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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16. 2024

01_살쾡이 박은달

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죽음의 게임, 술래          

게임의 규칙을 알고 싶은가?

규칙은 쉽다

꼭꼭 숨어라, 술래에게 잡히기 전에.

그리고 보물을 찾아라. 

모든 건 머리와 운에 달렸다.

혹 운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2023년 10월 17일, 

오후 4시 20분 

흐린 날          


동그란 작은 바퀴가 평평한 바닥을 타고 쉴 새 없이 굴러갔다. 이동 침대 바퀴였다.      


누가 뒤에서 정신없이 미는지 바퀴 8개가 미친 듯이 굴러갔다. 다급한 상황이 분명했다. 이윽고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서둘러! 급해.”     


“자상(刺傷, 칼에 찔린 상처)입니다. 상처가 심해요! 빨리 봉합해야 합니다.”     


건장한 남자 간호사가 이동 침대를 힘껏 밀며 크게 외쳤다. 의사와 간호사가 침대를 따라다니며 환자를 살폈다.     


이동 침대에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의식을 잃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30대 후반 남자였다. 복부에 피를 철철 흘리며 누워있었다.      


“지혈!”     


“알겠습니다.”     


하얀 붕대로 지혈하는 간호사의 두 손이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서, 선배님!!”     


한 여자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자였다. 그녀가 이동 침대를 따라가다가 수술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수술실 자동문이 급하게 열렸다. 이동 침대가 안으로 들어가자, 스르륵 닫혔다.     


“제, 제발!”     


젊은 여자가 울부짖었다.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마치 기도하듯 두 손을 꼭 모았다.     


“구, 구형사!”     


“구형사,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두 남자의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둘이 울고 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달려왔다.     


젊은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턱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턱 끝에 모였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새하얀 옷깃을 적셨다. 새하얀 옷깃 아래로 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흰색과 붉은색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녀는 서울 화정경찰서 강력반 형사 구나정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간 남자는 선배이자. 파트너인 임창규였다. 

  

       

-------------------------------------

30분 전, 오후 3시 50분           


한적한 주택가를 따라서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20대 후반 젊은 여자와 30대 후반 건장한 남자였다.     


여기는 서울 변두리, 우일동 빌라촌이었다. 변두리지만, 신축 빌라 붐이 불면서 옛날 빌라가 급하게 사라져갔다. 세월의 흐름에는 장사가 없었다.      


신축 빌라는 1층에 주차장이 있는 필로티 구조였고 옛날 빌라는 주차장이 따로 없는 통짜 구조였다.     


날이 꽤 어두웠다. 하늘에 회색빛 짙은 구름이 끼어서 날이 밝지 않았다. 아직 한낮이었지만, 저녁이 된 거처럼 어두침침했다. 간혹 구름 사이로 푸르른 하늘이 보이기는 했지만, 세상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터벅터벅 두 사람이 인도와 차도를 겸하는 주택가 길을 걸었다. 걸음이 무척 급한 게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았다.     


젊은 여자가 핸드폰을 들어 약도를 살피다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저 앞에 있는 4층 빌라입니다. 우일로 205입니다.”     


“알았어. 저기 번호가 보이는군. 신축 빌라네. 외장재가 번쩍여.”     


남자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둘이 서로 쳐다봤다. 그리고 누구라 할 거 없이 침을 꿀컥 삼키고 윗입술에 침을 묻혔다. 긴장감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젊은 여자는 서울 화정경찰서 강력반 형사 구나정이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이었고 170cm 키에 단단한 근육질이었다. 걸을 때마다 짧은 단발이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옷차림은 단정했다. 위로는 검은색 재킷에 새하얀 셔츠를 받쳐 입었고 아래로는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운동화를 신었다.     


그녀는 아름답기보다는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가느스름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 짙은 눈썹, 높은 코, 꾹 다문 도톰한 붉은 입술은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남자는 구나정 형사의 파트너였다. 서울 화정경찰서 강력반 형사 임창규였다.      


임형사는 175cm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겉보기에 많이 말랐지만, 민첩함에서는 화정경찰서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다.      


말처럼 길쭉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옅은 눈썹이었다. 헐렁한 회색 점퍼에 검은 바지를 입었고 흰색 운동화를 신었다.     


“구형사, 몇 층이지?”     


“3층입니다.”     


“좋았어. 이거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군. 그동안 살쾡이가 꼭꼭 숨어서 난감했었는데 … 자기 발로 경찰서에 가겠다니 … 이보다 좋을 수가 없잖아! 어서 가자고.”     


“네, 일이 갑자기 순조롭게 풀리기는 했는데 …. 그게 …….”     


구나정 형사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임창규 형사가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구나정 형사가 뭔가 찜찜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 선배님 … 지원팀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죠. … 지원팀이 오면 같이 올라가죠.”     


그러자 임창규 형사가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답했다.     


“지원팀은 5분 뒤에 도착할 거야. 지금 들어가도 돼. 우리가 살쾡이를 체포해서 나오면 지원팀이 우리를 환영할 거야.”     


“선배님! 놈은 사람을 셋이나 죽인 흉악범, 살쾡이 박은달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도 ….”     


구나정 형사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빌라 3층을 올려다봤다. 올해 초에 신축한 4층 빌라였다. 회색빛 커다란 타일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빌라 이름과 주소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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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숨 빌라, 우일로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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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규 형사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뭐 살쾡이가 매서운 발톱을 드러낸들 내 옆에 한국 최고 형사인 구나정이 있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 특전사 특급 용사인데 ….”     


구나정 형사가 이건 아니라는 듯 정색하며 말했다.     


“선배님은 … 저를 너무 믿는 거 같아요.”     


“아니, 동료를 믿어야지. 누구를 믿겠어. 더군다나 내 파트너인데. 최고의 실적으로 인정받은 구형사잖아. 내가 앞장설 테니 구형사는 내 뒤를 받쳐줘. 나도 실적을 올려야지.”     


“…….”     


구나정 형사가 할 말이 없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임창규 형사가 신속한 걸음으로 빌라 공동 출입구로 향했다. 이에 구형사도 그 뒤를 따랐다.     



*     



1층, 2층, 3층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했다.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양옆에 301호와 302호 현관문이 보였다. 우측 302호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임창규 형사가 반쯤 열린 302호 현관문을 보고 구나정 형사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형사, 302호라고 했지?”     


“맞습니다. 놈이 302호에 있습니다.”     


“우리를 환영하는 모양이군. 현관문도 열어놓고 말이야.”     


“글쎄요.”     


구나정 형사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두 형사가 302호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 앞에 서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오신 분들이 형사님들입니까?”     


낮으면서도 굵은 목소리였다. 체념한 듯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오호!”     


임창규 형사가 무슨 횡재라도 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손바닥을 쓱쓱 비볐다.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된 거 같았다. 1등까지는 아니고 2등에 당첨된 분위기였다.     


302호 안에 시민 세 명을 죽인 살인마, 살쾡이 박은달이 있었다. 그는 서울시 강북 일대를 돌아다니며 무고한 시민 셋을 무참하게 죽였다. 모두 강도 살인이었다.     


연이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화정경찰서에서 사건을 접수하고 에이스 형사인 구나정 형사가 그 뒤를 쫓았다. 단서를 잡아서 끈덕지게 쫓아다녔다.      


살쾡이 박은달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포위망에 도망치느라 바빴다. 숨 막히는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자, 결국, 석 달 동안의 도피 생활 끝에 자수하겠다고 경찰에 알렸다.      


이에 사건 담당 형사인 구나정, 임창규 형사가 살쾡이 박은달의 은신처로 향했다. 이제 살쾡이를 생포할 일만 남았다.     


“… 응? … 이거, 좀 이상한데.”     


구나정 형사가 갑자기 뭔가를 느낀 듯 두 눈을 찌푸렸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차디찬 냉기가 흘러나오는 거 같았다.     


아직 날이 춥지 않았다. 낮에는 햇볕이 따갑고 아침과 저녁에는 시원한 가을 날씨였다. 이런 날씨에 한기가 나올 리 없었다. 결국, 냉기는 구나정 형사의 느낌 즉, 육감(六感)이었다.      


반쯤 열린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살인마 한 명과 형사 둘이 대치했다.


“흐흐흐흐!”     


이때!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현관문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살쾡이 박은달이 현관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살쾡이라는 별명과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덩치의 40대 남자였다. 원숭이처럼 팔이 길었다.     


살쾡이가 웃음을 그치더니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뭔가가 번쩍였다. 바로 칼이었다. 칼이 거실 조명을 받자, 갈치처럼 번쩍였다.     


20cm 칼이었다. 시민 세 명을 죽인 칼이었다. 날을 아주 깨끗이 닦은 듯 예리한 섬광이 빛을 발했다.     


“들어갑니다, 박은달 선생님.”     


임창규 형사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때! 뭔가를 눈치챈 구나정 형사가 급히 말했다. 살기를 느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서, 선배님!”     


구형사의 다급한 외침에 임창규 형사가 멈칫했다. 문손잡이를 잡은 채 구형사에게 말했다.     


“왜 그래? 살쾡이는 내가 잡는다고 했잖아.”     


바로 그때! “쾅!” 하며 문이 벌컥 열렸다. 살쾡이 박은달이 쏜살처럼 복도로 뛰어나왔다.     


“헉!”     


갑작스러운 일이라 두 형사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둘이 순간 얼음이 되었다.     


190cm 키에 단단한 근육질 체격인 살쾡이 박은달이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손에 아주 예리한 칼이 있었다.      

“이거나 먹어!”     


순간, 예리한 칼날이 임창규 형사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아, 안돼!”     


구나정 형사가 급히 소리를 지르고 왼 주먹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살쾡이 박은달의 우측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윽!”     


하지만, 살쾡이 박은달이 쓰러지지 않았다. 관자놀이에 주먹을 정통으로 맞아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임창규 형사를 향해 다시 칼날을 날렸다.     


“악!”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임창규 형사가 날카로운 칼날을 피하려 했지만, 원숭이처럼 긴 팔을 피할 수는 없었다.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쿵! 소리가 들렸다. 임형사가 복부에 칼을 맞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     


이 모습에 구나정 형사의 두 눈에 새빨간 불이 들어왔다. 파트너 형사가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며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그때, 살쾡이의 눈빛이 빛났다. 마치 다음 먹이를 찾는 듯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살쾡이 박은달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마치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듯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야아!”     


살쾡이 박은달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 칼을 높이 쳐들었다. 피 묻은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구나정 형사가 옆에 있는 계단 난간을 향해 풀쩍 뛰어올랐다. 난간을 힘차게 밟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마치 하늘을 나는 선녀 같았다. 허공에서 정점을 찍더니 오른발을 높이 쳐들고 살쾡이의 인중을 노렸다.     

이윽고 퍽! 소리가 크게 났다.     


“악!”     


안면을 맞은 살쾡이 박은달이 뒤로 물러섰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구나정 형사가 뒤돌려차기로 적의 명치를 강타했다.     


“억!”     


쿵! 소리가 들려다. 살쾡이 박은달이 엘리베이터로 날아갔다. 커다란 남자가 엘리베이터 문에 부딪히자, 문이 활짝 열렸다.      


“으으으~!”     


정신을 잃은 박은달이 엘리베이터 바닥으로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이윽고 쿵쿵! 거리며 엘리베이터 문이 왔다 갔다 했다. 자동 기능으로 닫히려 했지만, 살쾡이 박은달의 몸에 걸려서 닫히지 않았다.     


“서, 선배님!”     


박은달이 쓰러지자, 구나정 형사가 파트너인 임창규 형사를 향해 달려갔다. 임형사가 왼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숨을 헐떡였다. 그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119!”     


구나정 형사가 크게 외치고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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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던 참상을 떠올리며 구나정 형사가 안절부절못했다.      


“제발!”     


그녀가 동료 형사들과 함께 수술 결과를 기다렸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임창규 형사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벌써 1시간이나 지났다.     


수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구나정 형사가 결국, 조급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수술실 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간유리라 안이 보이지 않았다.      


구형사가 그렇게 불안감을 감추지 못할 때! 문이 스르륵 열렸다.     


임창규 형사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와 간호사가 밖으로 나왔다. 의사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구나정 형사가 급히 말했다.     


“수술 결과가 어떻죠?”     


의사가 고개를 돌려 구나정 형사를 보고 친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다행히 일찍 와서 무사히 봉합 수술을 마쳤습니다. 지혈도 잘해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     


구나정 형사가 감복한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꼭 감싸고 두 눈을 꼭 감았다. 임창규 형사가 살았다는 사실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감사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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