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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by 타우마제인

<11. 종교>


갑자기 종교 얘기냐고 할지는 모르지만, 끝까지 읽어 보시길.


나는 무신론자다.

모태신앙은 불교였지만, 여름 불교 학교에서 반야심경을 뭔 뜻인지도 모르고 외웠으며, 뜻 없는 행위라 생각하며 부처님께 절을 했다.

사업이 망하자 교회와 성당, 점집도 다녔다.

온갖 철학 책도 봤다.


하지만, 종교와 책에서도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없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젠장,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안 죽을 거 아니야.

나는 스스로 나를 죽이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흙수저이기에 어렸을 때부터 평탄하지 않았던 내 삶에 대해 연민도 있었고,

그저 살만하니 사업도 쫄딱 망해 40대 빈털터리 레즈비언. 믿었던 연인은 떠나가고

공황장애에 우울증까지....


모두 다 나보고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상에 희망도 없고, 의지도 없고. 제대로 인간실격이다.

그렇다. 이번 생은 폭망한 것이다.


그러다 봄쯤이었나, 문득 출근하기 위해 덕수궁 거리를 걷다 시립미술관 앞에 있는 파릇한 잔디를 보게 됐다.


예쁘다.... 좀 더 위를 올려보니 나뭇가지에 있는 까치도 보였다.

예쁘다.


되는 것 하나 없는 일상이라도, 아름다움을 느끼며 행복해할 수 있는 것들은 무수히 많긴 하다.

단지 그것들이 내 빚을 갚아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잔디가 파릇파릇한 게 예쁘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영국 코미디언이 말했던가.

그때만큼은 나에게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무수히 많다.

죽고 싶은데, 떡볶이는 먹고 싶지 않은가.


내가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계속 찾아다녔다.

본능적으로 살고 싶어서 찾으러 다녔다.



계속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제는 찾은 것 같다.

자살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그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무수히 많은 철학 책과, 종교에서도 나는 찾지 못했다.


아니 사실, 모든 것에 다 있던 건데,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단지 현실을 보는 내 관점을 바꿔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만 있다면,

자살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 그냥 남들처럼 사는 거라 말할 것이다.

건강하고, 적당히 돈 잘 벌고, 안정된 직업 있고, 중형 아파트에, 자동차에 예금한 돈 얼마.

가끔 해외여행,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는 여유.

딱 그 정도면 행복할 것 같다고 다들 바랄 것이다.


이게 진정한 행복의 조건일까?


물론, 조건일 수 있다. 그 정도만 되면 진짜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욕구가 다 채워지면 다시 이왕이면 강남 중형 아파트에서 살고 싶고, 외제차를 타고 싶을 것이라고.


계속 무언가를 바라며,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구멍 난 항아리처럼 그 욕망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다.


또한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젠가(내일이 될지 내년이 될지는 모르지만)는 다 죽는다


죽기 전에 저런 게 아까워서 못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할 것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살아있어서 행복을 느꼈던 많은 순간에 감사했고, 죽기 전에 평온하며, 스스로를 잘 돌보며 부끄럽지 않게 죽고 싶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자.

하루 24시간 중에 내가 행복해하는 시간은 대체 얼마일까?

어떤 미래를 위해 우리는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걸까?


단지 우리는 현재만을 살아갈 뿐인데.

아픈 과거도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미래가 오기 전에 죽음과 병이 내 미래를 덮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을 느끼는 일이 아닐까.


나의 온 존재. 우주와 같은 내 존재가 행복을 느끼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째가 돼야 하지는 않을까.


오로지 중요한 것만 하기에도 모자란 게 인생이다.

그냥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어느덧 나는 40대 중반이 되었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나도 내 나이를 처음 살아 본다.


50 대 60대 70대가 되더라도 언제나 어색할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자살도 무의미하다.

그렇지 않아도 인간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예쁘나 못생기나 다들 나이 들고 죽는다.



난 현 세상의 부조리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시간이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

부조리는 너무 기이하고 복잡해서 욕은 할 수 있어도 그 이상은 내게는 무리다.


오로지 현재 나의 행복에만 전념하겠다고 다짐한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멀리 보면 세상은 비극의 극치이다.

인간은 아직도 기아와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트럼프나 푸틴 같은 독재자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전 세계 기아와 싸워서 이길 힘도, 독재자들을 물리칠 힘도 내겐 없다.


역사도 승자의 역사일 뿐이다.


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힘쓰는 분들도 많다.

타인을 위해 희생을 하는 일은 고결한 일이다.


좀 더 세상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고 내가 패배자일까?


멀리 보면 비극인 부조리의 극치인 세상은 그러면 살만한 게 못 되는 걸까?


나는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됐다.

삶의 의미를 알게 됐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됐다.


나는 패배자도 아닐뿐더러, 인생은 살 만한 것이다.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살 만하고, 내게 주어진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패배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나의 삶은 의미 있다.


나는 바란다.


나 자신이 현재 지금 이 자리에서 있다는 것에 신비로움을 느끼고 종종 행복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더 원한다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방법을 알려줘 자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만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다.

단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예의 있고 매너 있게 대하자.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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