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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by 타우마제인

<12. 수호신, 알아차림, 명상>


인간은 대단한 존재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대단한 존재도 아니기에 권태롭지 않기 위해 욕망하고, 맘대로 되지 않아 화도 많고, 힘든 과거도 잘 잊지 못한다.


그 부수한 쳇바퀴 안에서 더러워진 나를 혐오하고, 타인도 나와 같다는 생각에

타인도 혐오한다.


마침내 이번 사피엔스는 실패작이라 생각하고 차라리 지구가 멸망하길 희망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인간에겐 동료 인간이 필요하고, 내가 전적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도 필요하고

일관되게 나아가기 위한 소명도 필요하다.


언제나 내가 인간에게 도움을 받기에, 나도 인간을 도와야 한다.

그 대상이 다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난 무신론자다.

하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무신론자가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겐 나만의 수호신이 있다.

그 수호신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고 나만을 지켜줄 것이다.


수호신이 지켜 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에겐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지고 용기를 낼 수 있다.


설령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더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막아주었을 수도 있고

미래의 좋은 일을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지하고 거만한 내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고통을 겪으면서 성숙해진다.


내가 지금 빈털터리가 아니었다면, 내가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알고 살았을 것이다.


이런 깨우침을 준 나만의 신에게 감사드린다.


아주 긴 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피곤해서 앉아서 쉬기도 하고, 잠도 잤다.



현재 나는 가진 것 없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는 행복하다.

지금 죽더라도 이제 나를 돌보며 자랑스럽게 죽을 수 있다.


내가 만약 지금까지 수많은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이런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과거는 의미 있다.

내 수호신이 나를 지켜준 덕분이다.


현재를 판단하는 건 오로지 나의 태도에 달려 있다.

내 인생이 누가 보기에는 고통밖에 없는 인생이라 생각할지라도

나는 더 나쁜 일이 일어날 뻔했지만, 이 정도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냥 삶이라는 말 위에 타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 말이 아주 온순하진 않았어도,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을 보아 그렇게 포악하지도 않았다.


고통뿐인 삶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오직 생각의 관점뿐이다.

생각의 관점을 돌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생각이란 놈은 망아지 같아서 조금만 방심하면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를 반복한다.


몸의 근육을 만들 듯이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매 순간, 나의 기분, 생각을 알아채야 한다. 각성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이기심들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내 삶이 그냥 주어진 대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해야 행복한지, 무얼 해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선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살기 위해 의식적으로 힘써야 한다.


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명상이라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다가 많은 걸 가지게 됐다가 잃어버렸다.

다시 원점이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죽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는 죽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패배자가 아니다.

그건, 남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판단해야 한다.


만약 다른 세상이 있어 죽은 후에 내가 심판을 당할 때, 그에게 나를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세상은 존재하는 그 자체가 신비로운 것이다.

고통뿐인 삶이라고 해도 고통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에서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다.

명품 백, 외제차가 없더라도 그것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그 물건들은 무가치하다.


행복을 느끼는데 필요한 돈이 몇십억이라고 할 때,

그것들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따져보며 하나씩 빼보자.


이렇게 생각한다면, 인생에서 필요한 돈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욕망과 광고에 휩쓸려 내게 진정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사기 위해, 인싸가 되기 위해 공황장애까지 느껴가며 부조리한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

이런 나 자신에 측은함을 느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제일 평온한 곳에 나를 두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음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만을 보자.


내 경험상 모든 걸 잃었을 때, 한 잔의 커피가 얼마나 소중한지,

단출하고 작지만, 깨끗한 방과 몇 가지 안 되는 옷들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예전에 처음 좋은 차와 아파트를 샀을 때만큼이나 값지고 소중하다.


욕망, 미욕, 화, 미망이 고통의 근원이다.


이것들을 다스리는데, 가장 좋은 것이 있다.

바로 명상이다.


화가 날 때, 그 순간이 지나가면 화가 조금은 풀리듯

명상을 하면 내 생각, 행동 하나하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우리는 그저 세상에 놓인 대로 루틴 하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살아간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성욕을 느끼면 섹스를 한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타인에게 조롱을 당하면 수치심에 소심하게라도 복수를 한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부스러진다.


어쩌면 인간은 살아있는 내내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뒤척이다 잠시 깼을 때, 그제야 잠깐씩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또한 동물이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상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고 어떤 상황에서 내가 행동했는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폭주하는 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욕망, 미혹, 화, 미망을 적절히 다스려야 마음이 평온하다.


온 세상을 가졌다 해도, 우주를 갖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추라고 말한 쇼펜하우어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해답은 내려주지 않고 그저 정의만 내렸던 사람.

그래서 인간의 존재를 하락시킨 사람.

음식을 가득 차려놓은 식탁에 앉아서 자살을 논했다는 쇼펜하우어를 나는 자신이 비참한 죄인인 줄 모르는 허영에 찬 외로운 늙은이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욕망과 권태를 이기려면 각성을 해야 한다.

깨어나야 한다.

남과 끝없이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명상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자.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 행복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일 당장 죽음을 맞이한다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자.


아직 어린 나이에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이 어떤 마음일지 알기에 가슴 깊은 곳에서 아픔을 느낀다.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고, 관심을 갖고 서로를 돌봐주자.


내가 아픈 만큼 타인도 아파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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