 글자를 썼다 지웠다 수차례 반복한 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엔터키를 눌렀다.

그렇게 간단했다. 그런데 14년이란 시간이 필요한 거였다.

잠시 후에 그의 답은 '건강은 어떠신가요?'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어 오늘 만나자고 했다. 산자락 아래 자리 잡아 한적한 레스토랑에 먼저 앉아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면접시험 차례를 기다리는 때처럼 두근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가 바로 나를 볼 수 있도록 문에서 가까운 자리를 잡았다. 문밖에서 마스크를 쓴 남자가 걸어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마스크를 벗었다. 목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그가 마스크를 쓰고 들어오는 바람에 한 번에 알아보지를 못했다.

그는 내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해서 나를 안심시켰고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내내 그는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예전에도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나?'

아닌 것 같았다. 세월의 흐름에 단절된 우리의 어색함을 덜어보려는 그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동안 골프를 많이 했고 캠핑에 빠지기도 했고 어깨 인대 수술을 받느라 몇 달간 고생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게 재밌게 지냈고 몇 해 전부터 승진시험 준비를 해서 작년에 승진을 한 이야기도 했다. 나는 음식이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저 끝없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예전의 그 얼굴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기만 했다. 음식을 덜다가 포크를 떨어뜨리기도 나이프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 앞에선 늘 속을 훤히 들여다보이고 만다.


식사를 마치고 짧은 산책 중에 그가 물었다.

"그래도 재밌게 잘 지냈죠?"

-"그냥 조용히 지냈어."

나는 여행을 많이 하고 골프도 하고 캠핑도 하고 또 많이 아프기도 했다는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냥 바보같이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네가 없는데 무슨 재미가 있었겠냐는 듯이.

그렇게 두 시간이 안 되는 만남을 마치고 그는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기나긴 시간 동안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걸 깨닫지 못한 것인지 알면서 인정하지 못한 것인지 , 아니면 이별과정에서 그에게 받은 상처를 용서하지 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는 그런 존재였다. 나를 헤어날 수 없게 만들어놓고 그렇게 떠나간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생각날 때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다시는 만나서 안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를 다시 만나게 된 지금 그 헤어짐은 결국 나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하게 된 것일까?

우리는 옛날 그 젊은 때처럼 다시 불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불타오르는 사랑의 끝이란 전처럼 아프디 아픈 이별과 기나긴 치유의 상처만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도 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살아온 날이 살 날보다 많은 지금 또 그 긴 시간을 상처로 남긴 채 살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 그를 잃고 미워하면서 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지켜가며 나이 들어가는 그와 내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이 주말에 그가 연락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자꾸 전화기를 열어 보게 된다. 자꾸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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