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olee Oct 18. 2024

03_게임의 시작

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동네 주민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딸이 서로 조곤조곤 얘기를 나무며 골목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쾅! 소리가 크게 들렸다.


노부부가 어두운 골목에서 정신없이 뛰어나온 남자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강하게 부딪히고 말았다.  


“아이고!”


“아야!”


비명을 지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들 앞에 한 남자가 왼손으로 오른쪽 얼굴을 꽉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아니!”


이 광경을 본 구나정 형사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젠장!”


사고를 친 남자가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검은색으로 온몸을 감싼 남자였다.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옷도 검은색 일색이었다.   


검은색 바람막이 점퍼에 검은색 바지,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등에는 커다란 검은색 배낭을 메고 있었다.


중간 키에 어깨가 넓은 근육질 체형이었다. 나이는 얼굴을 가린 마스크 때문에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대략 30대에서 40대로 보였다.


“뭐야 이거!!”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크게 소리치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쓰러진 노부부의 딸이 그의 소매를 꼭 잡았다. 40대 아주머니였다.


“이놈아, 어디로 도망가려고! 사람을 때려놓고!!”


날카로운 고음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뭐야, 이게 진짜!”


남자가 크게 외치며 딸을 확 뿌리쳤다.   


“아이고!”


딸이 바닥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그녀가 이를 악물더니 이번에는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꽉 붙잡았다.


“어서 놔라!”


“경찰을 불러줘요! 어서요!”


다급한 목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구나정 형사는 버스 안에 있어서 그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버스의 문과 창문이 모두 닫힌 상태였다. 하지만 딸의 입 모양으로 경찰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녀가 급히 내리는 문으로 가서 버스 기사에게 외쳤다.


“저는 경찰입니다. 지금 사건이 생겼습니다. 내려야 합니다.”


버스 기사가 급히 내리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 뭐라고요?”     


“저는 서울 화정경찰서 경찰입니다. 지금 노부부와 딸이 괴한한테 봉변당하고 있습니다. 어서 문을 열어주세요.”     


“아! 경찰이셨군요.”     


버스 기사가 급히 내리는 문을 열었다. 치익! 하며 문이 열리자, 구나정 형사가 재빨리 버스 밖으로 뛰어나갔다.     


딸과 실랑이하던 남자가 한 손을 높이 쳐들었다. 마치 따귀를 때리려는 거 같았다. 그러자 딸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악!”     


비명과 함께 바짓가랑이를 꽉 잡은 손이 풀렸다. 남자가 다시 달리려는 듯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한 여자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5m 앞이었다.     


아주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검은색 재킷이 날렸다. 단발머리도 찰랑거렸다. 구나정 형사였다.     


마치 물 위를 걷듯 아주 가벼운 걸음으로 구형사가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갑자기 키 큰 젊은 여자가 등장하자,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넌 뭐야?”     


남자의 말에 구나정 형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에 절도가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있는데 구호 조치조차 하지 않고 도망가겠다는 겁니까?”


“뭐라고? 넌 참견하지 마!”     


남자가 불같이 화를 내고 걸음을 옮겼다. 구나정 형사의 왼쪽으로 움직였다.     


“어디 가려고!”     


구형사가 왼팔을 옆으로 들어 올려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남자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서 오른손으로 꽉 잡았다.


그의 두 눈동자가 구형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검은 마스크에서 거친 숨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구나정 형사가 오른손 검지로 피해자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어서 피해자 구호 조치하세요.”


“웃기지 마라!”    


남자가 크게 외치더니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마치 상대방을 공격할 거 같았다.


둘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었을 때!


남자의 눈빛이 빛났다. 공격 신호였다. 구나정 형사가 이를 눈치챘다.


“야아!”


그 순간, 배낭이 허공을 갈랐다. 구나정 형사의 얼굴을 향해 배낭이 날아왔다. 묵직한 배낭이었다.


휙 하며 강렬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위기의 순간, 구형사가 반사적으로 무릎을 굽히며 몸을 수그렸다. 묵직한 배낭이 구형사의 머리카락을 싹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구형사가 배낭을 싹 피하자, 남자가 깜짝 놀랐다. 그가 주춤하자, 구형사가 오른손을 뻗어서 배낭을 꽉 잡았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힘껏 뿌리쳤다.  


배낭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안돼!”


배낭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남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든 떨어지는 배낭을 잡으려고 두 손을 쭉 뻗었다. 하지만 오히려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아이고!”


쿵! 소리가 들리며 남자가 바닥을 굴렀다. 배낭도 바닥에 떨어지며 철커덩! 하며 쇳소리가 났다.  


“어리석은 인간이군.”


구나정 형사가 나지막하게 말하고 앞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 과실치상(過失致傷, 과실로 사람이 다침) 혐의로 파출소에 가야겠습니다. 어두운 골목에서 앞을 살피지 않고 갑자기 뛰어나왔습니다.

그래서 길을 걷던 두 분이 많이 다쳤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구형사의 말에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웃기고 있네? 넌 누구야? 네가 경찰이라도 되냐?”


구나정 형사가 씩 웃고 답했다.


“경찰 맞습니다. 서울 화정경찰서 강력반 구나정 형사입니다.”  


“뭐, 뭐라고?”


경찰이라는 말에 남자가 화들짝 놀랐다. 그것도 강력반이었다. 그가 잠시 주춤하다가 뭔가를 찾았다. 바닥에 떨어진 배낭으로 달려가더니 급하게 열었다. 그리고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드라이버였다. 20cm 길이 드라이버를 들고 구나정 형사에게 외쳤다.  


“오지 마! 오면 팍 찌른다.”  


남자가 길쭉한 드라이버를 구나정 형사에게 겨누며 위협했다. 그러자 구형사의 두 눈에 빨간 불이 다시 켜졌다.


오늘 오후에 파트너인 임창규 형사가 흉악범, 살쾡이 박은달의 칼에 맞고 병원에 실려 갔다.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이 목격했다.  


칼에 찔려 고통을 호소하며 신음하는 모습과 쭉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이 다시 떠올랐다. 


구나정 형사가 분을 참을 수 없는 듯 두 주먹을 꼭 쥐고 크게 외쳤다. 


“흉기를 내려놔라! 어서 내려놓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  


“웃기지 마!”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드라이버를 마구 휘둘러댔다. 이에 구형사가 신속하게 뒤로 두 발 물러서며 이를 피했다. 계속 피할 수만은 없었다. 이제 제압해야 했다.


구형사가 오른발을 높이 쳐들었다. 긴 다리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쏜살같이 아래로 내려갔다. 바로 찍어차기였다. 발뒤꿈치가 남자의 코를 향했다.   


퍽! 소리가 나며 비명이 들렸다.


“악!”


남자가 한 손으로 코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구나정 형사가 크게 외쳤다. 


“위험한 흉기로 경찰관을 공격했다. 특수 폭행 혐의가 추가됐다.”


“젠장!”  


앞에 있는 형사는 무술 고수였다. 이에 남자가 도망치려는 듯 사방을 살폈다. 바닥에 떨어진 배낭을 둘러메더니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나정 형사도 같이 뛰기 시작했다.


“아! 맞아.”  


구형사가 갑자기 뭔가가 생각이 난 듯 멈칫했다. 그녀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딸이 쓰러진 부모 옆에 있었고 119에 전화하고 있었다.


딸과 구나정 형사의 눈빛이 마주치자, 딸이 크게 외쳤다.  


“형사님! 저놈을 잡아야 해요!”


“알겠습니다.”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야밤에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졌다. 방향은 높디높은 펜스에 가로막혀 있는 4단지 아파트였다.


밤 11시


전세 버스 한 대가 보였다. 모든 창문에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버스가 경흥동 도로를 달렸다. 야밤이라 도로를 달리는 차가 거의 없어 거침없이 달렸다.


전세 버스가 4차선 도로를 달리다가 우회전해서 2차선 도로를 달렸다. 도로 양옆으로 3m 높이 커다란 펜스가 성벽처럼 위용을 뽐냈다. 하얀 펜스는 마치 반사판 같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버스가 마치 깊은 바다를 달리는 잠수함처럼 은밀히 그리고 육중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전세 버스가 멈췄다. 미래 경흥아파트 4단지 재건축 현장 남문이었다.  


남문에는 차가 드나드는 큰 문과 그 옆에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문이 있었다.  


문 위로 남문을 알리는 커다란 알림판이 있었다.  



----------------------------------

미래 경흥 4단지 아파트 재건축 현장 남문

----------------------------------



치익! 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세 버스에서 출입문이 열렸다. 운전사가 내리자, 탑승객들이 하나둘씩 내렸다. 


전세 버스답게 많은 사람이 차에 타고 있었다. 남녀 40명이었다. 겉보기에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없었고 20대에서 40대로 보였다.


사람들이 다 내리자, 운전사가 다시 운전석에 올라탔다. 전세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4단지 재건축 현장 남문 앞에 40명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야심한 밤에 많은 사람이 공사장 앞에 모여있었다. 겉보기에 힘을 쓰는 일꾼들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살폈다. 알 수 없는 초조함과 긴장감이 그들 얼굴에 서려 있었다.      

몇몇이 초조함과 긴장감을 태우려는 듯 담배와 전자 담배를 꺼내서 피우기 시작했다. 뿌연 담배 연기가 위로 올라갔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시계를 보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몇몇은 온몸을 벌벌 떨며 서 있었다. 아직 손발이 떨릴 정도로 추운 날씨가 아니었다. 추위 때문에 떠는 건 분명 아니었다.


40명 모두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활동하기 편한 점퍼와 재킷, 바지를 입었다. 모자를 쓴 사람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그들에게 공통점은 하나였다. 모두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있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초조함과 긴장감이 점점 고조될 때!


고급 세단이 나타났다. 최고급 독일제 차였다. 근엄한 검은색 차였다. 차가 2차선 도로를 달려서 남문 앞에 섰다.


차 문이 활짝 열리고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넥타이를 맨 세 명이 내렸다. 건장한 남자 두 명에 호리호리한 여자 한 명이었다. 남자들은 180cm가 넘는 키였고 여자는 165cm 정도였다.


셋 다 머리에 왁스를 발라 머리 모양이 깔끔했다. 남자들은 단정한 2대 8 가르마였고 여자는 올백 말총머리였다.


셋이 모여있는 40명에게 걸어갔다. 그중에 여자가 말했다. 무척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지금 문이 열려있습니다. 참가자분들은 안으로 들어가세요. 안에 들어가면 게임 진행 요원이 있습니다.” 


여자의 말에 40명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누구라 할 거 없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문을 열고 차례로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떠는 사람이 있었지만, 문 앞에서 주저하지는 않았다.


정장을 입은 세 명이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 숫자를 셌다. 40명이 딱 맞았다. 40명 게임 참가자였다.


“숫자가 딱 맞습니다.” 


“우리도 어서 들어갑시다. 감독관이 곧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참가자가 모두 공사 현장에 들어가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세 명도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쿵! 하며 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상금이 걸린 술래 게임이 30분 후 시작될 예정이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2화 02_수상한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