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참가자들이 들어왔다.”
“모두 준비해.”
높은 펜스로 둘러싸인 4단지로 40명 참가자가 들어오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대기하던 행사 진행 요원들이 서로 말을 나누고 무전기를 들었다.
“조명을 켜세요.”
말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폐가처럼 버려진 아파트 단지에 불이 왔다. 임시로 설치한 전등이었다.
높이 2m 50cm 장대에 가로등 불과 같은 전등이 매달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불이 들어오자, 깊은 어둠에 잠겼던 미래 경흥아파트 4단지 전경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조명은 야구장 조명처럼 밝지는 않았지만, 가로등처럼 가까이 있는 사물은 확실히 볼 수 있었고 멀리 있는 것은 그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게임 참가자 40명이 무척 긴장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조명이 켜지자, 긴장감이 더해갔다.
참가자들을 따라서 들어온 검은 정장을 입은 세 명 중, 말총머리 여자가 말했다.
“참가자들은 저 앞에 있는 행사 진행 요원을 따라가세요.”
말이 떨어지자, 흰색 점퍼와 흰색 바지, 야광 조끼를 입은 행사 진행 요원 다섯 명이 게임 참가자를 향해 걸어왔다. 행사 진행 요원들이 말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안전을 위해 게임 복장을 모두 입어야 합니다.”
참가자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고 행사 진행 요원을 따라갔다. 이제 게임 시작이 코 앞이었다. 컴컴한 야간에 그것도 공사 현장에서 진행하는 게임이라 그런지 그 분위기가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게임 장소인 경흥아파트 4단지는 네모난 지우개처럼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양 끝에 두 개의 문, 북문과 남문이 있었다.
북문이 정문이었고 남문은 후문이었다. 후문인 남문을 통해 게임 참가자 40명과 검은 정장을 입은 세 명이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북문과 남문에는 이를 연결하는 2차선 차도가 있었다. 차도 옆에 인도가 있었고 이 길을 따라서 양옆에 각 동과 편의 시설이 있었다.
정문인 북문을 기준으로 우측에 8개 동이 2열 횡대로 배치되었다.
앞줄에 401동에서 404동이 있었고 그 뒷줄에 405동에서 408동이 있었다. 404동 옆에 놀이공원과 약수터가 있었다.
놀이공원 뒤에는 관리실이 있었다. 관리실 옆으로 커다란 굴뚝이 우뚝 솟아있었다.
좌측에는 12개 동이 2열 횡대로 배치되었다. 앞줄에 409동에서 414동이 있었고 그 뒷줄에 415동에서 420동이 있었다.
참가자들이 행사 진행 요원을 따라서 저 앞으로 이동하자, 검은 정장을 입은 세 사람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왼팔에 착용하는 완장이었다.
완장은 하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통제관 1, 통제관 2, 통제관 3이라고 적혀 있었다.
셋이 왼팔에 완장을 차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문 앞에서 서성였다. 통제관 1이 말했다. 말총머리 여성이었다.
“감독관님이 오실 때가 됐는데 ….”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출입문이 천천히 열렸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와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둘 다 통제관처럼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노인이 앞에 있는 통제관들을 보고 한번 헛기침했다. 그의 왼팔에도 완장이 있었다. 흰색 바탕에 감독관 2라는 글씨가 있었다.
나이는 60대 후반으로 보였다. 훤한 이마에 후덕한 인상이었다. 뚱뚱한 체격에 이목구비가 작았다. 나이에 비해 피부가 곱고 부드러웠다.
젊은 여자도 왼팔에 완장을 찼다. 흰색 바탕에 감독관 1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나이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가운데 가르마를 따라서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흘렀고 인형처럼 똑 떨어지는 이목구비가 매력적이었다.
마치 고전 영화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은 전설의 여배우 올리비아 핫세를 보는 듯했다. 이마의 유려한 곡선과 높은 콧날이 아름답게 빛났다.
노인인 감독관 2가 젊은 여자인 감독관 1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나이 차이가 할아버지와 손녀뻘이었지만, 마치 젊은 상사를 대하듯 했다.
“감독관님, 모든 준비가 끝난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아저씨. 예정대로 시작하면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밤 11시 30분에 예정대로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감독관 둘이 서로 말을 나눌 때, 통제관 세 명이 그 앞으로 걸어왔다. 통제관들이 감독관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예를 표했다. 그러자 감독관 2가 말했다.
“통제관님, 별문제가 없지요?”
“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정시에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잘됐군요. 최초 술래들은 어디에 계시죠?”
“최초 술래들은 모두 술래 집에 계십니다. 장비를 점검하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우리도 술래 집으로 갑시다.”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차도를 따라서 쭉 이동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어서 가시죠. 통제관님.”
말을 끝나자, 통제관 1이 앞장섰다. 그 뒤를 통제관 두 명과 감독관 두 명이 따랐다.
밤 11시 20분
“헉! 헉!”
벅찬 숨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한 명이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고 그 뒤를 한 사람이 숨 가쁘게 뒤쫓았다.
바로 구나정 형사와 노부부를 거세게 밀친 남자였다. 둘이 야밤에 추격전을 벌였다.
“서라! 서라!!”
구나정 형사가 남자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큰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미친 듯이 달렸다.
“저, 저놈이!”
구형사가 이를 악물었다. 남자를 따라잡기 위해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녀는 특전사 시절, 아침과 오후 구보로 체력을 단련했었다
그런 만큼 하체가 무척 튼튼했다. 근육질 종아리에 힘이 들어가자, 마치 초원의 얼룩말처럼 뛰기 시작했다.
“이젠 똑 떨어졌겠지?”
열심히 도망치던 남자가 고개를 뒤로 획 돌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 질풍처럼 달려오는 한 여자가 보였다. 가로등 불 사이로 성난 눈매가 또렷하게 보였다.
“제, 젠장! 이, 이게 어떤 게 일이야?”
남자가 화들짝 놀라서 이를 악다물었다. 이제 전력으로 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힘껏 달리기 시작하자, 등에 멘 배낭이 덜커덩거렸다. 안에 금속 물건이 들어있는 듯 철커덩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헉! 헉!”
잠시 후 4차선 도로 앞에 남자가 다다랐다. 이곳은 횡단보도가 없는 곳이었다. 현재 차량 통행이 전혀 없어 한적했다.
남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이윽고 도로를 무단 횡단했다.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서 높은 펜스가 쳐진 곳으로 달려갔다. 바로 미래 경흥아파트 4단지 재건축 현장이었다. 곧 비밀리에 게임이 시작될 장소였다.
3m 높이 펜스가 마치 커다란 담벼락처럼 인도를 따라서 쭉 펼쳐졌다. 펜스 길이가 족히 200m도 넘는 거 같았다. 그 펜스를 따라서 남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저것이!”
구나정 형사도 남자를 따라서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서 재건축 현장에 다다랐다. 그녀도 하얀 펜스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펼쳐진 길이라 달리기에 수월했다.
둘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100여m를 정신없이 달리던 남자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깜짝 놀랐다.
“헉!”
구나정 형사가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잡힐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까지 올라와 더 달리기도 힘들었다.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도를 따라서 펜스가 쳐진 곳이라 주변에 숨을 곳이 전혀 없었다. 옆에 있는 도로로 뛰어들어 맞은편 상가 거리로 가야 숨을 곳이 있었다.
“젠장, 차가 많은데 ….”
하지만 차들이 쌩쌩거리며 도로를 달렸다. 갑자기 차들이 많이 다니고 시작했다.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구나정 형사가 벅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힘껏 달렸다.
“좋다!”
남자가 급히 외치더니 배낭을 내렸다. 배낭을 서둘러 열더니 긴 밧줄을 꺼냈다. 밧줄 끝에 갈고리가 있었다. 바로 등산 장비인 갈고리 로프였다.
로프가 허공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갈고리가 펜스를 향해 날아갔다.
“어~!”
이 모습을 본 구나정 형사의 두 눈이 커졌다. 느닷없이 갈고리가 달린 긴 밧줄이 보였다.
탁! 하며 갈고리가 펜스에 걸리자, 괴한이 능숙하게 줄을 잡고 펜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3m 높이를 아주 재빠르게 올랐다. 마치 청설모가 나무를 타는 듯했다.
“어림없다!”
구나정 형사가 크게 외치고 힘껏 달렸다.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밧줄 근처에 다다랐을 때 남자는 펜스 위에 다 올라간 상태였다.
“됐다! 흐흐흐!”
남자가 펜스 위에서 쾌재를 불렀을 때, 반쯤 열린 배낭에서 뭔가가 툭 하며 아래로 떨어졌다. 길쭉한 물체였다. 로프를 급하게 꺼내느라 배낭을 제대로 닫지 못한 상태였다.
바닥에 떨어진 물체가 어둠 속에서도 강렬한 빛을 발했다.
“저게 뭐지?”
구나정 형사가 급히 떨어진 물체를 살폈다. 그건 반짝이는 진주 목걸이였다. 진주알이 어둠 속에서도 그 은은한 광택을 뽐냈다.
바닥에 떨어진 진주 목걸이를 보고 구나정 형사가 남자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녀가 급히 외쳤다.
“도, 도둑놈!”
남자의 정체에 구형사가 이를 갈았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진 진주 목걸이를 들어 올렸다. 한눈에 봐도 진주알이 자두 맛 사탕처럼 컸다. 가품이 아니라면 고가의 제품이 분명했다.
“아이고! 목걸이가 떨어졌네.”
남자의 정체는 도둑이 맞았다. 펜스 위 좁은 턱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도둑이 떨어진 진주 목걸이를 보고 아쉬워했다.
그러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늘어뜨린 로프를 재빨리 당기기 시작했다.
바닥에 놓였던 로프가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구나정 형사의 눈높이까지 올라갔다. 곧 펜스 위로 올라갈 거 같았다.
“도둑놈아! 헛수고하지 마라!”
구형사가 급히 외치고 점프해서 줄의 끝을 꼭 잡았다.
“어~~?”
갑자기 줄이 반대편 방향으로 당겨지자, 도둑의 중심이 흐트러지며 휘청거렸다. 아주 좁은 펜스 위에 걸터앉은 바람에 자세가 무척이나 불안정했다.
“어어어어~!”
도둑이 오뚜기처럼 앞뒤로 여러 번 흔들거렸다. 중심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중심이 뒤로 쑥 넘어가고 말았다.
“아, 안 돼!”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도둑이 큰소리 지르며 3m 높이 펜스에서 추락했다.
“헉! … 도, 도둑놈이 떨어졌잖아.”
펜스에 걸터앉았던 도둑이 갑자기 펜스에서 떨어지자, 구나정 형사가 깜짝 놀랐다.
도둑이 펜스 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1초 후 쿵!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비명도 들렸다.
“아야!!”
도둑의 비명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디를 다친 게 분명했다.
구나정 형사가 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3m 펜스가 무척이나 높았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자칫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운이 나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이, 이런!”
괴한이 크게 다쳤다는 생각이 들자, 구형사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의 손에 진주 목걸이가 들려있었다.
일단, 현행범으로 도둑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해야 했다.
생각을 마친 구나정 형사가 로프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리고 힘껏 잡아당겼다. 갈고리가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좋다! 올라가서 상황을 살펴보자. 도둑을 잡고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해 보자.’
구형사가 상황 판단을 마치고 로프를 잡고 펜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특전사 특급 용사답게 능숙하게 펜스를 올랐다. 특전사에서 줄타기는 중요한 기술이자, 체력 단련이었다.
이제 술래 게임이 시작할 때였다. 불청객 구나정 형사가 게임 한복판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